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안효주.이무용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초밥장인의 인생과 삶을 녹여 정성껏 꾸민 성찬!
 
"사람은 태어날 때 삼신할미헌티 제 명에 먹고 돌아갈 밥그릇수를 얻고 태어난겨.
그러니께... 제때마다 모두 잘 챙겨먹어야 하는겨.
안그럼 못얻어먹은 만큼 명을 줄여서 돌아가단말여. 알았냐?"
 
어린 시절, 밥때마다 도망다니는 나를 앉혀두고 할머니께서 하신 말이다. 어른이 되어 건강을 생각하고 언젠가부터 식사를 거르거나, 부실하게 먹는 동료들에게 이 말을 하게 되면서 그 때는 몰랐던 제때맞추어 제대로운 식사를 하는 것이 '섭생攝生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먹기 위해 산다'고 하는 이가 있으면 '살기 위해 먹는다'는 이가 있다. 무엇이 먼저일지 알 수는 없지만, 식食은 생生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건 알 것 같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은 '삶은 죽여서 먹음으로써 남을 죽이고, 자신을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써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했고, '살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바로 밥이다. 밥벌이가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죽음을 먹고 삶이 이어지는 것이니 대충 살면 안되고, 힘껏 살아야 한다'고 변화경영가 구본형씨는 그의 책 '세월이 젊음에게'를 통해 말했다.
고단한 일상중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은 행복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음식을 먹으면, 오감이 행복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맛있게 먹었으니 모든 영양이 내 몸으로 갈테고 이윽고 건강해 질 것이다. 이른바 웰빙Well-Being이다. 건강과 행복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행복한 맛'을 전해주는 요리사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졌는데, 소개하는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이다.
 

 
이름보다는 '한국의 미스터 초밥왕'으로 더 잘 알려진 초밥장인 안효주씨가 자신의 일인 요리와 초밥만들기, 그리고 요리사로서의 인생를 내용으로 꾸며졌는데, 첫장부터 웃음가득한 미소로 반기는 그의 모습에서 신선한 바다내음과 시큼한 초밥내음을 느끼는 듯 하다.
 

 
첫 번째 일, 안효주 요리로 교감하다 에서는 자신의 초밥집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손님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소개된다. 일본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를 만나고 그의 책에 직접 실린 이야기로부터 그의 스승님과의 인연,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훈훈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평소 과묵하기도 한 그는 손님에게 마음을 담은 요리로서 교감하는데, 초밥은 인생과 닮아서 초밥에 들어가는 초양념이 되지 않은 초밥은 전화 한 통 없는 연인에 비유하며 초양념은 연인사이를 잇는 전화를 닮았다고 말한다. 고추냉이[와사비]는 밥과 생선을 이어주므로 소개팅 주선자를 닮았다고 하며, 간장은 없으면 허전한 친구처럼 초양념이 된 초밥이라 할지라도 간장이 없으면 뭔지 모르게 싱거워 그 맛이 밍밍해진다고 한다. 친구, 연인, 가족 등 개성강한 사람들이 어울려 제 3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듯, 밥알, 고추냉이, 초양념,생선,그리고 간장이 조화를 이룰 때 최고로 맛있는 초밥이 된다고 한다. 자신의 일에서 인생의 참맛을 찾아내는 부분에서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는 요리이야기를 읽는 이유를 제대로 찾아낸 것 같아 반가웠다.
 



두 번째 일, 안효주 맛의 드라마를 연출하다 에서는 손님이 요리사에게 메뉴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뜻의 일본말, "오마카세!お任(まか)せ!" 를 메뉴로 하여 독자를 손님으로 앉히고, 그가 만드는 초밥의 세계로 안내한다.     
 입 속에 바람 한 줌 광어를 필두로 고소함의 긴 여운을 지닌 방어, 담백함과 고소함의 사이에 앉은 도미, 고소함의 절정 참치뱃살, 단맛의 이중주 성게알과 단새우, 오도독 고소한 맛 전복, 진한 담백미 학꽁치, 촉감으로 먹는 조개관자놀이, 녹진녹진한 고소한 장어구이, 심해의 맛 고등어 등 순한 맛 광어를 시작으로 진한 맛의 고등어까지 실제 초밥을 먹는 순서를 예를 들면서 저마다의 훌륭한 맛과 풍미를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 칸자키가 와인의 맛을 설명하듯 직접 그 맛을 글로 풀어냈다. 먹음직스러운 사진과 설명으로 시장기는 가득하고, 입에서는 연신 침이 고였다. 마지막으로 단 하나뿐인 초밥을 소개하는데 천하일품 요리도 세끼만 계속 먹으면 물렸다고 싫어하고, 세 끼만 굶겨놓으면 밥에 소금만 뿌려도 맛있다고 달려드는 간사하고 순진한 손님의 혀에 맞춰 '진짜 확오는 느낌의 맛'을 찾아주기가 힘들고, 또 즐거운 작업임을 고백한다.
 

