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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
틱낫한 지음, 오다 마유미 그림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당신은 오늘의 하늘 색을 기억하나요? 하늘을 보긴 했나요?
지난 해 성탄즈음 이었다. 새로 산 노트북 덕분에 침대 위에서 워드 작업과 인터넷 서핑이 가능하게 되면서 밤을 잊은 채 그것에 매달린 덕에 자세가 틀어졌다. 척추에 이상이 생겨 왼쪽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유를 모른 채 '곧 사라지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더 심해져 통증을 동반했다. 그 후부터 일반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니 걷기도 힘들었고, 그 좋아하던 산책도 싫어졌다. 다리쪽 통증에 온 신경이 가서 두통이 생기고 덕분에 인상은 쭈그러진 걸레처럼 구겨진 채 펴지지를 못했다. 생전 특별히 아픈 적이 없다가 당한 것이라 '황망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어이가 없었다. 편히 잠도 자지 못하고, 일도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총체적 난국', 연말부터 석 달간 내 상황이 그랬다.
다행히 침술에 능하다는 한의사를 만나게 되었고, 꾸준히 침술과 약을 복용하면서 운동을 겸해 조금씩 나아지더니 이젠 자세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거의 모를 만큼 낫게 되었다. 신체의 일부가 고통을 당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잃었거나 상해거든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은 것은 거의 다 나아가서였다. 그리고 건강한 육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감사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모두 나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팠을 때 못했던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아~ 마음껏 보폭을 넓히고 절뚝거리지 않고 걷는 것이 큰 복이구나'. 아프고 난 후 이를 깨우치게 된 것이다. 세상에 모든 것이 당연當然 한 것은 없다.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음이다.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스트레스를 부르니 몸에 병이 생긴다. 짜증을 내니 리액션이 좋을리 없고, 화를 내니 다투게 되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나에게서 비롯함인 것이다.
베트남의 선승이자 시인이며 전 세계인의 정신적 지도자로 여겨지는 틱낫한 스님이 저술하신 이 책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은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게송偈頌 즉, 일상새활에서 암송할 수 있는 짧은 싯귀를 모아놓은 책이다. 선불교 전통의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한 이 게송은 명상 훈련임과 동시에 시적 훈련이기도 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면서 행하는 모든 동작들과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일상적 활동을 하면서 하는 게송등 모두 53 개의 짧은 싯구와 해설이 담겨 있다. 읽기 편하게 쓰여진 게송들을 읽다가 보면 나의 하루를 더듬게 된다. '하루에 몇 번 하늘을 봤는가? 그리고 얼마나 숨을 쉬었을까? 얼마나 땅을 내딛고 걸었으며, 얼마나 많은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몇 번 갔었는가?' 모두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다. 하루동안 살면서 스스로가 했던 행동을 몰랐던 것이다. 모든 것이 무의식적으로, 생존의 습관적으로 행했던 것인데 이것들을 의식하면서 그 속에 자연의 섭리와 베풂이 담겨 있음을 깨닫고 그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임을 알 게 된다.
이 책은 종교에 상관없이 명상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도하고 외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의식적으로 그것을 외우기는 명상에 참여하는 것만큼 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팠을 때를 생각하면서 읽음으로써 그 싯구와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건데 일상생활에 지쳤거나, 병중이거나, 스스로를 달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지 싶다. 게송 아래 틱낫한 스님의 해설은 작지만 큰 깨달음을 전달해 줄 것이다. 잠시의 순간이지만 평온해진 마음이 말해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