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과 독서인들의 유토피아, 그곳에서 한국의 미래를 살피다.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의 책을 대하게 된 것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물론 중고교 시절에 책을 아예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꼭 읽어야지'하고 마음에 두었다가 읽은 책이 없다는 것이다. 하숙생활을 했던터라 동급생의 하숙집에 놀러 갔다가 한 두 권 빌려봤던 식으로 책을 읽었다. 당장 생각해 봤을 때 정확히 책제목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뿐이었으니 아예 읽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그렇게 짧은 독서력으로 대학을 들어갔으니 나도 한심하지만, 당시 대학입시제도 또한 한심하기 그지없다. 
 


  내가 다닌 대학교 주변엔 서점이 세 군데가 있었다. 물론 학교내 학생회관에도 한 군데가 있었지만, 그곳은 대학교재와 문방구를 겸한 곳이라 제외한다. 학교 정문앞에 있던 OO서점은 중고책방으로 주로 대학교재와 교양과목의 교과목을 주로 사던 곳이다. 변변ㅎ지 않은 인테리어에 누런 박스에 책을 넣고 바닥에 깔고 파는 방식으로 책을 취급했는데, 박스에는 빨간 매직으로 500원부터 차례대로 가격이 적혀 있었다. 외국서적에서부터 해묵은 잡지 심지어는 무단복제해서 제본까지한 선배들의 책들도 팔았으니 가히 만물상이 따로 없다. 그곳에서 10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A서점이 있었는데, 이곳은 사회과학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엔 책들이 있고 반대쪽엔 테이블 두어 개가 있어 사회과학(엄밀히 이야기하면 운동권) 동아리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하던 곳이다. 데모가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전경과 형사들이 제일 먼저 급습하는 그곳이라 '오해받을까 두려워' 몇 번 들어가지 못했지만 대학가의 서점다운 열정과 향기를 풍기던 곳으로 기억된다.
 
 마지막 한 군데가 단골집이던 OO글방. 우연히 알게 된 글방사장님 동생과 친해져 주말만 되면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책꽂이 한 칸 한 칸을 습격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함께 문을 닫고 글방앞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꼼장어를 나누며 책과 인생,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정말 행복해 했던 기억이 든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옆 대학 여학생을 좋아해 한 쪽 눈은 책에 한 쪽 눈은 그녀를 보느라 부사장 형님은 날 항상 '도다리눈깔'이라고 흉을 보곤 했다. 그곳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책을 샀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많은 기억들이 있다. 내 젊음의 휴식처는 책방이었다.
 
 
  

  

 
  이젠 세 곳 모두 편의점과 소주집 그리고 일년 마다 간판을 바꾸는 프렌차이즈 점포로 모두 바뀌어 버렸다. 지난해 오월 대동제에 초대되어 갔을 때 교내서점을 빼곤 서점이라곤 눈씻고 봐도 이젠 없다. 대학가에 더 이상 서점은 없다. 만약 아직 대학교 주변에 서점이 있다면 그대학은 명문대학이라고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는데야 어쩔 수 없지만 텁텁한 입맛이 나는 건 감출수가 없다. 
 
  요즘은 모두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듯,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구입한다. 출판사는 자구책을 찾아 파주로 들어가 둥지를 틀었고,서울 청계천에 마지막 살아남은 중고책방 몇군데는 이젠 책을 팔기보다는 추억을 파는 곳이라고 해야 할 듯. 책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만 이런 현실에 대해 애석해 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하지만 지난 해 부터 일어난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은 늦은 감이 없잖지만 반가운 일이다. 일본은 초,중,고교생의 67% 아침독서 10분 운동으로 독서를 권장하고 있고, 영국은 일찌기 1991년부터 영유아들에게 책꾸러미를 선물하는 북스타트 운동이 시행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독서문화가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하는 이때에 그 대안을 제시해주는 책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보고자 했다.
 
  이 책은 미술평론가인 정진국씨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유럽의 책마을을 탐방하고 신문에 기고한 글과 사진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으로 6개국 24곳의 책마을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개되는 곳 모두가 시골 깊숙히 박혀 있어 그곳을 찾아 헤맨 듯 그의 노력이 곳곳에 뭍어있는 책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책마을이란 단어 자체가 동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멀게 만 느껴졌던 나에게는 책 속에 숨어 있는 그림같은 책마을들의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건물 한 쪽에 조그마한 간판과 진열대, 혹은 상자 속에 책을 담아서 주인을 기다리는 서점들의 모습은 우리가 즐겨 찾는 현대화된 대형서점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 있음을 보여준다. 내나이보다 오래된 책들에서 품어져 나오는 눅눅한 종이 냄새와 빛바랜 표지의 책들, 그리고 수십 년동안 그것들의 주인인 것 같은 넉넉한 서점 주인들의 모습이 사진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눈에 보이는 듯 각국 책마을의 셈세한 묘사와 외국도서에 대한 깊은 조예 그리고 그들의 현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의미깊은 인터뷰는 유럽에서 공부하고 생활을 했던 저자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박식함과 책에 대한 사랑에 찬사가 연이었다.    
 
 
 
 
 
 
 
  저자는 책을 써낸 저자가 큰 몫을 차지 하지만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업자와 관계자들의 숨은 공덕, 그리고 그들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을 쓰는 저자와 번역자, 그리고 출판관계자들의 수고와 노력이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대우해줄 수 있는 나라가 문화강국이 될 수 있다고 또한 저자는 말한다. 그들의 시작은 높은 집값으로 많은 작가와 출판인들이 농촌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곳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책마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마을 경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문화운동의 성격까지 띠게 된 그곳들을 보면서 출판사들이 이제야 지방도시에 자리를 잡은 우리와 비교할 때 책마을이 들어서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이 자생적인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책마을이 생기지 않는다면, 정부주도적 일환의 사업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겠다 싶다.

시류를 틈탄 베스트셀러의 양산과 그들을 쫓는 독서가들, 그리고 여전히 3D업종으로 여겨지는 중고서점에 대한 편견등은 우리 독서문화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책마을에 동참하겠다고 짐을 싸서 낙향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하는 의문도 없잖다. 우선은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알 것 같으니 남이 의문이고, 가뜩이나 푸대접받고 있는 우리 출판인과 책관련사업 종사자들 또한 지금의 대우로서는 되지 않을 일로 보인다. 역시 멀고 먼 남의 남의 나라이야기인가?
 
 
 
 
 
 여행하듯 인터뷰하듯 써내려간 저자의 글과 사진을 보고 있자니 깊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지방에 이런 책마을이 생긴다면 난 그곳을 찾아갈까?' 이 책을 통해 정말 책에 미친 사람들, 그리고 책을 진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책이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책들의 수호천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책이 읽히지 않으면 또 다른 이름의 나무의 시체일 뿐. 나이를 많이 먹은 책들이 아직도 사람들의 손에서 사랑을 받는 곳, 책과 독서인들의 유토피아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 한 권의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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