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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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혼자보다는 괴로운 둘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녀를 처음 만났다. 네 번째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하는데 봤음직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하진 못했다. 무관심. 소설에 관심을 두지 않은 터라 굳이 미안할 마음을 둘 것도 없지만, 후회가 되는 것은 솔직한 마음이다. 일찍 만날 수 있었으리라.
 
그녀는 우울하다. 팀 버튼 영화의 푸르죽죽한 어두운 배경을 연상케 하고, 축축하거나 먼지마저 부서질 듯 건조한 공기 숨쉬는 것들은 뭔가 아는 듯한 조소어린 미소만 엿보인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차마 눈을 감고 싶은 기분. 그랬다. 그녀는 없음이다. 있음을 말하기 보다는 있기를 원하기 보다는 밀가루 가득 담은 듯 텁텁한 입으로 없다고 말한다. 보일듯 보이지 않는 냉담한 미소는 여전하다. 기분나쁘지만 변화를 기대하고 페이지를 들추게 된다. 그러길 바라지만, 어림없다. 그녀는 장롱이다. 그녀에게 아직은 갈 수 없는 무덤이고, 엄마품같이 쉴 집이고, 막연한 두려움이고, 유일한 자신의 공간이다. 항상 그녀 곁에 두기에, 아니 항상 그것을 의식하기에 오늘을 보낼 수 있는 듯 하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래서 그는 그 몸을 더욱더 적대시하고 부정하고 음해하려 애를 썼다. 결국 그에게 남은 감정은 깊은 죄의식이었다. 파괴하고 싶은. 그러나 보존되어야 할 순수한 육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길하고 위태로운 이 낯선 육체. 그는 미간을 좁히며 머리를 감싸쥔다.  패배한 이 늙은 영혼아.  ( 소년J의 말끔한 허벅지, p 16)
 
그는 빈 스튜디오에 혼자 남는다. 그는 버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허전하고 불안하다. 무엇이 그를 허전하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모든 소음이 한꺼번에 사라진 듯한 느낌. 폭풍 전야의 이 무서운 정적 (p 17)
 
사연을 차지로 두고 내가 택해 함께 사는 아내에 대한 애증은 굴복과 방치로 표현되고, 차마 먼저 버리지 못하고 처분을 바라는 방관자적인 사진사의 시선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는 단지 혼자이기가 싫은 것이다. 사진사와 아내와의 관계는 소설가 이상의 [날개]속 둘과 닮았다. 나와 아내는 원래 가장 가까운 사회적 관계에 있다. 그 아내와 합치될 수 없는 나의 위상은 곧바로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격한 몸싸움으로 스킨십을 대신하게 된 소년(사회)과의 새로운 만남은 아내의 간섭으로 불안하게 한다. "아저씨 꼭 거머리 같았어요. 아니 낙지요. 머리는 빡빡 밀어갖고 그냥 들이미는데, 떼어낼 수가 있어야죠." 실은 그에게 있어 아내는 거머리였고, 낙지가 아니었을까. 양분을 모두 빨려 푸석한 몸뚱이가 되어버린 채 버려지려 할 때 그는 소년을 만났고, 그는 안도와 편안한 휴식을 느끼게 되었다. 아내와 소년의 밀애를 의심함에 그가 흥분한 것은 아내의 불륜에 대한 분노보다는 소년에게 들러붙으려하는 거머리에 대한 증오가 아니었을까? 아니다. 이젠 자신이 소년에게 들러붙고 싶은 혼자이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푸석푸석한 거머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또 외로운 혼자보다는 괴로운 둘을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머지의 단편속에서도 그녀는 '욕망에 얼룩진 관계속의 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들여다보기를 남이 보듯 깊이 그리고 꼼꼼히 관찰했다. 그녀에게 사랑의 이름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세 시간 전만해도 난 생각이 많았다. 어제 했던 일들의 자잘못을 고민하고, 곧 있을 시간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에 닥칠 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으로 정신이 복잡했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지금은. 멍~하고, 우울하고 침울하다. 한 권의 소설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어서...그 속에 내모습이 보였고, 내가 그것을 봐서 였다. 화가 난다. 스스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더 잘 아는 듯한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 화난다. 내팽겨치고 싶지만, 손과 눈은 자꾸만 그녀를 쫓는다. '끊을 수 없는 기분나쁜 중독의 느낌'. 오늘 그런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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