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이미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한 편의 영화처럼 잘 만들어진 최고의 영화책, 영어책!!
 
 나는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영화광이다. 만약 배가 출출한 오후 네 시에 누군가 내게 식사권과 영화입장권을 제시하며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치않고 영화입장권을 고르고 희희낙낙할 것이다. 장르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거니와, 잘 된 영화라면 거듭보기도 마다하지 않는 나지만 어려서부터 절대로 보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말 더빙 영화'가 그것이다. 파란 눈의 배우가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부터 영화를 보는 재미를 망치게 하거니와 립싱크의 어색함을 지켜보기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어서 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영화를 본다고 해도 성우의 목소리를 덮게 되면, 그 감동도 함께 덮여버려 언제든 잠들 수 있게 하는 영화아닌 영화가 되어버린다. 이렇듯 자막영화보기를 좋아하는 내가 이 책의 저자를 아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이 책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의 저자 이미도씨는 영화번역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영화가 끝나자마자 처음 만나는 한글 자막은 바로 '번역 이미도' 를 수없이 볼 수 있어서 눈에 익은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나에게 있어 그는 '영어에 굉장한 내공을 지닌 영화를 좋아하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알게된 사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영어를 잘 하고, 훨씬 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남성이었다.
 
 '영화 읽어주는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미도씨의 책은 영화번역가로서의 즐거움과 괴로움, 영화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영화를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를 담은 그의 산문집이다. 게다가 '살아있는 활어活語로서의 영어'들을 소개하는 영어학습서이기도 하다.
 
 1부 영화예찬 - 나는 영화로 꿈을 꾼다 에서는 영화번역가인 그가 말하는 영화와 영화번역이야기가 펼쳐진다. 좋은 영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번역을 순화하거나, 없는 말도 만들어내어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그의 수고로움이 묻어나는 부분이었다.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또 하나의 창작활동으로서의 번역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내가 자막영화를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그가 말하는 성공의 비밀인 SUCCESS의 키워드는 영화를 사랑하는 그의 면면을 알 수 있었고, 두 손의 엄지를 높이 쳐들만큼 훌륭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세 작품은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충동마저 일게 했다.
 
 영어를 우리말로 만들어내는 번역가의 실력이 여실히 나타나는 부분은 바로 2부 영어예찬 - 활어活語 영어로 만드는 맛있는 영어 요리이다. 영화지식과 영어지식이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현란한 언어쇼가 펼쳐지는부분인데, 그가 영화번역을 하는 것이 단순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로 여기고 즐기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1,200개의 자막을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관객들이 기꺼이 그런 눈 아픈 수고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의 실력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가 또 다른 창작의 동굴로 언급하는 한 커피점에 대해 머리글로 설명하는 부분은 그의 위트와 지식을 가늠케 하는 부분이었다. 머리로 외워서 가슴에 새겨야 할 주옥같은 영화의 명대사들을 영어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3부 인생예찬 - 영화는 인생의 여행자가 만나는 오아시스에서는 가족, 사랑, 선택과 시간, 기적, 자살, 역경, 시련, 위로, 격려, 두려움, 양식, 서비스 정신등 우리 인생의 조각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영화를 통해 말하는 부분이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저자의 영화속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의 근거들이 바로 그곳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위로에 관하여]에서 말했던 'It's O.K. It's not your fault.'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은 어쩌면 외롭고 수고스러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마음껏 울고 웃으며 영화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드러나지 않는 곳, 스크린 뒤에서 이렇듯 수고하는 이들의 고군분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한 멋진 책이었다. 영화를 그리고 영어를 사랑하는 사람, 이미도. 이젠 헐리우드 영화의 자막을 보면 그가 생각날테고, 영화뿐 아니라 그가 만들어 낸 멋진 자막도 함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책들이 맛있게 먹은 책들이었다면, 이 책은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같았다.
 그리고 최고의 영화책이고 최고의 영어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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