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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 맛의 제국
노부 마츠히사 지음, 오정미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는 일식요리의 현주소 !
얼마전 읽은 책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이 발단이었다. 21세기의 마케팅 트렌드가 '감성感性'이라면 고객의 눈과 입과 그리고 몸을 사로잡는 원초적인 감성의 대표상품은 '요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야말로 '감성 마케팅'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리사와 동시에 음식점의 주인이 직접 요리까지 하는 경우에는 실내 디자인은 물론 재료구입에서 요리의 품질 유지, 새로운 요리의 개발, 인력관리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게 되므로 자신만의 작은 감성제국을 실현할 수 있다는 묘한 매력에 빠졌다. 그래서 그들을 추적해 보기로 했다. 그 중 하나가 [노부, 맛의 제국]이다.
이 책은 일본 도쿄의 한 초밥집에서 요리사를 시작한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일본을 떠나 페루, 아르헨티나, 알래스카 등에서 요리를 하다가 미국 비벌리힐스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해 현재 전 세계 12곳에 세계의 유명인사들이 모이는 최고의 명소 레스토랑 '노부'를 설립하게 된 요리사 노부유키 마츠히사의 이야기와 그의 요리세계가 담긴 책이다.
전에 읽은 책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를 쓴 저자 안효주가 자신의 일식레스토랑 '스시효孝'에서 펼치는 그의 요리가 '정통 일식'을 추구한다면, 이 책의 저자 노부유키 마츠히사(이하 노부)는 철저하게 세계인의 입맛에 맞춰 퓨전화 시킨 일식을 선보인다. 두 요리사 모두 우연히 요리를 시작하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안효주가 정통코스를 밟아 요리를 배웠다면, 노부는 정식으로 얼마 배우지는 못했지만 일식을 먹고 자라온 일본인이라는 점을 살려 외국에서 일본의 맛을 알리는데 주력했다는데 차이가 있다. 또한 안효주의 책은 자신의 자서전의 형식을 갖추면서 스시와 일식에 대한 참맛을 알리는데 주력했다면, 이 책은 자신의 이력은 짧게 소개가 된 반면, 노부에서 제공하는 퓨전일식의 레시피를 소개하는 부분을 거의 80%를 차지할 만큼 많이 할애했다는데 주목되었다.
특히 그가 뉴욕에 마츠히사라는 일식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 헐리우드 스타 [로버트 드 니로]가 그의 요리에 반해 자신과 합자해서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자고 제의했을 때 거절했지만, 수 년에 걸친 러브콜에 못이겨 결국 '노부Nobu'를 개업하게 된 스토리에서 그의 솜씨를 짐작하게 한다.
패류, 새우-바다가재, 오징어와 문어, 생선, 샐러드-채소-메밀, 초밥, 그리고 노부만의 소스와 기본재료 만들기와 후식, 청주와 드링크까지 [레스토랑 노부]에서 제공되고 있는 모든 레시피를 음식재료별로 나누어 모두 실었는데, 재료소개와 함께 만드는 법을 일체 공개 했는데, 고급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이렇게 자세하게 소개된 경우는 거의 없어 이만오천 원이나 하는 책의 가격이 아깝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지인들이 이렇게 모두 공개하면 비법을 모두 공개하는 것 아니냐고 만류했음에도 그는 자신만의 '손맛'을 자신하기 때문에 공개하였다고 말한다. 싱싱한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의 사진들은 따뜻한 온기와 냄새가 느껴질 만큼 먹음직스럽게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와사비 페퍼 소스에 버무린 전복, 타불리 살사의 가리비 구이, 스파이시 레몬 마늘 소스의 가시발 새우, 마우이 양파 살사를 곁들인 아오리 오징어, 캐비아를 얹은 아귀 간 파테, 허브를 올린 칠레산 농어 구이와 유바 등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만 들어도 퓨전을 짐작케 하는 생소한 60여가지의 메뉴들이 사진과 함께 들어간 재료와 만드는 법이 어느 요리책보다 훌륭하게 소개되고 있다.
특히 초밥에 대해 소개하는 장에서는 초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초밥용 밥을 짓는 방법도 자세히 소개되었다. 레시피는 일반 초밥이 아닌 소프트 셸 크랩 롤, 하우스 롤, 연어 롤, 갯장어 드래곤 롤 등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롤 종류의 초밥을 소개하고 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생선을 어떻게, 그것도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냐고 손사레를 쳤던 뉴요커들이 현재는 최고의 요리트렌드로 일식요리를 꼽고 있다는데 의아했던 나는 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었다. 눈과 귀, 그리고 입 나아가 오감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노부는 이 책을 통해 그만의 요리의 비밀과 일본 요리의 정수를 밝히고 있다. 나아가 한 나라의 요리가 아닌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일식요리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요리의 제조법까지 공개할 수 있는 그의 자신감과 지금도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그의 창조성, 일본이 아닌 외국에서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인정받으면서 자국의 음식문화를 전파하는 그의 모습에서 '감성 시대,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맛과 향은 모르지만 눈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무엇보다 '창조성이란 바로 이런거야!'라고 나를 감전시킨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