Eat & Love - 섹스와 음식, 여자와 남자를 만나다
요코모리 리카 지음, 나지윤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맛있는 사랑과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 소설!
 
 술과 음식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떠오르는 선배가 있다. 대여섯 살(가장 친한 선배이면서도 아직도 정확한 나이차이를 모른다) 차이가 나는 세 학번 위의 선배인데, 내가 선배의 집에서 자야하는 경우는 딱 하나, 그와 밤새고 술을 마셨을 때 뿐이다. 새벽 서너 시에 거나하게 취해 집에 들어갔다간 추호秋虎 같은 아부지한테 몽둥이찜질 당할 껀 뻔한 사실, 게다가 그시간에 학교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집을 가려면 필히 택시를 타야 하는데, 그 돈이 있으면 술로 바꿔먹을 판이었으니 어림없는 소리였다. 선배집에서 잠을 얻어자는 것은 고마운 일인데, 게다가 아침밥까지 얻어먹는다는 것은 정말 감지덕지할 일인데, 문제는 정확하게 새벽 6시에 머슴밥을 먹어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놋쇠그릇으로 하나 가득 보리밥이 산을 이루고, 젓갈과 시골된장으로 잘박잘박하게 지진 된장찌게, 어제 담근 듯한 풋풋한 총각김치 그리고 철마다 바뀌는 반찬 두어가지가 전부인데, 해가 꼭대기에 걸쳐진 점심만 같아도 꿀맛이겠지만, 술취해 한 두시간 자다가 일어나 먹어야 하는 선배의 아침식단은 '모래밥'을 씹는 듯 했다. 얻어먹는 주제에 게다가 노구老具를 이끌고 지으신 새벽밥을 물리칠 수 없어 꾸역꾸역 밥을 쑤셔넣고, 물을 마시고 있으면 할머니는 놋쇠밥공기의 절반 정도를 또 담으신다. "됐어요. 할머니, 저 배불러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는 "녀석, 밥 참 잘 묵네..."하시면서 꾹꾹 눌러 담으셨다. 그리고 난 또 꾸역꾸역 모두 먹었고...
 
  "뭘 좋아하세요?" 30대 초반까지 가장 난감해 하던 질문이다. 터지도록 배가 부르지 않다면 뭐든 먹는 것은 다 좋은 식성을 가지고 있어 웬만해서는 음식을 거절하지 못한다. 타고난 식성食性 과 '없어서 못먹고, 안줘서 못먹었던' 경험으로 키워진 후천적 식탐食貪 덕분에 남의 집을 가면 '남자답게 먹는다 혹은 복스럽게 먹는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밥상 앞에 앉았을 때 듣는 그 칭찬에 더욱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되도록 가리지 않고 먹었고 되도록 배가 부르도록 먹어 '뭘 좋아하냐' 물으면 '못먹는 것 빼고 다 좋아한다'고 선문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까탈스러워짐을 느낀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말한 바 처럼 "음식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비싸고 좋은 것을 먹기' 보다는 '제대로 만들어진 음식'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삼신할미는 사람을 세상에 내보낼 때 제 밥그릇 숫자를 정해주는데, 한 끼라도 적게 먹으면 그만큼 명命을 줄여서 다시 부른다' 는 우리 할머니의 섬뜩한 가르침을 깨닫게 되면서 되도록 '제 때에 잘 먹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음식은 몸을 움직여야 할 남은 시간을 위해 배를 불려야 하는 '연료보충'의 의미도 있지만 맛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욕구충족'의 의미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성異性과 같고, 사랑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음식과 사랑(섹스)의 묘한 관계, 그것을 이야기 한 소설을 만났다. 요코모리 리카橫森 理香 의 소설 [EAT & LOVE]를 어제 읽었다. 원제목은 EAT&LOVE (イースト・プレスチュチュカラーズ) 이다. 
  
