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독종 - 세계 양궁 1등을 지킨 서거원의 승부 전략
서거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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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세계정상을 지킨 양궁, 그 위대한 리더십을 밝힌 책! 
 
 
  흔들리지 않는 고목처럼 우뚝 서서 과녁을 겨냥한다. 남겨진 시간 10초. 하늘을 올라 포물선을 그리며 돌듯 날아서 노란 동그라미에 꽂힌다. 관중은 함성을 지르고 상대편은 한숨을 짓지만, 당연하다는 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시 활을 꺼내든다. 또 한 발의 명중을 위해...
 
 지난 2008년 북경 올림픽때 그 어느 때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바로 '양궁'이었다. 25년 정상을 지켜온 우리나라를 끌어내리려 경기운영방식을 또 다시 바꿔 한 발을 쏘는데, 1분의 시간만을 허락하고 모두 열두 발만 쏘게 했고, 이번엔 승리를 가져올 요량으로 적진 북경의 응원단은 선수의 조준시간에도 야유를 서슴치 않고 보냈다. 비바람이 치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또 하나의 변수가 되어 한 발의 실수라도 생기면 패배를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남,녀 단체전 모두 석권하고, 개인전은 남, 녀가 은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저들을 저렇게 오래 정상으로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궁금했다. 전 국가대표이면서 금메달 수상자였던 각 방송국의 해설자들은 '지도자와 선수의 단합 덕분'이라는 '짜놓은 각본'같은 말만 대신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했다. '정말 정말 뼈를 깎고 피나는 훈련을 했던 덕분'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에이~ 또 저소리.' 하면서도 '도대체 얼마나 훈련을 열심히 했고, 지도자와 선수들의 단합이 잘 되었기에 감히 저들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저렇게 훌륭한 성적을 거두는 것인가?' 다시 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답이 한 권의 책에서 풀어졌다. (양궁경기를 더욱 실감나게 보기 위해) 좀더 일찍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법하지만 얄궃게도 올림픽 직후 출간된 책, 한국양궁의 1등 신화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며, 현재는 대한양궁협회의 전무이사로 있는 서거원씨의 [따뜻한 독종]이 그 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양궁이 양궁 종주국도 아닌 우리나라가 40년의 짧은 양궁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난 25년간 세계 양궁을 리드하고 있으며, 국내 스포츠 종목 중 훈련 프로그램과 기본 사법 심지어 스포츠 종목 용품까지 한국화되어 역수출되는 유일한 종목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에 있는지, 이른바 '한국 양궁의 저력은 무엇'인지에 대해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저자가 설명해 준 책이다. 올림픽 금메달 효자종목이면서도 자주 접할 기회가 없어 -내가 찾질 않으니 '비인기종목'이라는 말은 창피해서 못쓰겠다 - 세계대회 때만 되면 늘 궁금해하던 것들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대답들이 너무나 솔직해서 '외국의 양궁관계자들에게 번역되어 읽혀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스러울 만큼 솔직담백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저자는 제일 먼저 '화랑의 후예이기 때문에 활을 잘 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국민들의 자랑스러운 우문愚問 에 손사레를 친다. 세상에 마땅히 그러한 것은 없다.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이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국가대표로 뽑히게 되어 인터뷰를 하면 모두 이렇게 대답한다. "훌륭한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제가 뽑힌 만큼 더욱 더 열심히 해서 꼭 금메달로 보답하겠다."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피땀 흘린 우리의 궁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지, 화랑의 후예였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저자는 힘주어 이렇게 말한다. " 그 선수는 원래부터 대단한 카리스마를 타고나서 아무렇지 않게 10점을 꽂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는 그 순간의 순간적 집중력과 승부근성,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하는 열정, 그것은 순전히 후천적인 노력이 맺은 결실이었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 끝에 나온 결과일 뿐이다.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노력과 열정이 그 죽을 것 같은 순간에 담담하게 집중해서 활을 쏠 수 있게 한 것이다. 태극전사들이라고 해서 무서움을 모르고 긴장도 하지 않는 초인들이 결코 아니다. 인간적인 공포와 긴장을 이기기 위해 4년 내내 피땀을 흘린 평범한 젊은이 들이다."  (p77)
 
