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십 대의 어느날을 추억하게 하는 경쾌한 소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단 하나, 나의 [스무 살, 서울]이 생각나서였다.
그리 순탄ㅎ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낸터라 가족들을 남겨두고 고등학교는 강원도 강릉에서 보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절은 그 반대였다. 가족과 친한 친구들을 남겨두고, 난생 처음 강릉땅에 떨어져 홀로 고교생활을 했던 터라 외톨박이 3년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강원도에서 제일가는 수재들이 입학시험을 치루고 들어가는 학교에 꼴찌로 들어갔는데, 서울로 대학을 갈 수 있다면 '유아교육학과'라도 가겠다고 생각한 나에겐 당연히 낭만적인 학창시절은 머나먼 꿈에 불과했다. 다행히 서울의 '유아교육학과'가 아닌 삼류대학을 들어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일상생활에 치어 그동안 잊었던 나의 스무 살 시절을 이 책을 만나면서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에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 제 2의 일본소설 붐을 일으킨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스무살, 도쿄]를 읽었다.
 
  1959년생 작가의 이력과 맞물려 반쯤은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의 재수생활을 시작으로 서른을 일주일 남긴 스물 아홉의 인생까지 이십대의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가 보낸 이십대중 시대의 이슈와 맞물린 여섯 개의 이야기로 꾸며졌는데, 독특한 구성이 주목된다. 재수를 하기 위해 태어나고 자란 나고야를 떠나 도쿄에 도착한 날, 대학시절 연극과 동아리 동급생 고야먀 에리와의 첫 키스날, 스물 두 살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던 존 레넌이 죽던 어느 날, 고향나고야가 유치경쟁국 한국의 서울에 올림픽을 빼았겼던 어느 날 등의 하루가 재미있게 소개된다. 작가가 써내려간 글에 맞춰 눈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 시절마다의 다무라 히사오의 모습이 보이고, 그의 주변이 배경으로 떠오른다. 그에게 말을 걸고, 그가 답하는 대목을 읽다 보면 목소리까지 들리는 듯 했다.
 
억지로 꾸미지 않은 하루 하루의 에피소드는 마치 내가 겪은 어느 하루 같은데, 인간사이에서 만들어진 실수와 우연들이 웃음짓게 만들었다. 너무 쉽게 읽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은 저자만의 자연스럽고 친근한 표현력때문이리라. 이것은 다소 허무주의적이고 자조적인 하루키의 그것과는 다른 점이고, 소설을 통해 배움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게 하는 그의 라이트한 표현력이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그것이 아닐까?
 
"젊다는 건 특권이야. 자네들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가졌어. 근데 평론가라는 건 본인은 실패를 안하는 일이잖아? 그러니 안된다는 게야...실패가 없는 일에는 성공도 없어. 성공과 실패가 있다는 건 참 으로 멋진 일이야. 그거야말로 살아 있다는 실감이란 말씀이야."  알지 못하는 술주정뱅이 아저씨가 주인공 히사오에게 한 충고는 마치 작가가 이 글을 읽는 젊은 독자들에게 충고하는 듯 하고, "스물다섯 살이라.  벌써, 인가? 아니면 아직, 인가?" 하고 고민하는 대목에서는 기호지배적인 개념에 이끌려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청춘을 생각하게 된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는 [마지막 스물 아홉을 일주일 남긴 어느 날]이었는데,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오구라의 결혼에 앞서 배첼러 파티를 하기로 한 날 주인공 오구라는 나타나지 않고, 사업상 큰 고객인 고다씨는 별 일도 아닌데 보자고 하고, 형식적인 연인으로 여기는 리에코는 내일도 아닌 오늘 꼭 봐야 한다고 한다. 경중을 따지자면 순위를 매길 수 있지만, 인정과 관계를 따지자면 모두 봐야하는 순간은 언제든 언제고 찾아온다. 큰 부자가 된 고다씨의 자기고백을 들으면서 돈에 쫒겨 살다보니 고독하게 허세만 부리고 살게 되는 삼십 대를 알게 되고, 처가식구들의 권유로 결혼을 앞두고 내 것이었던 기타는 고향으로 보내고, 긴 머리를 자르게 된 오구라의 텅민 마음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고독한 자유를 버리고, 아름다운 구속을 선택함으로 청춘과 맞바꾼 젊은이의 마음을 알게 된다. 잊었던 마음속 기억을 되찾는 느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모습이 중첩되어 그 속도가 더뎌졌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그 시절 젊은이들의 마음은 모두 같은가보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있었고, 있을게다. 독립한 날, 키스한 날, 첫 직장에 출근한 날, 맞선 보던 날, 친구의 결혼식 전날 등 내게도 있었지만, 잊었던 기억을 묵혔던 앨범속에 찾아내듯 책속에서 추억했다. 확실히 필력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추적해서 읽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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