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아내의 절반. 가질까, 말까?
 
 
  "이 제목, 글자가 빠진거 아니냐? 옛 자字 라던지, 전前 자字 라던지..."
 한 달 전, 생전 들리지 않던 녀석이 수박 한덩어리를 들고 놀러왔을 때, 서재에서 한 권의 책을 뽑아들고 한 말이다.
 
  읽고 싶으면서도 안 읽고 남겨놓는 몇 권의 책이 있다. 그 무엇을 해도 시큰둥하고, 아무것도 안하자니 심심해 죽을 것 같을 때. 그 때 읽으려고 있지도 않은 자식 결혼 혼수용으로 사놓고 아예 잊어버린 우량주식 몇 장처럼 아예 존재 자체도 잊어버린 몇 권의 책이 서재 맨 아래 가장자리에 몇 권을 숨겨둔 것이다. 꽤 많은 책중에 그곳에서 기웃대더니 얌전히 있는 책에 시비를 건 것이다. '아, 그 책이 저기에 있었네?' 정말 한동안 잊고 있던 책이다.
 
 그 책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해줬더니 '나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며 들고 도망을 쳤다. 어짜피 나중에 읽을 거 온전히 되돌려주라고 통화를 했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줘버렸다. 만화책도 열 페이지를 넘기면 잠이 들어버리기로 소문한 녀석이 언제 돌려줄 지 모르는 일이고, 돌려준다는 보장도 없어서다. 한 칸의 꽉 차있었는데 빈자리가 울할아버지의 앞니같아 얼른 사다 채워 넣었다. 그리고 '심심해서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은 어제였고, 그래서 하마터면 읽지 못할 뻔한 그 책을 꺼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제목엔 아무런 문제 없는 소설이다. 
   

 
  
  2년 전 '일처다부제'라는 생소한 소재와 '축구'를 더해, 2006년 월드컵이라는 시의성도 있었지만, 갑론을박의 논쟁도 불러일으켰던 소설이다. 최근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다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 그러고 보니 근간에 읽긴 읽어야 할 책이었다. 읽지 않고 뜸을 들인 덕분일까? 첫정을 펴는 순간부터 지난 밤의 심심함은 잊어버렸다. 모두 읽지 못해 아쉽게 잠이 들었고, 점심시간의 잠깐 여유를 틈타 카페로 달려가 모두 읽어버렸다. 프랑스소설에서나 만날 법한 소재에 축구가 더해진 정말 소설다운 소설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인아'를 먼 발치에서 좋아하게 된 '덕훈'은 어느 날 회식을 하고, '단' 둘이서 한잔 더 마시게 된다. 이야기중에 그녀가 FC 바로셀로나 축구팀의 열렬한 팬임을 알게 되는데, 그 또한 레알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축구광. 둘은 더욱 친해지고 애인이 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그녀. 하지만 그녀에게는 딱 한가지 단점이 있다. 그녀는 자유연애주의자다.
 
"사랑에 빠지면 고통이 시작된다. 사랑의 고통이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다. 내 경우에는 누가 누구를 더 많이 사랑했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더 많이 사랑했던 것 같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내게 잘했다. 문제는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몸이었다. 몸이라고 하니 이상한가? 그러너 어른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 어른의 사랑에서는 누가 누구를 얼마나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만큼이나 '누가 구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잔인한 문제는 사랑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에 관한 한 고통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p 50)
 
  덕환은 당당히 결별을 선언한다. 하지만 곧 그녀에게 꼬리를 내리고 돌아간다. 오히려 그녀의 연애관을 100% 수용하기로 하고 옐로우카드를 받는다. 한 번 더 결별을 이야기하면 레드카드다. 그후 그렇지 않은 척 하면서도 일로 인한 그녀의 늦은 귀가와 술자리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실제로 일때문 일 수 있고, 회식일 수 있는데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한다. 다 좋은데 딱 한가지 마음에 안드는 그녀의 연애관은 급기야 플레이보이 친구에게 조언을 얻게 만든다. 친구는 말한다. "결혼해라." 지금이 좋다고 버티는 그녀를 달래고 달래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연애관은 바뀌질 않는다. 결국 아내가 된 인아에게 이런 말까지 듣는다. "나, 그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어. 그렇지만 덕훈씨도 사랑해."
 
  마누라가 바람피운다는 것은 아끼는 자전거의 안장이 없어진 것과 같다고, 그래서 안장을 갈아 끼우기보다는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게 된다며 이혼을 앞둔 친구의 변辯 에 그도 맞는 말이라며 따르고 싶지만, 그녀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는 덕훈, 어쩌면 인아가 두번 째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그 '놈'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클 것이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소설의 제목처럼 '아내가 결혼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아는 덕훈의 아내다. 그 후 일어나는 웃지 못할 이야기는 더이상 말 못하겠다. 매맞을 것 같아서...
 
  '일처다부제'라는 소재는 어처구니 없는 소재같지만, 한편 지금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남편들의 외도나 부부들의 아슬아슬한 불륜에 대한 당당한 고백인지도 모른다. 몰래 벌인다면 범죄겠지만, 상대도 이미 알고 있는 부인의 연애는 '싫음 할 수 없다. 하지만 너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주장만큼 정당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잣대는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억장무너지는 아내의 연애관은 '종종번식의 본능' 운운하며 벌이는 남자의 그것과 닮아서, 덕훈의 갈등과 고민은 '바람피는 서방둔 아내'의 마음과 일맥상통하다. '싫으면 관두면 될 것'인데, 싫지 않은 것이 문제다. 덕훈에게 인아는 '팜프파탈'의 클레오파트라고, 백만 개의 흡착판과 2백만 개의 부드러운 솔기를 지닌 옹녀다. 그녀에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덕훈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덕훈이라면, 이 스토리는 어떻게 될까?
 
그 해답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에게서 찾을까 한다. 노름에, 바람에 할머니 속을 ' 썩어 문드러지게' 썩혔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실 때면 할머니는 그 이야기의 끝에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 지금 당장 죽어도 원은 읍다마는 '사랑같은 사랑' 한 번 못해보고 중는기, 그기 정말 한스럽데이."
 
 덕훈은 인아를 사랑하고 있다. '아내가 결혼하는 있을 수없는 사태'를 맞으면서도 그녀와 헤어지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애정이 되었든, 애증이 되었든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겠다. 나중에 그보다 더 나은 사랑을 만나게 될 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저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세상도 아니고, 저 좋아 죽고 못살겠다면 그런대로 잘 사는 인생이다. '당신을 완전히 가질 수 없다면 반쪽이라도 갖겠다' 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자보의 고백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허락하는 '일로나'가 있다면 그것이 진심이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가정적인 내 남자에게서 '다른 여자의 향기가 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아내나, 무엇인가에 미쳐 수시로 집을 비우는 아내를 둔 남편에게는, 그리고 이시간에도 속고 속이는 묘한 심리전 속에 모든 기운을 허비하는 부부들에게는 '애들 소꼽장난'같은 귀여운 연애행각으로 보이지 않을까? 덕훈은 행복한 놈인지 모른다. 최소한 자신을 부러워해 줄 '우리 할머니'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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