 또한 한국양궁의 역사는 남들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스포츠에 접목시키는 혁신적 개발의 역사, 역발상의 역사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스포츠에 과학을 접목시키고, 스포츠 심리학을 적용하였으며, 등산, 수영, 해병대 훈련, 북파 공작원 훈련, 번치점프, 무박 3일 행군과 같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훈련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 시행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없었지만 최근 자국민의 성적을 위해 고성이나 소음을 일으키는 관중 - 지난 북경올림픽때 우리가 목격한 것과 같은 - 들을 고려해 올림픽 공원에서 양궁연습을 하는가 하면 미사리에 있는 경정경기장에서 관중들을 옆에 두고 그들의 함성과 소음을 견뎌가며 활시위를 당기는 연습을 했다. 극한의 공포를 위해 11미터 높이의 다이빙을 시켰고, 뱀을 옷 안에 넣어 바지 밑으로 꺼내는 담력테스트도 했다고 한다. 저자는 번지점프 중에 정말 뛰어내리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어느 선수와의 에피소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감독이 뛰어내린 다음 다시 올라와서 한 30분 동안 선수를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자 감독이 또 뛰어내리고, 다시 올라와서 선수 붙들고 설득하다가 도저희 못 뛰겠다고 하니 또 뛰어내리고...그렇게 하기를 무려 9번! 여자팀 감독이 무려 9번을 뛰어내린 것이다....(중략)..."꺄~악!"
감독들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 선수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미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린 후였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감독들 모두 입을 쩍 벌렸다. 다리에 밧줄을 매고 뛰어내린 게 천만다행이었다. ... 충주호에서 그 일이 있고 나서 한 달 후 그 선수는 세계대회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p122)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한국양궁을 이끈 우리의 지도자들의 면면에서였다. 국가대표선수들이 몸담고 있는 실업팀이 해산되자 졸지에 직업을 잃은 선수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국가대표감독직을 사직한 후 기약없는 '백수'생활을 하며 '새로운 실업팀 창단'을 위해 발벗고 뛴 가족같은 지도자, 선수들의 흔들림과 슬럼프에서도 그들을 믿고 끝까지 함께 하며 기다려준 인정人情을 가진 지도자, 그리고 모든 훈련을 함께 하며 선수와 지도자는 늘 함께 한다는 동반자적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가슴 뭉클하게 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저자의 문재文財가 예사가 아니다. 스포츠 지도자라고 하면 선수생활을 먼저 했던 선배 선수라는 편견때문에 저자의 글솜씨에 대해 선입견이 없잖아 있었는데, 독자로 하여금 감동과 재미를 느끼게 하고,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이 있는 글을 만나고 놀랐다. 그리고 곧 그런 힘은 '독서력'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기발한 훈련방식이나 탁월한 리더십 또한 그의 '독서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아무리 못 읽어도 1주일에 최소 1권, 1년에 기본적으로 5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는 원칙에 대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실천하기 어려운 일로 여긴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평생 동안 독서사 생활 습관의 하나였었기에 그런 시선을 접할 때마다 겸연쩍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독서는 내 양궁 인생의 중요한 자산이다. 흔히 운동하는 사람들은 책도 읽지 않고 무식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양식이 밥이 아니라 책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하고 또 매우 중요시해 왔다. 예를 들어 앨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 같은 경우 다 읽고 나서 저자가 제시하는 통찰의 힘에 대해 신선한 충격을 받은 나머지 두 번 세 번 반복해 다시 읽을 정도였다. [제 3의 물결], [부의 미래]를 비롯해 앨빈 토플러의 책은 거의 다 읽었는데, 나로 하여금 양궁인으로서, 그리고 양궁 지도자로서 깊은 성차을 하게 해 준 저자중 하나다. (...) 책을 붙들고 있는 것과 더불어 '메모'는 내 몸에 밴 또 하나의 중요한 습관이다. 인상 깊은 구절에 밑줄을 긋거나 색지를 끼워 표시를 해두는 것 이외에도 반드시 메모를 해 둔다. 기억에 남는 문구, 감동을 주는 글귀들, 선수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 싶은 문장들, 기업체 강의를 할 때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 인용구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머릿속에 떠오른 나만의 생각드을  그때마다 수첩이나 메모장에 적은 다음 통째로 외워둔다."
 
   이 책의 곳곳에 숨어 있는 [서거원의 Winning Secret]은 그의 독서량과 범위 그리고 이해와 활용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거스 히딩크'만큼 책 좋아하는 '멋진 지도자'가 있다는 데에 놀랍고, 반갑기 그지 없었다. 또한 조그맣지만 사업을 하는 만큼 사장 내지는 CEO라는 관점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자신의 지도자관 또는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지켜보면서 [서번트 리더십], [감성마케팅], [블루오션의 전략]등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수들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직원)들이 아니다. 그들의 몸을 이용해 최대한을 뽑아 세계의 정상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구성원 하나 하나를 읽어낼 수 있는 지도자라면 그 어떤 일을 하던 최고의 리더가 될 것 같았다. 한편 독자의 입장에서는 선수들을 말 그대로 '가족처럼, 형제 자매처럼' 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다시 북경올림픽 양궁경기장으로 돌아가보자.
세찬 비바람이 불고, 관중이 야유를 하고 있는 가운데 선수들은 한 발 한 발 정상을 위해 다가간다. 그들이 긴장되거나 혹은 한 발을 쏜 후 만족스럽지 못해 안타까워할 때 그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같은 관중의 야유를 듣고,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과녁의 점수에 상관없이 조용한 미소를 짓고 끄덕이며  '잘했어, 잘했어' 작은 박수를 보내는 '큰 나무'들이 있었다. 그들이 다음 활시위를 위해 마음을 고치며 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큰 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이 즐겁게 자신의 일에 임하고 그들이 100%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한 것은 리더의 '조용한 미소와 작은 박수'가 아닐까?   웬만한 소설보다 스포츠 경기보다 더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멋진 책이었다. 한국 양궁을 더욱 더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 그날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은 사람들,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정말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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