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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죽어라 - 눈 푸른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
현각.무량 외 지음, 청아.류시화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무엇인가'하는 인간의 화두에 대해
답하는 푸른 눈의 지성인들의 깨달음, 그리고 공부.
삶을 더해갈수록 느껴지는 '부족함'은 아마도 '남은 시간의 부족함을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살아온 날의 무상함을 후회하기 보다는 앞으로 맞이할 살아갈 날을 충실히 살고픈 '갈증'때문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부족함'은 '시간의 유한함'과 더해져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강박'으로 다가왔고, 그 중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우선의 방법을 찾은 것은 단 하나. '독서'였다.
'독서'를 여행이라고 한다면, 독서의 참맛은 단순히 문자를 따라 읽어내려가는 읽기의 여정이 아니라 나의 삶을 대비하는 비교의 여정이요, 행간의 숨은 뜻을 알아내는 탐구의 여정일 것이다. 인간의 생각이 활자로 옮겨지고, 그것이 나무들의 시신에 새겨져 모아둔 지식의 총합. 바로 책을 읽고,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는 시간이야말로 유한한 시간을 무한하게 만들고,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의 길에 가로등을 하나씩 켜가는 것이다. 독서는 바로 온전히 생각하고, 온전히 살고픈 사람들의 공부이기도 하다.
다소 충격적이 제목으로 내게 다가온 이 책, <공부하다 죽어라>는 대전 자광사에서 준비한 법회에서 국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영어로 설법을 했는데, 그 설법들을 우리말로 모아놓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접하면서 던졌던 의문은 합리주의를 추구하고, 과학적시각을 우선하는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 동양의 종교 불교에 귀의하여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것인지, 그리고 설법을 한 수행자들은 이른 바 세계 유수의 대학교를 마친 지성인이었기에 그들에게 펼쳐지 밝은 미래를 내던지고, 출가한 까닭은 무엇인지였다. 그리고 '서당개 삼년의 풍월'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나의 불교관이 갖은 의문은 과연 '공부하다 죽을 만큼' 배울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모두 열 한 분의 수행자들이 영어로 설법한 것을 번역하여 그들이 설법은 물론 그들이 설법을 하면서 행동한 것들도 지문으로 적어놓았고, 어려운 불교용어 또한 자세히 해설해 놓아 마치 동시통역자를 옆에 두고 설법을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자연스럽게 써내려갔는데, 2003년 여름의 설법이 지금 출간된 것 이유를 알 듯 했다.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가지>의 책으로 유명한 현각 스님을 필두로 하여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영국, 스위스 그리고 스리랑카에서 오신 수행자들의 설법을 들으면서 불교가 인간에게 던지는 '화두' 즉,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었다. 그리고 올바른 삶이란 어떻게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매 순간 완전하고 온전하게 사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양인의 시선답게 사물을 그리고 진리를 비교분석하며 합리적인 시각으로 설법해 나가는데, 이해하기가 쉽다고 느껴지는 것은 서구학문에 익숙한 탓일까? 아니면 외국인 수행자의 내공이 이정도라니 하는 충격에 따른 질투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놀라움과 감탄이 계속되는 경험을 하였다.
설법에 앞서 수행자들의 이력을 적어두었는데 승승장구하던 그들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현실의 자신에 대해 불만족하던 차에 그들 또한 설법을 듣고 출가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이 그랬던 것은 진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녔음에도 찾을 수 없었기에 고독하고 두려웠던 그들의 인생에 한 분 스님의 설법은 그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출가'라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길을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산스크리트 어로 인간人間은 '둘라밤'이라고 한다. 그 뜻은 '매우 얻기 힘든 드문 기회' 다시 말해, 우주의 생물체로서 '인간'은 그 자체로 좀처럼 되기 힘든 축복된 생물체라는 말이다.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은 '매우 얻기 힘든 드문 기회'인 자신들을 오로지 '진리 추구의 길'에 몰두하기로 정한 사람들인 것이다. 둘라밤으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목숨부지의 생이 아니라, 내가 원하고 추구했던 어떤 것을 위해 정진하고 공부하다 죽어야 최소한의 제 이름값을 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작은 깨달음이 나를 깨웠다.
'나는 무엇인가?'를 찾는 수행이란 사실 돌아옴의 문제, 즉 이미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지, 얻고자 한다면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현각스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책을 덮고난 느낌은 템플스테이temple stay하듯 잠시 여름끝의 산사에서 수양을 하고 온 기분이었다. 독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