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의 일기장
전아리 지음 / 현문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문 앞에서 만날 것 같은 '꼴통' 여고생의 이야기 !


  
  "아, 씨바~" 신호를 기다리다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본다. 내 뒤에는 여고생 단 둘 뿐. '에이, 설마' 했다. 헛들은 소리가 아님을 안 것은 삼 초도 되지 않았다. "그니까, 졸라..." 제 눈에 보이는 세상은 단 둘만 있는 듯 연신 욕으로 시작되는 그녀들의 대화 속에는 까르르르 뒤집어지는 웃음이 하나 가득이다. '쯧쯔 어디 세상에 여학생들이 욕을...' 하며 생각하면서도 나도 미소가 번진다. 목젖이 보일 듯 큰 입을 벌리고 웃는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언제 웃었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나의 굳은 입모양을 번지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세상, 참 많이 밝아졌다'고... 여고생들의 웃음소리를 등에 두고 잰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걷던 그때가 아마 내가 '을乙'의 입장에 서서 '갑甲'과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가던 길은 아니었을까. 몇 분을 더 '간신나라 충신'이 되어야 할 지 몰라 '자괴감'에 무너져 있던 때는 아니었을까. 아무튼 난 그녀들의 웃음에 전염되어 몰래지만 함께 웃을 수 있었다. 태초부터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또래들의 웃음소리.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
 
  하지만 확실히 정말 세상은 많이 변했고, 많이 밝아졌다. 마치 오늘이 구석기 시대때부터 그대로인 것 같이 생각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내 아버지 세대는 산업역군이 되고, 새마을 운동가가 되어 몸이 가루가 되도록 열심히 일해 이 나라를 굶지 않는 나라로 만드셨고, 죄수번호같은 486, 386 세대는 목이 터지고 어깨가 끊어질 만큼 가열찬 구호를 외치고, 불끈쥔 주먹으로 하늘을 찔러대 독재를 물리고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전후 허허발판의 땅덩이인 이 나라를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든 이들이 겪는 오늘날을 대변해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놀부가 죽어 지옥에 가서 제가 받을 죄를 선택하라고 해서 살펴보니 뜻뜨미지근한 똥물을 가득채운 운동장 만큼 큰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사우나를 하는 사람들이 보여 '여기서 벌 받겠소'하고 홀딱 벗고 탕에 몸을 담그니 이러더란다. " 삼분 휴식 끝, 또 다시 백년 똥물에 잠수우~."
나도 목젖을 내놓고 웃을 줄 알듯이 그녀들에게도 고민은 있겠지. 하지만 그녀들은 잠시 잊을 수 있는 능력, 잠시 뒤로 미루고 지금을 느끼고 만끽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어깨에 백 톤은 되는 짐을 진 듯 엄살피우는 내가 부러운 건 그녀들의 잠시동안의 여유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깊어 채울 수 없는 헛헛함은 이젠 이력이 났다. 걱정과 고민도 이젠 웬만해서는 1분도 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없으면 '매맞지 않고 잠자리에 든 신병의 마음'처럼 두근대고 울렁거린다. 이룬 것 하나 없는 것 같아 자꾸만 뒤돌아보고 싶어지는 것이 요즘, 한 권의 성장소설이 버스비 아껴 만화가게에서 킥킥대며 '문화생활'을 즐기던 중학교 1학년으로 나를 몇시간 돌려놨다. 바로 전아리의 소설 [직녀의 일기장]인데, 글을 읽을 맛이 성게알 빼먹듯 참 쏠쏠했다.
 
  이 책으로 작가를 처음 알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청소년문학상을 휩쓸고, 대학을 가서도 문학상을 탔단다. 이 작품 또한 제 2회 세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문재文材가 입증된 여대생 작가다. 노구老具가 될 법한 나이의 작가들이 써내려간 추억 가득한 성장소설도 아니라 책 속 주인공은 오늘을 이야기하는 성장소설이다. 약간은 삐딱한 성격에 잘 웃지 않을 것 같은 외모를 지녔을 것 같은 만만치 않은 여고생 직녀는 문밖에만 나가도 만날 수 있는 요즘 여고생같은 현실속의 인물이다. 그 시절이면 누구나 거의가 그랬듯 학교와 집을 오가며 만나고 얽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 책의 주를 이룬다(한 번의 가출, 그녀에게는 또 다른 세상의 경험도 포함되지만). 항상 자신을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하지만 그리 자주 볼 수 없는 바쁜 아버지, '견원지간' 네 마디로 둘 관계를 대신할 것 같은 엄마, 세상의 남자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만드는 한심한 오라버니 그리고 직녀, 그녀의 생각들이 이 책의 이야기 절반을 넘긴다. 그리고 절반이 약간 넘지 못하는 나머지는 그녀의 친구들, 그녀의 학교생활, 선생님들이 채운다. 아주 적절하고 타당한 배분이다. 내 시절을 더듬어도 딱 그정도 였으니까.
 
