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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쟈핑와 지음, 김윤진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중국의 대표작가, [아무리 불러도 질리지 않는 이름,친구]를 말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설레임이다. [님이 오는 소식을 알리는 눈]이라고 풀이한 어느 빙과의 이름 설래임雪來恁 이 아닌 심하면 [두근 두근] 심장뛰는 소리가 들리는 상태의 기분, 설레임. 업무적으로 만난다면 내 의지대로 결과를 보고 싶은 기대에 설레일테고, 이성을 만난다면 마구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설레일테다. 싫지 않은 기분의 설레임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싱거운 마음의 상태에 변화를 주기 위해 갖은 치장과 말할 꺼리를 만들어 사람을 만나려 하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 목적이 사람이냐, 설레이는 기분이냐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인데 가끔 그것을 놓치는 것 같다. 구분하기도 어렵지만, 구분하기가 귀찮은지도 모른다.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우리가 외롭기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심경의 변화를 부르지만, 앞에서 말한 그것과는 다른 것도 있다. 하루일과를 모두 마치고 샤워후 개운한 기분으로 창가에 앉아 빙점에 가까운 맥주캔을 들고 맥주캔을 딸 때, 어느 비오는 봄날 추적대는 비를 피해 따끈한 국물에 파전을 시키고 소주 한 잔으로 속을 덥히고 싶을 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슴속 응어리를 오늘은 어떻게든 풀고 싶을 때 생각나는 사람. 설레지도, 두렵지도 않다.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미소가 번지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인디언 속담에 '내가 지닌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는 이름을 가진 사람, 친구가 그것이다.
이 책 [친구]는 중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쟈핑와가 자신의 인생을 함께 하고, 경험하고, 목격해주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문학가답게 문학과 예술에 몸을 담고 있는 그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그래서 다소 싱겁고 지루하게도 느껴질 법한데 눈에 보는 듯, 옆에서 듣는 듯 작가의 친구를 소개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두께가 제법되는 중수필집이다. 유명한 탓일까, 꽌시(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의 습성 탓일까 한 두명이 아닌 무려 오십여 명의 친구들이 소개되는데, 모습도 성격도 제각각이다.
단순히 자신의 친구를 소개하고 그들의 에피소드들을 거론하는 정도가 아니라, 친구의 장단점과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인생의 진리를 찾고, 예술의 길을 찾는 그의 눈에 놀라게 된다. 소개되는 친구들에 대한 소개와 묘사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지금의 쟈핑와는 이토록 많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너만 잘냤냐? 나도 친구는 몇은 있다'는 오만함에 책을 들었다가 친구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에 놀라게 되고, 그와 있었던 기억들을 그토록 속속들이 추억해 낼만큼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나에게 몇인가 하는 생각에 배우게 된다. 주목된 것은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 중에 아버지와 어머도 들어 있었는데, 제목이 친구인지라 논외의 인물이 아닌가 싶었지만,그만큼 그를 알아주고 함께 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그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모를 친구로 여긴 그는 친구도 함께 부모처럼 생각한 것이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고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스로 고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고독하지 않다. 고독감은 냉대를 받거나 유기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알아주는 지기知己 가 없을 때 혹은 이해받지 못할 때 생긴다. 정말 고독한 사람은 고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끔씩 비명을 지를 뿐이다. 마치 우리가 야수를 보았을 때처럼." (p 300)
바쁘신 하느님의 일손을 돕고자 어머니가 있는 것처럼, 인생이라는 끝없이 외로운 길을 걷는 인간이 측은해 친구가 있는 것같다.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가 "속으로는 생각해도 입밖에 내지 말며, 서로 사귐에는 친해도 분수를 넘지 말라. 그러나 일단 마음에든 친구는 쇠사슬로 묶어서라도 놓치지 말라." 고 말한 것도 그 이유에서 일테다. 진정한 나를 알아주는 지기知己 가 있는 한 아무리 멀고 외로운 인생길이라도 절대고독은 없겠다.
저자는 '나는 친구와의 사귐에 있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낫고, 직접 만나는 것보다 그리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고 친구 펑슝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말했다. 칭송받는 작가에 A형의 괴팍함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알 것만 같았다. 누군가 그립다는 말은 누군가를 가슴에 품었다는 말이고, 이는 항상 옆에 있어 공기처럼 느껴져 그 존재의 위대함을 자칫 잊어버릴 수 있기를 경계함이라는 것을. 되씹고, 되씹어도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소중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그도 나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면 공평하여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겠지만, 혼자서만 그리워한다고 탓하거나 부족하다 또한 말 못하겠다. 이미 그리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몸부림칠 바에야 그리움에 사무쳐 죽으련다'고 항상 생각해 왔지 않는가?
' 바다 건너간 A는 버터먹으면서 잘 살까?' ' 귀농한 까치아빠는 애가 몇 살이더라?'로 시작한 친구들 생각이 몇 해전 사고로 서둘러 세상등진 녀석까지 더듬게 했다. 이 책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덕분에 구구절절히 친구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