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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오늘의 도시여성을 알고 싶은 남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
군제대후 대학복학을 할 때 즈음 우리나라에 전문적인 남성잡지인 E가 창간되었고, 그 후로 쏟아져서는 지금은 예닐 곱 개에 이른다. 지금은 트렌드라고 말하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는 [유행]이란 단어를 썼고, 창간호에는 최소형의 삐삐가 한창 유행이었고, 미국 M사의 Tag시리즈의 휴대폰이 백만원 대의 가격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지금은 E, G, A, M으로 시작하는 남성잡지를 매달 구독하고 있는데, 3 부의 신문에는 없는 다뤄지지 않는 내용의 기사들, 이를테면 패션, 미용, 트렌드, 헬스, 심지어는 섹스까지 신문보다는 심도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잡지사 기자들 즉, 에디터들이 펼치는 현란한 언어마술을 경험하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늘 궁금했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유독 독설이 가득한 기사로 현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 어느 에디터의 팬이기도 한데 그들의 세계를 알려준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도시여성들의 트렌드를 한눈에 꿰고 있는 여성 잡지사 피쳐에디터의 일과 생활 그리고 사랑을 다룬 소설로 전직 여성 패션지 에디터이기도 했던 작가가 그녀의 풍부한 경험과 안목으로 도시여성의 판타지와 현실에 대해 여성만이 쓸 수 있는 섬세하고 맛깔난 글로 제 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에 실린 저자 백영옥씨의 모습은 이 책의 주인공인 이서정의 묘사와 흡사해서 실물인 그녀를 주인공으로 놓고 읽어서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 책을 내기 전에 도시여성들의 문화, 패션, 트렌드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했던 산문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을 내기도 했던 실력파이기도 하다.
갤러리아 백화점앞, 압구정동, 고야드 백,마크 제이콥스 핸드백, 마놀로 블라닉 구두, 패션잡지, 커피, 담배, 수십 통의 전화, 그리고 다이어트 등... 패션지의 에디터로 활약하고 있는 주인공 이서정이 매일 만나는 업무속에 함께 하는 아이템들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 색스처럼 남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데 '웰빙 기사 쓰면서 컵라면 먹는 이중생활'이란 말로 그녀의 아이러닉한 일상을 대신한다.
주인공 이서정은 50킬로 중반대의 그녀는 몸을 옷에 맞춰야만 입는 남성복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의 '스키니진 체험기'를 써야 하고, 까다롭기 소문난 영화배우 정시연과의 1년 동안 공들인 인터뷰를 따내야 하며, 촌철살인의 뉴욕식 레스토랑 평가로 유명한 보이지 않는 거물 레스토랑 평론가 '닥터 레스토랑'을 찾아 인터뷰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좋아하는 패션에디터 김민준을 훔쳐보랴, 우연히 만난 7년 전의 '아픈 기억' 박우진과의 악연을 처리하랴, 그의 단짝 한재석과 티격태격 싸움하랴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이다.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최은영은 혼란한 그녀를 돕는 유일한 동지다. 그 밖에도 천하의 악녀 박기자(이름이 기자란다, 타고난 이름이다) 선배, 여성편집장, 앤드류 동(똥)등 그녀 주위의 조역들도 주연을 쩜쪄먹을 만큼 만만치않은 캐릭터들이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일상의 편안함은 뒤로 한 채 뉴스와 소문이 혼재된 상황속에서 일과 사랑 그리고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그녀를 따라가며 읽자니 내조차도 숨이 가쁘다. 그녀가 담배를 피우면 함게 담배를 피웠고, 커피를 마시면 함께 커피를 마셨다. 심지어 라면까지. 이유인 즉 말많은 사내녀석에게 우리는 딱 세가지로 묻는다. "너, 돈 필요하냐?" ,"집에 무슨 일 생겼냐?", "너, 연애하냐?"가 그것이다. 그리고는 그 이야기를 들으려 가까운 고기집을 찾는다. 그런 사내들은 상상할 수 없는 화제꺼리로, 그것도 맨입으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며 책을 매꿔 나간다. 그녀들만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지적 능력과 체력을 가진 여성들이고 모든 여성이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여성에 대한 정의는 고쳐져야 했다. 사내녀석이 여성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을 읽는 것이 '일종의 관음증'으로 치부된다면, 앞으로는 책표지를 싸서 감추어가면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륨을 높여달라는 이서정의 말에 길을 잘못 들어서 화났냐고 묻는 택시기사의 질문에 그녀는 '이 세상엔 지구 둘레만큼의 오해와 한줌도 안되는이해만 존재하는 걸까?'라고 혼자 묻고, 차를 빼기 위해 30미터 움직이다가 음주단속에 걸린 그녀의 운전면허정지에 대해 '불행이란 아귀를 딱딱 맞추듯 지독한 우연들이 몰려와 자석같이 들러붙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그 우연의 조각들을 다시 꺼내어 맞추면 이런 문장이 완성된다. 재수 없게 왜 나냐고.'라고 하소연한다.
제니칼의 부작용으로 망쳐버린 김민준과의 키스, 예매한 영화관에서의 에피소드, 이탈리안 레스토랑 '어바웃'에서의 요리실습등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능가하기도 하지만, 성수대교를 둘러싼 그녀의 트라우마 그리고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의 치밀함을 더해준다. 데이트 준비를 위해 전날부터 준비하고 10센티나 되는 힐을 신고 곡예하듯 몇 시간을 버티는 그녀들을 위해 식사값을 내는 것은 당연한 듯 아니냐는 이서정의 항변에 고개를 숙였고, 세상에 흔치 않은 잘 생기고 매력있는 남자는 왜 하나같이 유부남 아니면 게이냐는 그녀의 외침에 잡지두께의 뱃살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이서정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그녀를 차지하게 되는 그 녀석에게 눈을 흘겼다.
저자가 말하는 제목 스타일Style 은 Sexy Tiny Young Lady is Everything 을 줄인 말이 아닐까?
영화로 만들어지면 또 한 번 반갑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문학상이 이번에도 훌륭한 낙점을 했다. 지금 이서정은 '안나 윈투어'가 되어 있을까? 아님 박기자 선배처럼 되어 또 다른 이서정을 괴롭히고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정말 재미있게 본 책이다. 저자의 입담을 쫓아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를 읽어야겠다. 물론 표지는 보이지 않게 포장을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