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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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 아름다운 성장소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어스름 저녁 무렵 눈을 떴을 때,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안녕을 고하느라 핏빛 하늘로 물들이고 방안엔 나 혼자 뿐이다. 푸근하고 아늑하기만 했던 방이었건만 어제의 느낌이 아니다. 가장 소중한 이름을 부르며 온 방문을 헤매고 찾아도 있었던 자리의 온기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이제 남은 곳은 한군데. 반지하로 만들어진 부엌의 낮은 문을 열며 온 힘을 다해 부른다. "엄마! 엄마?" 그리고 곧 알게 된다. 이 집에 나 이외에 아.무.도.없.다. 걸음으로 열 발자국 남짓되는 사방의 공간이 운동장처럼 커져 보이고, 하늘이라도 뚫을 듯 천정도 높아지고 있다. 두려움과 설램은 순간 무너지고 그렇듯 무너지며 주저 앉아 울었다. 울어대는 제 목소리에 힘을 얻어 더 크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 엄마있는 곳까지 들리도록...
 
  대여섯 살때부터 느낀 '부재에 대한 상실감'이 유독 짙은 이유는 '맞벌이 부모'를 가진 아이여서 일 것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정체성마저 무너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까. 아직도 어릴 적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느낌은 그대로지만, 지금은 목놓아 우는 대신 덜 패워진 재떨이를 끌어당겨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작은 떨림이었다. 추호秋虎처럼 무서운 아버지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일었고, 욕은 한 바가지를 얻어 먹지만 벌리는 손의 절반 만큼(딱 절반만큼. 그래서 항상 두 배로 불렀지만) 용돈을 주는 줄 지 않는 화수분지갑이 이젠 없어졌다는 허망함도 일었지만, 무엇보다 세상 그 어디에 있어도 당신의 존재 자체로 조금은 더 튼튼했던 집이 금이 간 듯, 불안한 듯 했다. 따뜻한 온도 마저 떨어진 듯 했다. 이젠 더이상 볼.수.없.다.
 
  열 일곱의 '주니은'도 그랬다. 늘 함께 있을 것 같던 부모를 함께 탔던 차에서 모두 잃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아니 혼자 이 넗은 세상에 남겨져 버렸다. 부모를 잃어버렸다는 절망감과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날 것 같은 막연한 희망감에 잠시도 머물지 못하는 마음상태를 빌어 그녀는 '너풀거리는 치마를 입고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가 늘 거리를 떠도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고 말한다. 마음이 시큰해져 그녀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게 한다.
 
  "니은아. 니가 시원하게 못 울어서 마음이 아픈 거다. 슬픔이 몸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몸을 두드리는 거지...사는 게 다 빚 갚는 일이라 하더라. 나는 빚이 많아 세상에 오래 남아 있는 거지. 그러니 니은이 니도 때맞춰 밥 먹으러 오너라. 이 늙은이 도와주는 셈치고." 상실의 슬픔에 혼자된 분노와 두려움에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어린 니은이에게 네 곱절 나이 많은 할머니는 '내 니 맘 자알 안대이' 하듯 위로한다. 이승이 지옥이라 죄값을 치룬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마는 니은이는 지옥불을 뒤집어 쓰더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있다면...했으리라.   
 
  그녀에게 제일 친한 나무南无 또한 혼자다. 하지만 그녀는 제 스스로 혼자이기를 결정한 것, 독립인 것이다. '넌 그래도 부모가 있구나' 니은이는 그녀를 통해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자신과 자발적인 독립의 엄청난 차이를 알게 되고 분노한다. 망자亡者 앞에서 곡哭을 하는 이들의 눈물은 먼저간 자에 대한 애석한 미망未忘의 눈물이라기 보다는 남겨진 자의 살 날을 우려하는 미망자未亡者의 눈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겨진 것이 아니라 버려졌을 때, 그 눈물은 분노를 머금는다.
 
  그리고 곧 니은이는 '어떤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일까?' 고민한다. 막연히 여행을 떠나는 나무의 사촌 언니는 '징징거리지 않기, 변명하지 않기, 핑계대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라며 '금지'가 늘어가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 말하고, 장수포 할아버지는 '열살 때 생각하면 열살이 되고, 마흔살 때 생각을 하면 마흔 살이 되듯 여든살이 돼도 맘속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다' 선문답하시며 어른과 아이는 차이가 없음을 이야기하신다. 칠순이 넘은 왕고래집 할머니는 뒤늦은 한글공부를 하시며 그 공부를 어디다 쓰냐는 질문에 '온 바다를 돌아다니며 보소, 이보소, 바다가 어디 있는지 아오? 하며 평생을 보낸 것 같다'고 더 이상 바다를 찾아다니는 파도가 되지 않고 싶다며 앎을 쫓는 아이도 되돌아감을 준비한다. 장수포 할아버지도 흰수염고래와 거북이가 있는 저 멀리 바다로 이십대가 되어 되돌아 갔다.   '어떤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일까?' 누가 내게 묻는다면 '고아'가 될 때라고 말하고 싶다. 육순의 아들이 색동옷을 입고 어머니의 팔순잔치에서 깨춤을 출 수 있다면 아직 아이인 것이고, 사춘기를 모르고 생계를 꾸려야 하는 십대가장이라면 이미 어른이 짊어야 할 짐을 어깨에 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눈물을 점점 잃어가는 것이라고...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그냥 글자만 쓰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음을 깊이 뒤집어 밭을가는 것도 같고, 맘속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도 같고."  (137 쪽)
 
  간신히 한글을 배워 알게 된 수십 단어로 작문을 하며 왕고래집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한 편의 소설이 큰 바다를 담고 있었다. 이 소설을 '성장소설'이라고 한다면, 난 아직 아이인 것이고, 십대의 마음으로 읽은 것이다. 슬퍼서 먹먹해야 할 이야기들이 잔잔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푸른 바다에 흰수염고래가 있고, 거북이가 있고, 보랏빛 물체가 떠다닌다. 그 가까이엔 장수포 할아버지, 왕고래집 할머니가 있고, 니은이가 있고, 나도 있었다. 어른인 듯, 아이인 듯 그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많다. 세상이라는 바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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