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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한국 팩션장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준 최고의 소설!
난 소싯 적엔 세종대왕을 원망했었다. 형편없는 국어실력 때문이었다. 왼손잡이가 한글을 쓰기는 정말 쉽지 않았고, 글자가 뭔지 왜 한글을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외워야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연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일일공부'라는 한글 매일학습지를 재미있게 놀듯 써내려가는 친구를 보고 부러워 이틀을 떼를 써서 구독을 하게 되었고, 그 날부터 저녁마다 아부지한테 두들겨 맞았고, 한 달을 채 못넘겨 구독하기를 끊게 해달라고 사흘동안 떼를 써야 했다. 젬병,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우리 때 이름) 3년동안 '국어'과목에 붙은 '가'라는 성적에 연이어지는 내 별명이었다.
간신히 3년을 넘겨 한글을 깨쳤지만, 글쓰기 솜씨는 여전히 젬병. 울 엄니는 '서예'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다. 결국 6년 동안 한글에 대해서는 늘 구박을 먹는 상황이 되었고, '트라우마'에 가까운 강박으로 자리잡았다(만약 자필로 리뷰를 써야 한다면, 진작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건 원망의 대상인 그분이 내 이름이었다는 것. 시험을 볼 때 마다 내 이름을 쓰는 란에는 항상 '세종대왕'을 적었드랬다. 이유는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트라우마에 대한 나만의 저항이 아니었을까? 시험 때 마다 당연히 선생님한테 매를 맞았다. '한글'하면 당연히 '몽둥이'가 생각났으니, 그분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을 턱이 있나? 물론 나이들면서 그 생각은 서서히 바뀌었고, 지금은 누구보다 존경하고 자주 뵙고 싶은 분이시다(그럼, 만원 짜리 지폐의 모델이신데...)
올해 초, [세종대왕 실록]을 읽고 그분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내가 알았던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대단하신 분이셨다. 그분을 추적해서 읽던 중 35만 부라는 놀라운 판매부수가 입증하듯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소설을 알게 되었다. 세종대왕과 한글 창제를 둘러싼 토종 팩션, 이정명씨의 소설 [뿌리깊은 나무]가 그것이다. 읽기를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며칠 전 단원 김홍도와 사라진 한 천재화가 신윤복을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써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줬으며, 현재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드라마의 원작소설 [바람의 화원]을 통해 저자 이정명과 만나게 되었는데, 역사소설로서 가지기 힘든 긴박감과 탄탄한 구성, 방대한 역사적 정보들을 통한 무한한 상상력의 향연과 치밀하게 계산된 스토리 전개,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의 허구성의 벽을 허무는 궁극의 몰입도는 외국의 그것보다 더 재미와 읽는 쾌감을 선사했었다. 소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의 화원]에 앞서 쓰여진 것이라 기대감은 더했다.
"세종대왕은 위대한 왕이었다. 아니 단순히 왕으로서만이 아니라 대단한 인격자이며, 걸출한 인간이었다. 그에겐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중략) 왕이기 이전에 학자 였고, 인간미 넘치는 선비이자, 공평무사한 판관이었다. "
-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 실록 中 -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대왕이 남긴 최고의 업적인 훈민정음을 창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즉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을 위한 훈민정음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하지만 이는 곧 양반과 권문세족을 비롯한 전국 팔도 유생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킨다. 이 반발은 명나라의 조공국인 우리가 한자를 두고, 우리의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명나라에 대한 배신이며, 이는 반역에 해당하는 행동이라고 반대한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그것은 양반들의 허울좋은 핑계일 뿐 '문자로 지식을 배운 계층'이라는 헤게모니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데 이유가 있음을 꿰뚫고 있었다. 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 백성을 윤택하게 하고자 법률을 만든다 할지라도,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널리 알릴 수가 없고, 설령 말로 일러 알린다 할지라도 양반들이 저희들에게 이롭게 해석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백성을 이롭게 하는 법률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한글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도 둔 것이다.
이런 적도 있었다. 집현전의 대 재학이자 현학의 대부라 불리는 최만리가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자, 세종대왕께서는 최만리를 직접 불러 앉히고는 "네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되느냐?" 며 그의 운학에 대한 무식을 꼬집음과 동시에 그(최만리)의 언어 가치관이 지닌 논리적 결함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이두의 한계를 정확히 지적했으며, 반박하지 못하는 그들을 두고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이를 바로 잡을 것이냐?" 며 반문하셨는데, 이점만 보아도 세종대왕께서는 왕이기 이전에 당대 최고의 언어학 지식을 갖춘 지식인이자, 학자로서 한글제작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두고 참여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아니셨으면 이 세상에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 25년(1443년) 훈민정음 반포를 7일 앞두고 경복궁 안에서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훈민정음 창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세력과 그것을 원치 않는 보수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이정명의 손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었다. 경복궁 후원 우물 속에서 발견된 젊은 집현전 시체가 발견된다. 수수께끼 같은 그림과 문신의 조악한 단서만을 남긴 살인사건은 겸사복 별감의 간괴에 종8품 말단 애송이 겸사복 강채윤에게 맡겨진다. 비록 북방의 호랑이 김종서 장군의 밑에서 북관의 전투를 누볐지만 사람을 죽이는 현장을 봐도 체포하지 못하는 말단 중의 말단이다.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통해 유력한 용의자의 찾아 내는데 성공하지만 실마리를 풀기도 전에 다시 찾아온 용의자의 2번째 죽음은 사건을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살인자를 목격한 유력한 목격자가 발견되고 진술로 살인자를 색출하는데 성공하지만 다시 찾아온 세 번째 살인은 의구심만을 증폭 시킨다. 매일 밤 이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과 그 곳에서 알게 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진실과 의혹, 왕의 침전에 출몰하는 귀신의 존재와 귀신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님을 말해준다. 반인 가리온의 엽기적 행동, 사자들의 문신과 알 수 없는 숫자와 표식으로 이루어진 마방진. 나인 소이를 통해 마방진의 해법을 알게 되지만 그것을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이미 이 의문의 살인사건이 나약한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없는 큰 힘이 뒤에 존재하고 있음을 전해 줄 뿐이다.
읽히고 설키는 의혹과 긴장이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향원지, 집현전, 경회루, 아미산등 살인이 벌어지는 경복궁 구석구석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한 영상을 만들어 낸다. 실제 존재하고 있는 역사적 유물들의 건축 과정 속에 숨은 수수께끼와 마방진, 지수귀문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에 숨겨진 단서는 짜릿한 지적 즐거움을 줌과 동시에 사건을 풀어가는 흥미를 북돋는다. 천문학, 언어학, 역사, 철학, 음악, 건축, 미술 등의 방대한 지식들은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게 되는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안겨줘 지루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소설을 통해 당시 시대적 상황은 한글창제가 얼마나 큰 논란거리가 되었는지를 말해준다. 비록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고 있지만 한글창제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백성들의 삶의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했던 세종대왕과 그의 뜻을 받들어 모심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충신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과감히 변화를 이끄는 자와 일신의 안락을 위해 그것을 반대하고 훼방을 놓는 세력, 즉 '진보와 보수'의 갈등 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있고, 그 행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에 처한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듯 했다. 박진감 넘치는 흥미로운 소설, 최고의 팩션이란 소릴 들을 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