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오늘을 사는 지적인 유부남의 슬프지만 유쾌한 자기고백!


   
  대학때 잘 어울리던 동기들과 '계契'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었다. 홀수 달 마지막 금요일저녁, 그럴듯한 장소에서 먹고 싶은 것 잔뜩 사놓고 만나 둥그런 원탁에 둘러앉아 친목도모로 조촐하게, 아주 조촐하게 카드놀이를 하는 모임이다. 동종업계의 소식도 듣고,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도 나누자는 목적에서 만들었는데, 나름 유익한(?) 모임이었다. 그들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하룻밤 술값'의 목돈을 놓고 열띤 승부수를 띄우고, 승자는 패자에게 술 한잔과 차비를 나눠주며 자신의 '남성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하룻밤의 전투였는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점점 그 수가 줄어들었다. '황야의 7인'이라며 시작한 모임이 2년을 간격으로 '독수리 오형제로', '서태지와 아이들'로 숫자를 갈아야했다. 그 뿐인가? 손을 털고(다 잃고) 일어나며 "자, 오늘은 누구한테 술을 얻어먹냐?"고 웃던 자식들이 한 판에 몇 푼 잃을라 치면 "에구구, 우리 애가 분유값 두 통 날라갔다. 쯧쯔..."라며 안타까운 얼굴로 머리를 쥐어 박고 있으니, 게임도 재미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밤 11시만 되면 심야할증으로 택시타면 마눌에게 맞아 죽는다며 하나 둘 일어나는 통에 밤을 하얗게 올나이트 모임이 미성년자 디스코텍처럼 변해버렸다. 마지막 두 명이 남은 지난 해, "우리 맞고 칠 순 없잖아?" 라며 그 계모임을 없애버렸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소중한 무엇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때 둘은 맹세했다. "변해버린 녀석들 보기 싫어서라도 우리는 싱글로 살자"고. 지난 봄 나머지 한 녀석도 열 살 어린 신부에게 도둑장가를 들었다. 얼마전부터 '유부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단다. 치사한 자식들.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것과 싱글로 (마지못해)살아가는 것을 두고 '행복한 구속'과 '외로운 자유'라고 생각해 왔다. 제눈이 높은 건지, 능력이 모자른 것인지 혼자 살아가며 느끼는 것은 결혼해 '행복한 구속'에 속한 이들은 마냥 부러운 존재라는 것. 제가 죽을만큼 사랑하는 짝을 만났고, 사랑의 결과로 자신을 닮은 2세도 얻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게다가 잭이 심은 콩나무마냥 무럭 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밥 안먹어도 배부르겠다 하는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외로운 자유'가 그립다 하니 이 또한 소모비용과 기회비용 사이에서 집착하는 전형적인 인간성이 아니겠나. 오늘 '행복한 구속'에 속한 녀석들이 왜 초라한 내 위치를 그리워했는지를 조금은 알것 같았다. 배를 움켜지고 웃게 만든 소설, 다비드 아비께르의 [오, 나의 마나님]을 읽어서 였다. 프랑스어인 원제목은 Le musée de l'homme : Le fabuleux déclin de l'empire masculin (인간 박물관: 남성제국의 가상적 몰락) 이다. 순차적인 진화의 끝이 남자 다음에는 여자라는 원작의 책표지가 이 책의 전부를 말하는 것 같다. 맞다, 이 책은 아내에게 눌려사는 현대 남성의 자조섞인 소설이다.   
 

   
 자신의 결혼 후 삶을 이야기한 이 책은 소설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에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애매한 장르다. 하지만 소설만큼 재미있고 유쾌하며, 에세이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마치 프랑스의 빌 브라이슨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질 만큼 페이지마다 폭소를 자아낸다. 결혼후 잃어가는 자신의 남성성에 반비례에 우성 유전자적 인간으로까지 보이는 아내를 비교하며 때로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아이러니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곳곳에서 남성만이 느낄 수 있는 쓴웃음도 눈에 띈다). 아이의 공동육아를 기본으로 알고 있는 프랑스의 남자들은 우리의 그것보다 더 했다.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도 보다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아내의 능력을 당해내지 못해 무시당한다. 나아가 이젠 마지막 보루인 월급마저 자신보다 아내가 더 받게 된다. 그러자  
 
 여섯 번 째인가, 일곱 번 째인가 보는 마피아 영화 [대부]에서 눈짓이나 턱만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딸들과 아내를 부엌으로 보내는 것을 보고 자신도 굵고 낮은 목소리로 흉내를 냈다. "혼자 거실에서 식사하고 싶어 그러니 당신은 부엌에서 먹어. 다들 아무 말 하지 말고, 행여 나를 바라볼 때면 눈을 깔아. 내가 손가락으로 탁 하는 소리를 니면 음식을 가져오라고. 골치아프게 따지지 말고." 한 시간 동안 깔깔거리는 아내의 웃음 이후에 돌아온 것은 한 컵의 적포도주 목욕, 그는 그날 저녁 혼자 부엌에서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 비교하는 건 정말 사내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다섯 살 때는 장난감 트럭 크기를 비교한다. 열 세살 때는 성기 크기를 비교한다. 열 여덟 살이 되면 여자친구의 가슴을 비교한다. 서른 다섯에는 전자수첩을 비교한다. 그런 식으로 끝까지 계속한다. 아니다, 끝에 가면 더이상 비교하지 않는다. 멍청이처럼 세상을 뜨니까."(p62)
 
 그는 계속해서 아내와 비교하고 비교하지만 결국은 아내가 항상 이긴다. 그래서 비교하는 것도 포기한다. 자신의 남성성과 열정 모두를 반지에 녹여 아내에게 끼워주는 순간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내가 모두 빼앗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한 여성에 대한 사랑과 어여쁜 어린 두 딸, 그리고 버려지고 우스꽝스러운 자신을 비웃을 수 있는 유머는 남겨주었다고 한다. 불쌍할 만큼 자신을 이야기한 이 책도 아내의 허락을 받아 쓰게 되었다고 전하면서.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위해 그리고 아이를 위해 실수를 거듭하지만 분발하는 모습은 남자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3 초마다 바뀐다고 했던가?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그의 수다스러움은 만만치 않다. 결혼후 왜소해지고 여성화되는 자신을, 그리고 변해버린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 변해버린 자신을 웃음으로 해소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도 중첩되지 않을까 여유롭게 조명할 수 있게 한다. 씨니컬한 유머가 가득했던 책, 슬프지만 재미있었다. 추석이 지나고 동기들과 오랜만에 모이기로 했다. '행복한 구속' 수감자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잃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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