 
초밥의 기본과 초밥의 매너를 말하는 세 번째, 네 번째 일에서는 손님의 한 끼 식사를 책임지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기도할 때의 간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요리를 임하는 자세와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최고의 초밥을 가장 맛있고, 훌륭하게 먹을 수 있는 고객의 매너에 대해 소개한다.
여러 번 쌀을 씻고, 그 때마다 씻는 방법을 달리하며, 계절마다 쌀을 불리는 시간을 달리하는 것이 예전에는 없던 공정이라 번거롭지만 그땐 몰라서 못했던 것이라며 '일에 있어서건 인격에 있어서건 세월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헛산 것이고, 하루하루 새로워지고 발전해나가야 그게 사는 맛이고 사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요리사가 낼 수 없는 맛은 어머니의 손맛이라며 어머니의 손맛을 볼 때 누구나 느끼는 '마음이 쑥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온 느낌'이고 그것은 나의 혀가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함께 음미되기 때문일 것이라 말한다. 그는 요리를 통해 인생을 알게 되었고, 다시 그 인생의 참맛을 요리로 만들어 손님에게 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위생을 생각해 열흘에 한 번씩 짧은 머리를 만들고, 영업시작전 칼을 쓰기 전 한번 갈고 하루를 마감하고 또 칼을 갈며,  최고의 초밥을 만들기 위해 초밥의 재료인 쌀 그리고 소금을 찾아다니는 그의 노력에서 초밥장인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장인이면서도 평생을 노력해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밥알뭉치 속 공극孔隙사이로 하늘이 담기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 계속 노력하려는 그의 의지에서 정진홍씨가 그의 책에서 말했던 '완벽에의 충동'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행복한 요리사를 꿈꾸는 다섯 번째 일 에서는 세계 챔피온이 꿈이었던 그가 밥벌이 수단으로 일했던 일식집이 인연이 되어 요리사가 되었고, 인고와 노력의 나날을 보내 호텔의 일식당의 책임주방장이 되고, 마침내 자신의 식당을 차리게 되는 과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최고가 되고 자신의 점포를 가진 후 자신에게 밀려드는 욕심, 어리석음, 유혹을 떨쳐버리는 힘은 열정이라고 말하며 열정이 없으면 적당한 기술로 적당히 먹고 살려고 마음먹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멈추게 된다고 말한다. 이 멈춤은 사실 후퇴와 다름 없는데 내가 멈춘 동안 시간은 나를 앞질러 가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요리로 다투면서 들어와서 요리를 먹고 웃으면서 나가는 손님들의 표정을 보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이것이 요리사로서 자신의 행복이라 힘이고, 언제까지고 요리와 손님 사이에서 행복한 요리사로 남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서 최고라 인정받는 장인이 갖는 한가지 목표가 '손님을 기쁘게 하겠다'는 가장 순수한 진리임을 배울 수 있었다. 
 
"골잡이가 골로 자신을 증명하듯, 나는 초밥으로 나를 증명한다. 초밥은 내 인생의 증거다."
라고 그는 자신의 일과 인생을 동일시 했다.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알고, 그 속에서 인생의 묘미를 알며, 자신을 찾는 손님을 즐겁게 해 줌으로 자신도 행복해 하는 삶. 직업은 곧 놀이가 되고, 놀이를 즐겨서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이 '프로 비즈니스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밥장인의 인생과 삶을 녹여 정성껏 꾸민 성찬. 오랫만에 정말 맛있게 먹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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