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디자인 아이콘 83
폴커 알부스 외 지음, 조원호 외 옮김 / 미술문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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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보다 더 훌륭한 멋진 디자인들이 100년 전부터 있었다?!
 
 세상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전화 한 대를 얻기 위해 100만원의 예치금을 넣고 백색전화 하나를 구입하려고 수 백 명의 순번을 기다리며 '제발 내 차례까지는 물량이 오게 해 주세요.' 라며 제품을 만들기가 무섭게 소화하려고 줄을 선 소비자를 경험했던 '제조업자 전성시대'인 20세기는 이제 안녕을 고하고,  기고만장했던 제조업자들은 '어디 나를 한 번 감동시켜 봐!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지'라며 두꺼운 지갑을 쥔 채 팔짱끼고 아래로 내려다 보고있는 소비자의 눈치를 살피며 수십 가지의 신제품을 선보여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가지고 있어 더이상 '부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소비자를 만나야 하는 제조업자에게는 요즘같은 '소비자 절대 우위의 시대'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십인십색十人十色 이라고 했던가? 제조업자의 입장에서는 저마다 다른 소비자의 기호에 발맞추어 제품을 만들어내자니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밖에 없고, 금새 바뀌어 버리는 취향과 유행을 따르다 보니 넘쳐나는 재고에 치어 '앞에서 남고, 뒤로 밑지는 웃지 못할 상황' 연출된다. 그런 시대의 흐름도 모르고 과거의 영광만을 생각하며 소비자를 우습게 여겼던 기업들은 보기좋게 퇴출되었고, 몇 몇 살아남은 기업들은 이젠 쉬이 변해버리는 소비자를 따르기보다는 그들보다 앞서 늘 꿈꾸고 갈망하던 제품을 생산해 내는 것. 다시 말해 소비자의 상상을 실현시켜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만이 살 길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른바 '감성마케팅'이 그것이다.
 
  오늘 하루동안 이 세상에 쏟아진 신제품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숫자를 가늠하기는 바닷가 모래알 세는 격일 만큼 자고 나면 바뀌는 신제품의 물결은 놀람을 넘어 경악하는 수준에 이를 지경이다. 이렇게 많은 신제품들 중에서도 몇 명도 안되는 주인을 만나고는 다시 창고로 들어가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20세기의 그때처럼 수 만의 대기자를 세울 만큼 사랑을 받는 대박제품도 나타난다. 게다가 하루 이틀 반짝유행이 아니라 수 년동안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면 그 제품은 소비자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다. 
 
과연 아이콘으로 불리는 대박상품들의 무엇이 소비자를 그토록 광분시킨 걸까? 
나는 그 답은 과거로부터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제품들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지금 소개하는 이 책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83]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책은 우선 '아이콘이란 무엇인가?' 를 우선 소개했다.
 컴퓨터에서 각각의 프로그램들이 담고 있는 정보의 내용이나 기능을 함축하고 있는 작은 그림이란 뜻의 컴퓨터 용어로 먼저 알려진 아이콘Icon 은 그리스어인 'eikoon'에서 시작되었다. AD초기 비잔틴제국 시기의 황제는 자기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하기위해 제국의 변방에 자신의 초상화를 보냈는데, 이는 초상화의 개념을 넘어 그를 대신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인들에게 제국의 초상화는 성화(聖畵 : Icon)로 받아들여져서 이를 발전시켜 신비로운 의미를 담아 글자를 모르는 종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데, 이는 이미지와 더불어 보이지 않는 이상을 상징하는 이데아가 포함되어 아이콘은 심오하고 신비로운 진실의 거울로 여겨지게 된다.  그런 기원에 걸맞게 최근에 들어서는 어느 제품이 소비자들이 꿈꾸는 이미지와 이상을 고스란히 담아 표현되고, 그것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제품에 대해 '아이콘이 되었다'고 부르게 되었다. 종교적 이미지와 이상으로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듯, 프로그램의 전체는 아이콘이라는 작은 그림으로 대표되었고, 이는 다시 시대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소비자들의 필요와 욕구(이상)을 하나의 제품으로 충족시켜 그것을 아이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세계 유수의 디자인 이론가들이 예리한 통찰력으로 현재로 재정립된 개념의 아이콘의 의미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 190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한 세기 동안 세상을 놀라게 하고 사랑받았던, 몇 몇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아이콘이라고 부르는 83개의 제품을 찾아내고, 그 기원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당대의 문화와 정서를 상징적으로 반영했으며 소비자들로부터 그토록 사랑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한데 엮은 책이다. 그 시대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으로 무장된 새로운 개념의 제품들이 무수하게 쏟아졌는데, 그 중에서도 산업별로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제품들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런 점에서 전면 올컬러의 화보를 채택하고 있는 이 책은 디자인 서적임에도 지난 백년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아이콘들의 탄생 스토리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거의 모든 작품에 이것들을 만든 디자이너가 소개되는데 관념적인 소비자들의 수요와 욕구를 잘 받아들여 이들은 예술작품으로서의 제품을 만듦으로써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제품디자인의 원류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1900 년대 초반부의 아이콘들을 살펴보면 디자이너로서의 기초교육이 전혀 되지않은 상황에서 도제로부터 디자인에 참여하거나, 혹은 현장경험을 하던 중에 다시 미술아카데미나 학원등에서 수련을 거쳐 다시 현장에 뛰어든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장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세련된 디자인이 통합된 제품들은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비했고 결국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데 이것은 소비자에게 구매욕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요즘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아이콘을 소유한다는 것은 부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었고, 디자이너의 이상과 시대적 흐름에 발을 맞춰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힐 하우스 체어]나 홀쭉한 모양을 한 [코카콜라병], 그리고 [롤렉스 오이스터 손목시계]등은 1900년대 초기에 만들어졌는데도 지금도 여전히 소비자들로 애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술과 실용을 겸비한 산업디자인의 힘의 유구성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21세기인 지금 쏟아지는 수많은 디자인아이콘들이 100년 후에도 여전히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있다면 과연 얼마나 되고,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민해 보게 된다.
 
뛰어난 감각들로 만들어진 1900년대 초기의 아이콘들은 현재와 같은 '감성의 시대'가 느끼기에는 후반부의 그것들보다 예술적인 감성을 더욱 자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사랑받는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 역시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커오면서 함께 했던 역사와 스토리를 오롯이 담고 있어 제품을 떠올리면 과거가 생각나고, 사람이 생각나며,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즉 자기체험적 기억때문에 더욱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이 책에서 소개된 [지포 라이터]를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으로 가지고 있던 지포라이터를 한 번 더 켜보며 그 시절을 추억했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이 신제품의 디자인에 앞서 항상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걸작들을 우리글로 된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는 것은 참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디자이너 뿐 아니라, 제조업에 관여하고 있는 비즈니스맨, 특히 디자인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경험을 안겨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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