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전쟁 - 세계 빅3 스포츠 기업의 불꽃 튀는 기업 전쟁
바바라 스미트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세계적인 스포츠 기업 두 곳의 '스포츠마케팅 비리'를 파헤친 멋진 책! 

  늦은 밤, 혹은 이른 아침 가장 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파워워킹'을 나설 때면 하게 되는 고민 하나는 운동화는 무엇을 신을 것인가?이다. 그렇다고 필리핀의 전대통령 부인 이멜다 여사의 구두만큼 운동화가 많아서는 아니다. 그저 걷기만 하는 운동을 택한 탓에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이 스포츠는 매번 반복되는 단순한 운동인 터라 자칫 지겨워 운동을 포기할 수 있기에 계절이 바뀌는 석달에 한 번 씩, 지금껏 열심히 운동한 자신에게 선물로 새 런닝화와 운동복을 구입하는 것이다. 워킹을 질리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요령이라며 권한 후배의 조언이기도 한데, 그래봐야 구입비가 전에 다녔던 헬스클럽에 들인 비용보다 적게 들기도 하고, 또 실제로 운동이 지겨워질 때 쯤이면 이번에는 무슨 신발과 운동복을 살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에 한 번씩 고비를 넘길 수 있어 유용했는데, 그 덕에 석달에 운동화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제는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Impossible is Nothing' 을 신을까 고민했지만, 입고 있는 운동복에 걸린 몇 개의 갈고리 때문에 갈고리 하나를 더 추가하기로 정했다. 메이커는 '그냥 한 번 해봐! Just Do It!'. 우습다, 오밤중에 네깟놈 운동화를 누가 볼까보냐 싶지만,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발장 앞에서 1분여 고민하며 치루는 유치하고 어리숙한 나만의 작은 고민이다.
 
  0.001초라도 좀 더 빠른 기록을 위해 0.1 그램이라도 더 가볍고 편안한 운동화가 필요한 육상선수나 운동선수가 아니고서야 뭘 신어도 상관없고, 그 차이를 알까 싶지만 일반인들의 운동화선택은 선수들의 그것 못지 않다. 세상에는 세계적인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멋지고 예쁜 운동화들이 평생을 매일같이 바꿔 신어도 될 만큼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최고의 운동선수들이 이미 신고 뛰었기에 운동효과는 극대화 될 것 같아서 마이클 조던처럼 덩크슛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데이비드 베컴처럼 화려한 프리킥으로 골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닌 걸 잘 알지만, 정말 그럴 것만 같다. 도대체 이 멋진 것들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그것들의 시작도 이렇게 화려했을까? 도대체 이 운동화 한켤레로 얼마를 벌어들일까? 유독 신발에 관심이 많은(물어보면 남들은 나보다 더하지만) 이처럼 평소에 갖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 집어든 책이 있다. 바바라 스미스의 책, [운동화 전쟁]이다. 원제목은Drei Streifen gegen Puma 이고, 미국판은 Sneaker Wars: The Enemy Brothers Who Founded Adidas and Puma and the Family Feud That Forever Changed the Business of Sport 이다.
 
 


 
  운동화 전쟁Sneaker Wars,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기기에 앞서 저자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바바라 스미트Barbera Smit 는 영국과 프랑스의 여러 매체의 날카로운 비즈니스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칼럼니스트로, 하이네켄맥주 회사를 경제사적으로 스캔들을 다룬 책, [브라우어라이 하이네켄:Heineken: Een leven in de brouwerij] 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 책 [운동화 전쟁]을 쓰기 위해 무려 5년에 걸쳐 광범위한 조사와 자료수집, 그리고 아디다스, 푸마, 나이키와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가족 구성원들은 물론 수많은 동업자, 간부들과 독점적인 인터뷰 또는 전화인터뷰를 바탕으로 저술한 책이다. 저자의 소개에서 느꼈을테지만 이 책은 세계적인 스포츠 슈즈 회사들을 홍보하기 위한 책이 절대 아니다. 그들의 시작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발전과정을 살피고,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창업자 가족들의 과거사와 기업들간의 피튀기는 암투를 그린 일종의 고발성 르뽀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기업, 즉 아디다스, 푸마, 나이키 모두 현재 왕성하게 영업을 하고 있고, 거의 독점적인 위치에 있는 덕에 저마다 최고의 매출액을 달성하고 있는 세계적인 스포츠 기업들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에에 이 책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전에는 몰랐던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이 책의 첫번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루돌프 다슬러Rudolf Dassler 와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 형제는 세계적인 스포츠메이커인 푸마Puma 와 아디다스Adidas 의 창업주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발제조 기술이 뛰어난 아돌프와 경영수완이 좋은 형 루돌프가 처음에는 함께 운동화 회사를 함께 운영하다가 사업적 이견대립과 가족간의 갈등으로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못하는 '철천지원수'로 갈라선다는 것이다. 국내의 회사인 ‘형제 주류(酒類) 회사’인 국순당(대표이사 배중호)과 배상면주가(대표이사 배영호)를 운영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주류 CEO형제이야기와는 격이 달랐다.
 
