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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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인생은 덧없이 끝을 향해 물러나고, 지상의 기쁨은 희미해지네,

영광도 지나가고,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모두 변하고 썩나니,

, 변하지 않는 그대여, 나와 함께 머무소서.” - P 432 에서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답다. 내가 지닌 언어는 이상의 표현이 가능하지 않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알지 못하는 어떤 그리움들이 깊어진다. 바다 같이 깊은 감동이 온몸을 감싸듯 휘젓는다.

 

모든 이의 필요에 대해 열린 마음을 함께 나누는 한 자연주의 공동체 아르카디아, 영혼의 양식을 구하려 카라반을 이끌고 이동하던 그네들에게 최초의 아르카디아인 꼬마 비트가 태어난다. 소설은 바로 이 텍스트의 책임자인 가장 작은 히피 조각’, 비트가 삶의 신성한 존엄성을 의식하고 그것을 아끼고 가다듬으며, 충만한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끝없이 내몰리는 상실에 대한 도저한 발걸음, 삶이라는 그 견딤의 고독한 시간의 이야기이다.

    

자기 이야기에 대한 책임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삶, 이것을 바라보는 내내 시리도록 순수한 것들이 뭉쳤던 내 숨을 크게 내 뱉게 한다. 춥고 배고프며 고된 노동의 일상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모두가 모두에게 의지하는 친밀함, 무한히 개방된 마음들의 사랑이 흐르는 곳, 그러나 이 낙원은 서서히 붕괴해 간다. 끊임없이 유입되는 사람들, 대마초와 섹스와 방종, 자유의 방종은 열린 마음들을 굳게 걸어 잠그게 만들며, 깊어지는 갈등은 분열과 해체를 재촉한다.

 

공동체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쫓기듯 아르카디아를 떠나 도시로 향한다. 자신을 키워나가기 시작한 조용하고 좋은 꿈, 사진을 찍으며 사는 삶을 포기해서라도 얻고 싶었던 헬레와 아르카디아를 떠난다. 그의 사랑, 삶의 태도를 형성시킨 터전을 상실한 어린 비트에게 도시의 삶은 고통에의 도전, 그가 자신의 삶에 쓰려는 이야기, 자신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아르카디아인으로서의 심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프고 쓸쓸하게 흘러간다.

 

어느덧 가난하지만 사진예술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있는 비트, 그의 확실한 존재였던 부모, 버려진 아르카디아에 오두막을 짓고 돌아간 아버지 에이브에 대한 분노로 인한 어머니 해나의 별거, 그의 갤러리에 나란히 걸린 바깥세상에서 잘 생긴 성인이 된 아르카디아인들의 단단한 껍데기에 싸인 얼굴은 아프도록 부드럽고 숨김없는 아르카디아 시절의 얼굴과 대조되어 도시가 강요하는 영혼의 두꺼운 장막, 그 우울한 견딤의 아린 통증을 던져준다.

 

이 묵묵한 견딤의 시간에 자신의 삶을 버려서라도 얻고 싶었던 헬레와의 재회, 그녀와의 짧은 시간의 행복 속에 얻은 딸 그레테, 그리곤 다시금 그의 곁을 떠나버린 사랑의 상실은 삶을 온전히 파괴하는 아픔이 된다. “왜 울어? .... 아빠는 항상 울어. 왜 항상 우는 거야?” 라는 비트를 향한 그레테의 말에 이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르카디아 시절, 지붕 수리를 하다 떨어져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아버지, 근육위축경화증으로 점차 거동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 에이브와 해나는 비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동반 자살을 시도하고, 죽음은 그의 기반암이자 세계의 중력이었던 에이브만을 먼저 거두어 간다. 딸 그레테와 아르카디아의 옛 친구들, 이웃인 아미시 사람들과 매일 한걸음씩 죽음의 늪으로 향하는 어머니 해나에게 아름다운 삶으로서의 기억을 위한, 진정한 삶의 복원을 위한 자연을 닮은 일상이 찬연하게 이어진다.

 

내 삶의 이야기, 내 삶이라는 소설의 첫 장에서 그 완결의 페이지인 마지막 장은 어떻게 덮여질까? 온통 사람들에게 열린 자신의 사랑이 마침내 소진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빛이 그림자에 이르고, 다음 세대에 희망을 주는 그런 삶의 이야기를 써 낼 수 있을까를 생각게 된다.

흙의 달콤함이 나를 향해 피어오를 때, 비트의 황금빛 먼지가 앉아 빛나는 회고처럼 자기 이야기에 대한 숭엄한 책임의 인간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나도 쓸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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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구마 2018-03-19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표지는 뭐죠? 제가 받은 책의 표지와 조금 다른 데 느낌있네요.

2018-03-19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