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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 - 최인호 선답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예순 넘긴 청년의 자연과 성현을 통해 느낀 삶, 그리고 인생!
"에이, 이 꼴 저꼴 보지 말고 머리깎고 산에나 들어갈까봐."
세상사에 실망하고 화류항花柳港의 도시에 지친 이들의 푸념에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중 하나다. 제 못난 탓은 안하고 애꿎은 산을 찾고 삭발운운하는가 하고 산을 즐기는 이들이나, 불가佛家에 적을 둔 이들은 나무날지 모르지만 제모습이 그런 탓에 어쩔 수 없다. 시름시름 앓는 이가 제모습 되찾으려 맑은 공기와 풍광을 쫓아 산을 오르듯 사람은 괴로우면 산을 찾는다. 자연으로 대변되는 산은 인간의 고향이요, 어머니 품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고도화될수록 산을 찾는 이들이 늘어가는 모습은 자못 아이러니컬 하지만, 차마 그곳마저 없어진다면 매마른 인간성은 어디서 찾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산을 찾는 건 아닌지. 주변에 산이 많아 한국사람은 정이 많은 지도 모른다는 어느 외국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사람이 마음속 응어리와 바라는 염원을 안고 산을 찾고 게서 휴식을 한다. 꼬일대로 꼬인 번민이 하루사이 풀어질까. 그 나날이 많은 이들을 위해 절이 생겼고, 그곳에 스님이 계신다. 현대인의 마지막 도피처가 산이고, 절에 있는 스님이 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어머니 품속같은 자연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워서 일게다. 그럴거다.
한국문단에 큰 획을 긋고 있는 작가 최인호의 새로운 글을 만났다. 자연 속에서 60 평생을 되돌려 크게 일상, 욕망, 해탈 이렇게 세가지에 대하여 말한다. [산중일기], 그의 선답에세이다.
최고가는 소설가답게 범인凡人도 읽기 쉽게 소설쓰듯 독백하듯 말하고 있어 읽기에 거북하지 않다. 수려한 글에 걸맞게 자연을 담은 화면들이 그득 그득 글들과 어우러졌다. 가족을 말하고, 청춘을 고백하고, 역사를 논하고, 미래를 밝히던 열정적인 그가 이젠 조용히 시선을 자신에게 옮겼다. 그 배경도 다름아닌 산속으로 잡았다.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는 그의 시선을 훔쳐보건데, 모습에 비해 유난히 허옇던 머리카락이 그저 유전의 탓은 아닌가보다. 글을 통해 예순 해를 넘긴 세월의 흔적을 가진 그를 만나게 된다.
'낯익은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할 때 낯익혔다고 해도 아는 것은 아니므로 실제로 시험을 보면 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부는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라며 큰 아들의 입을 빌어 공부방법과 기억의 기술을 이야기하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 가까워진다. 참사랑이라면 눈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야 하고, 참우정이라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야 한다' 고 말하며 진실한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한다.
그는 또 '서로 모르는 타인끼리 만나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과 더불어 온전한 인격 속에서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서로서로의 약속을 신성하게 받아들이고, 손과 발이 닳을 때까지 노동으로 밥을 빌어먹으면서 서로를 사랑하고고 아끼면서 살다가, 마치 하나의 낡은 의복이 불에 타 사라지듯이 감사하는 생활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성인聖人이고, 그렇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이야말로 하나의 엄격한 수도원인 셈' 이라며 가족과 가정의 의미을 되새겨준다. 가장 완벽한 인간이며 인격체는 어린이들인데, 완벽한 이들이 자라면서 탐욕으로 인해 추악한 어른으로, 괴물같은 마음으로 변한다며 인간의 불행은 완전한 아이에서 불완전한 어른으로 뒷걸음치는데 있다고 꼬집기도 한다.
자비에 대해서는 '남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받은 사람으로부터 되갚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복덕福德을 지은 것이다. 남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셈이므로 남에게 베푼 자비는 베푼 순간 잊어버려야 한다. 심지어 부모들도 자기 아이를 키운 은혜를 잊어야 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집착은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남에게 베푼 보시에 집착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남에게 입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라 가르쳐준다.
저자 최인호는 심청이가 아침저녁 수발을 들고 어가는데도, 고양미 300석을 따로 구하고 있는 심봉사처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얼굴을 진정 보지 못하고 눈 뜬 장님처럼 살아가는 건 아닐까하고 소중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생에 대해서는 차를 한 잔 마시는 일에 불과한 것 같이, 하늘의 아이가 지상의 골목에 잠시 놀러 내려와 동무 만나 놀고, 예쁜 각시 만나서 살림 차리고 애를 낳다가 어떤 놈은 질경이풀 좀더 먹고 부자라 거들먹거리고, 어떤 녀석은 힘좀 세다고 코피 터뜨리다가 먼저 집으로 들어가고, 나중들어가고 밤이면 모두 들어간다고 한다. 하느님이 부르시니까. "얘들아, 그만 놀고 들어오너라. 내일 또 만나서 놀던지" 하시니까...
부처를 찾는 당나라 때 사람 양보에게 어느 노인은 "지금 곧바로 집으로 가면 이불을 두르고 신발도 거꾸로 신은 채 뛰어나와서 맞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부처님이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을 들은 양보가 집으로 돌아가니 노인의 말처럼 옷도 입지 못하고 그대로 이불을 두른 채 신발도 신지 못한 맨발로 달려나오는 부처를 만나게 되는데, 그 부처가 바로 어머니더란다. 이에 크게 깨달은 양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집 안에 있다[佛在家中]."
늘 그렇듯이, 최인호를 놓고는 [어머니]를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그는 일찍이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책을 펴, 얼마전 영화로도 우리에게 소개했듯 그에게 어머니, 아니 엄마는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이름, 그는 천성 마마보이다. 어머니를 이야기할 때는 항상 아이같은 그가 그래서 더욱 좋다.
그는 그렇게 산속에서 우리의 삶에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고 이야기 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무엇이 소중한지 그 소중한 것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말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부처님의 말씀을, 그리고 성현들의 가르침과 자연의 가르침을 빌어 자신의 두 입으로, 글로 말한다.
편한 듯 쉬운 말 속에 담긴 가르침 하나 하나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한 컷 한 컷 작품같은 그림속 풍경에 감동은 곱이 된다. 글을 읽고, 그림을 보노라면 뇌까지 시원한 산바람이 일고, 세상사를 잊게끔 나뭇잎 소리가 쳐대고, 풀내음이 나고, 향내가 진동한다. 공교롭게 석가탄신일 신새벽에 산사에서 읽게 되어 그 감흥은 더 한 듯, 그분이 직접 내 귀에 말하시는 듯 예서 마냥 머물고 싶었다. 고즈넉한 산마루 어디메서 읽으면 정말 좋을 책이 계절에 맞게 나왔다.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한 너무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