 

   
 묘하게 엮인 주인공 여섯 명을 음식의 소재와 또 다시 엮어 그들의 사랑과 섹스를 이야기한 소설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이란 면에서는 조경란의 [혀]와 닮았지만, 주인공 한 명을 제외하곤 주제들이 경쾌하고 라이트해서, 무엇보다 다분히 주인공들이 이국적이라 다름을 감지한다. 주인공 여섯 중에 '라즈베리 무스' 속 주인공, 36세의 노자키 신이치로 한 명만이 남자이고, 그의 주위에 있는 여자 다섯 명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어떻게 보면 노자키 신이치로가 이 소설의 메인인 듯 하지지만, 실은 그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엮기 위한 이야기의 핵심소재 역할을 한다. '주제도 모르는 바람둥이에 호색한'이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남자들에 대한 여성들의 관념이 그러하듯 저자는 노자키를 그런 남자로 등장시켰다. 그럴 법하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저자가 여성이었기에 노자키의 깊은 내면을 밝히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웠다(독자는 나같은 남자도 있으니까).
 
  재미있는 점은 40대에서 20대에 걸친 다섯 명의 여자주인공이었는데, 소설의 구성 또한 40세의 에구치 미라이, 34세인 가와카미 야스요, 26세의 나카다 유코, 22세의 고지마 미키, 그리고 이제 갓 20살이 된 가시타 미오를 주인공으로 그녀들과 관계되는 음식과 그에 얽힌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나이와 직업 그리고 살아온 배경이 다른 그녀들에게 있어 연상하고 찾게 되는 음식은 실로 다르고 다양했는데, 과연 '음식이 곧 사람이다' 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느끼게 된다. 나이마다 다른 여성들의 남성관과 섹스관 또한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과 흥미를 던지는 부분이었다. 세계에서 미뢰(혀에 돋아나있는 자극을 담당하는 돌기)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인의 손에서 비롯된 음식과 사랑이야기이어서 일까 세밀한 묘사와 표현력은 대단히 감각적이었다. 특히 22세의 고지마 미키가 엄마의 유언대로 장례식을 찾은 문상객들에게 최고의 도시락과 점심을 제공하고, 타오르는 듯한 빨간색을 사랑하던 엄마를 기리기 위해 '빨간 한국 음식'을 저녁으로 찾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배고픔'를 느끼는 동물적인 인간을 새삼 느끼게 되고, 그에 앞서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되고 싶은 듯 죽음 앞에서 '스시'를 맛있게 먹는 엄마의 모습에서 '먹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30대의 남성 노자키는 '라즈베리 무스'를 쳐다 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마치 이런 느낌이지. 약간 달콤하고, 취한 듯 몽롱하고 둥둥 떠 있는 듯하고, 녹아버릴 것 같고, 먹으면 정말로 입 안에서 금세 눈처럼 사라져버리거든." 라스베리 무스가 먹고 싶어졌다. 정말 맛이 그럴까? 최고의 표현은 20세인 기시타 미오의 파파(나이든 애인)가 인간의 음식과 사랑에 대한 코멘트 일 것이다. "미오, 인간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야. 그래서 맛없는 것을 먹으면 안 돼. 늘 맛있는 것, 잘 갖춰진 것을 먹어야 해. 지나친 듯해도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을 만들어가지. (...) 온갖 희귀한 걸 먹어보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야.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지." 
 
  멋진 말, 하지만 50대가 아니면 잘 할 수 없는 말이다. 맛있는 음식이란 맛없는 음식을 먹어봐야 아는 것이고, 수많은 먹을 것을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음식경험이 풍부한 50대의 추천 요리들이 맛있고, 잘 만들어진 것일테지만 어리거나 미숙한 사람에겐 제 입맛이 길들여진 타인은 그 맛을 모르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제 나이에 맞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제 나이에 맞는 사랑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음식의 맛도 사랑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사람도 '나'인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 사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뭘지 생각해 봤다. 내겐 '늦은 새벽 사랑하는 여인과 침대에서 함께 떠 먹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통'이었다. 물론 먹은 다음(?) 먹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맛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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