   아돌프 다슬러의 운동화 회사, 아디다스가 독일에서 인정받고, 세계에서도 주문이 쇄도하게 된 역사적인 사건은 '베른의 기적'으로 알려진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이었다. 아침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이 경기가 시작할 때 즈음 빗방울이 떨어지게 되자, 아디(Adi-Adolf의 약자) 다슬러는 비올 때를 대비해 만든 비장의 새 축구화를 꺼냈다. 이 축구화는 잔디 사정에 따라 스카이크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경기 초반 전반 8분 만에 헝가리는 독일을  2:0으로 리드하지만, 계속되는 비에 헝가리 정부가 제공해준 축구화를 신은 선수들은 미끄러지기를 반복한다. 독일은 종료 5분을 남기고 란의 그림같은 슛이 성공하면서 3:2 역전승을 거두며 '마자르인 마술사' 헝가리를 누르고 승리를 거둔다. 헬무트 란의 결승골로 결정된 이 승리로 수백만의 독일 사람들에게는 나치 지배가 끝난 후 굴욕감, 비애, 빈곤으로 얼룩졌던 암울한 시가가 끝나는 것을 상징했다. 그들의 의미있는 승리 뒤에 아디 다슬러는 숨은 주역이 된다.
 
 

 
 
  그 후 아디다스의 축구화는 승승장구를 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고, 루돌프 다슬러의 푸마는 늘 동생의 이름에 가려 이인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들의 명성은 경영권을 물려받은 아들들에서도 마찬가지가 되는데, 오히려 그 격차는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가 물려받으면서부터 그 격차는 더 커진다. 활발하고 배짱이 좋은 호르스트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실력과 기술자인 아버지가 갖지 못한 경영적 수완까지 물려 받아 아디다스를 세계 최고의 운동화 회사로 만든다. 그는 아버지가 성공을 일으킨 '베른의 기적' 사건에서 다른 쪽으로 성공의 열쇠를 찾게 되고, 그 역시 호주 멜버른 올림픽에서 모든 선수들에게 무상으로 운동화를 주는 것으로 다른 운동화들을 따돌리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올림픽에서 운동화를 팔아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순간 자신의 운동화를 신도록 하는 최고의 광고, 즉 '스타마케팅'의 시작을 만든 것이다.
 
  이 때부터 기업간에 불붙은 스타마케팅은 하나의 역사를 이룬다. 스포츠광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은 조금 더 많은 돈과 장비제공에 서슴없이 브랜드를 갈아치우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그 때마다 놀라운 성장을 이루는 기업의 매출을 살펴보면서 돈이 돈을 버는 '땅짚고 헤엄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후원했던 인물을 FIFA 회장으로 만들고, IOC 위원들로 내세워 명실공히 돈으로 뒤범벅이 된 '스포츠 마케팅 비즈니스'도 함께 구경하게 된다. 도청과 회유가 난무하고, 상속다툼과 지분분할로 형재애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가정이 파탄되는 회장들도 만나게 된다. 주먹구구식으로 방만한 경영, 게다가 서로 물고 뜯는 아귀다툼으로 전락한 형제 기업들 틈에서 미국에서 키워진 필 나이트의 '나이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가득하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경영속담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은근히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의 잔치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막강한 브랜드 네임의 힘을 입고, 스타플레이어의 명성을 등에 업으면 팔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공식이 이 책에서 성립되고 있었다. 소비자가 어떤 제품의 어떤 면에 열광했는지가 아니라 어느 팀의 누구에게 돈을 줘서 신게 했는지가 그들에게는 관건이었다. 소비자들은 그저 돈을 들고 제품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는 맹신도적 추종세력Wannabe에 불과했다. '그들이 신었던 것이니까, 나도 그것을 신는다면 그와 같은 기록과 성적을 거둘 것'이라는 망상과 허망한 동일시를 당연한 듯 생각하고, 이를 이용해 음성적으로 온갖 뇌물과 회유를 일삼았던 스포츠기업의 행태를 보면서 허탈함마저 들었다. "그들을 추종해 찾아 입으면 입을수록 허망해지고 불행했다."고 고백하며 No-Brand를 실천하며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을 쓴 바 있는 닐 부어맨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비단 스포츠브랜드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생산품목 하나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국내외 모든 기업이 음으로 양으로 서로 각축을 벌이며 지금도 싸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형제들이 싸우는 동안 나이키가 세계를 주름잡은 것처럼 레인콤과 거원을 비롯한 업체들이 서로보다 약간 더 나은 제품을 쏟아부으며 기록 경쟁을 하고 있을 때, 후발업체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 회장은 가장 단순하고 편한 기능으로 소비자를 기절시킬 만큼 놀라게 만드는 '나만을 위한 MP3 플레이어, 아이팟'을 만들어 세계를 제패했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기업경쟁이 되어야 하는지를 이 책은 여실히 이야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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