  학생이 '공부'빼면 고민이 뭐 있겠나 쉰소리들 하지만 왜 없겠는가? 하지만 그녀들은 다르게 고민하는 모양이다. 어른들은 바쁘다고 입버릇을 떨지만 자갈만한 걱정으로 하루를 꿍싯거리며 고민하지만, 그녀들은 그리 오래가질 않는다. 순진무구? 단순무지? 아니다. 보이는 세상과 사람이 모두 궁금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온갖 것이 흥미롭고 생각을 자극한다. 그래서 1분을 채 넘지기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감정이 이성보다 먼저 튀어나와 미친 말처럼 나를 끌고 다닐 때가 있거든. 얼핏 보기에는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하니까, 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거든? 근데 뒤에 보면 그게 아니야. 정신 차리고 보면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기 일쑤란 말이지. 그래서 난 감정이 날뛰려고 할 때면 일단, 유체이탈을 시작해. (...) 혼을 육체에서 분리해 빠져나오게 해서, 마치 다른 사람을 보듯이 내 몸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거야. 그리고 재판관 같은 목소리로 묻는 거지. 지금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무어냐?하고." (p111-112)
 
남들 마음 아는 것보다 제 마음 아는 것이 더 어렵다며 친구 민정이가 직녀에게 던지는 이 말에서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그녀들의 마음을 넌즈시 알려준다. 그렇다고 '너는 어떤 사람이니?' 혹은 '너는 누구니?' 라고 묻지 않고 '넌 커서 뭐가 될래?' '넌 대체 왜 그러니?' 라며 묻는 뻔한 어른들의 매뉴얼로 본인들이 묻고 싶은 질문만 툭툭 던지고는, 그 답이 자신들이 지닌 모범 답안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에 따라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가름하는 어른에게 자신을 맡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 자기 마음을 아는 게 더 어려울까? 내 생각엔,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잘 앍로 있다고 확신하는 데에서 문제가 비롯되는 것 같아. 사람이 사라을 완벽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거야. 그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해도. 때문에 나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오만을 품기에 앞서서, 나 자신에 대해 계속해서 알아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라며 그 답을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대화체는 숨쉬기 좋게 무척이나 짧다. 직녀를 포함한 그녀들의 생각도 짧다. 그리고 주어지는 시선도 짧은 만큼 에피소드들이 짧고 많게 느껴진다. 마치 직녀의 한 줄 일기장처럼. 그래서 전반적인 내용의 흐름이 스피디하게 느껴진다. 요즘 세상과 많이 닮았다. 직녀는 확실히 오늘날을 살고 있는 여고생이었다.
 
  지난 주에 읽은 최인호님의 [머저리 클럽]을 읽은 덕에 나보다 앞선 세대의 학창시절과 나보다 뒤에 선 학창시절을 겹쳐보며 내 학창시절도 덧대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직녀보다 두배가 넘는 나이가 되어 웃어가며 그녀들을 읽는 내게 '롤리타 신드롬'이냐고 눈흘길 지 모르지만,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까르륵 거리는 철없는 여고생들이 아니라, 그들도 나처럼 친구와 가족을 바라보고, 이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공유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면 독자로서 제대로 이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닌가 하고 대꾸하련다. 하나 있는 딸을 두고 '자식이 웬수'라며 속썩고 있는 또래의 딸을 가진 박선배에게 한 권 권해야겠다. 걱정하지 말아라, 직녀같은 딸도 있더라고 말하면서. '간호사'수업을 받는 직녀의 근황도 궁금하다. 직녀라는 이름이 꽤 오래 뇌리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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