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노래 - 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사은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처절하리 만큼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 김훈의 소설!
 
 작년에 있었던 도서대전을 통해 작가 김훈을 처음 보았다. 그 분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시간이 허락하면 소설보다는 영화를 즐기던 내게 그의 소설은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내가 그 분을 보는 순간 어떤 이유가 동했는지 그의 전권세트를 사들이고 말았다. 그의 정성스런 친필 싸인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최고의 소설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네임밸류는 '언제 이분을 또 뵙겠는가?'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평소 책을 고르는데 장고長考에 장고를 더하고, 또 심사숙고 해서 낙점하는 내게 그의 전집을 구입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또 다른 이유 하나는 그의 눈이었다. 머리엔 하얗게 눈이 내린 듯 반백색의 머리를 하고 있지만, 굵은 주름 가득한 모습 속에 빛을 내는 커다란 눈과 흰 바탕의 까만 눈동자는 '추호秋虎'를 연상하게 했다. 그 인상적인 눈매로 쓴 글은 어떨까? 책장 맨 위에 잘 모셔두고 마치 포도주를 숙성하듯 두었다. 그제 [칼의 노래]를, 그리고 어제 또 한 권을 폈다. 김훈 선생의 [현의 노래]이다.
 
 


 
 
  소설 [현의 노래]는 가야금의 예인(藝人) 우륵과 그의 시대를 그린 소설이다. 김훈선생은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우륵을 극한의 상상력을 통해 다시 살려냈다. 무너져 가는 자신의 조국을 한탄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 가인의 파란만장한 삶이 가야금의 금을 튕기듯 심금을 울리고, 그의 삶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모호함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 그것의 의미를 찾아보게 만들었다.
 
  책의 주인공 우륵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신라시대의 음악가로  “중국(수나라)에는 악기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어찌 하나도 없을 수 있겠는가?” 하는 대가야국(大伽倻國) 가실왕(嘉實王)의 뜻을 받들어 12현금(絃琴:가야금)을 만들고 이 악기의 연주곡으로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하기물(下奇物),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보기(寶伎), 사자기(師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상기물(上奇物)이라는 제목으로 12곡을 지었다. 가야가 어지러워지자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 진흥왕에게 항복하였는데, 왕은 그를 국원(國原:忠州)에 살며 대내마(大奈麻) 계고(階古)와 법지(法知) 등에게 가야금, 노래, 춤을 가르치도록 했다. 우륵은 이 세 사람의 재주를 높게 평가해 계고에게는 가야금, 법지에게는 노래, 만덕에게는 춤을 각각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이 소설 역시 어둡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글 속에 담긴 역사들은 당시의 풍요로움과 태평성대는 찾아 볼 수 없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한 나라의 무관으로서. 또 한 사람의 남자로의 충무공 이순신의 고뇌와 슬픔, 삶에 대한 처절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었던 [칼의 노래]와 이 책 [현의 노래]는 무너져 가는 대가야국(大伽倻國) 궁중악사 우륵의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은 다르나 각기 다른 그 배경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지 않다. 멸망을 앞둔 가야국과 명나라의 도움과 일본의 내부적 변란이 없었다면 당시의 조선 역시 멸망을 바라볼 수 있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단, 주인공의 시점이 전쟁의 참상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전쟁을 이끌었던 무관이 아닌, 궁중 악사라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 또한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 즉, 살아있는 것들은, 오직 살아서만 의미를 갖기에, 살기위해 발버둥친 그 모든 흔적은 [옳은 것이다]는 김훈의 메시지에 의해 그들은 둘이 아닌 하나로 비춰진다.
 
  우륵과 제지 니문은 가야의 소리와 금琴을 찾아 무너져 가는 가야의 한 복판에서 사라져 가는 각 고을들의 소리를 담아 낸다. 소리는 예술의 경지를 넘어선 삶의 소리다. 즉, [예술은 무엇인가, 권력은 또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 그 권력의 해답은 대장장이 야로를 통해 찾아 볼 수 있는데, 야로는 새로운 신무기와 철을 가야만이 아닌 자신의 조국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신라에 제공함으로써 권력에 삶을 의지하는 가냘픈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한명의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 아라가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왕이 죽으면 죽음으로써 왕을 모신다는 의미의 순장제도를 통해 시대적처참함 비합리성을 그려낸다. 순장 직전에 도망을 친 아라는 야로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 하지만 그녀의 삶 또한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을 없는 가련한 삶이다.
 
  아라는 우륵에게 발견되어 니문과 가정을 이루지만 순장에서 도망쳤던 아라를 찾아 나선 자들에 의해 다시 붙잡히게 되고, 다시금 왕과 함께 제물로 바쳐진다, 그 비참한 죽음 위에서 금을 연주하고 춤을 춰야 했던 우륵과 니문. 권력앞에 그들이 말하는 예술은 단지 삶을 영위할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삶을 통해서만 그들의 음악이 살아있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칼의 노래]에서 자신의 칼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 (사지死地)를 찾아 마지막을 결정했던 이순신과는 달리 자신들의 소리는 오직 살아서만 의미를 갖을 수 있으며 그곳에서 소리와 음악 역시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우륵과 니문은 가야를 등지고 신라로 새 길을 찾아 떠난다. 한편, 가야를 떠나 아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한 야로는 이사부의 칼에 죽게 됨으로써 권력에 대한 그의 야망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처절하리 만큼 사실적인 묘사를 통한 죽음과 어두움, 그리고 인간의 애욕칠정이 거침없이 드러나지만 그곳엔 비릿한 상스러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순결하고 아름답다. 이것이 김훈 선생만이 가진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계속해서 김훈 선생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다음에 만날 그의 소설은 [남한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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