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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노트 ㅣ 쏜살 문고
헤르만 헤세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평점 :
이 산문집을 두 층(層)의 관점으로 읽게 되면 보다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 같다. 하나는 글의 표층(表層)인 삶의 주체자로서 자기-되기의 내면적 사유이고, 다른 하나는 그 표층의 아래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꿈틀대는 당대 독일사회와 독일인들을 잠식하고 있던 과대망상과 퇴행적 개인주의의 실체라는 정치문화적 실상이다. 전쟁에 패망하면 항시 전쟁기획과 추동에 참여했던 부역자들, 선동자들은 자신들의 죄과를 은폐하는 행태를 보이곤 한다.
설혹 적극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긍정하거나 시민적 몽매성으로 인해 부화뇌동하였다고 변명, 발뺌하는 것 등이다. 정말 인간의 비굴한 얼굴들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다. 헤세는 적어도 1910년대 이후부터 스위스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은 그가 조국 독일과 독일인들을 외부의 시각에서 관찰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러한 자리의 관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바로 이점이 이 산문집을 두 층의 관점으로 읽을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록된 열네 편의 산문 중, 세 편의 산문 〈은신처〉나 〈『데미안』에 대한 메모〉, 〈아델레에게 쓴 편지〉를 제외하면, 전쟁 중이거나 전쟁 직후(1차 세계대전 및 2차 세계대전)에 독일인 및 독일의 젊은이들을 향해 써진 글들이다. 어떤 의미에선 위의 세 편의 글들도 독일인을 향한 다른 글들의 진실성을 담보하고자 헤세 자신의 정당화를 위한 언어처럼 보인다. 산문집 모든 글을 관류(貫流)하는 하나의 언어, 즉 표층의 주제는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생명력, 자기 스스로에 도달한 사람이 되고자하는, 자기 안에 깃든 신성(神性)의 깨우침으로서, 자신에 대한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의 운명에 귀 기울이는 존재를 향한 노력’에 대한 성찰이자 권고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쟁은 인간 떼거리의 비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듯하다. 헤세의 글을 읽으면서 1918년부터 1933년까지의 독일 정치문화사인 ‘피터 게이’의 명저 『Weimar Culture(바이마르 문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피터 게이는 1차 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에서 이뤄진 민주공화정을 시작케 한 바이마르 혁명 정부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석하는 가운데, 그것은 “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반동, 하나의 소극(笑劇), 허구로 보이도록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인 탐욕의 광기”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폭넓게 대중의 마음에 침윤된 맹목적 비이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말한다. 헤르만 헤세는 산문 〈은신처〉에서 자신의 거처를 스위스로 옮기게 된 이주의 정당성을 사적으로 겪었던 내면의 혼돈을 치유하는 여정에서 자리매김한 당위로서 말하고 있다. 또한 〈『데미안』에 대한 메모〉라는 글도 전쟁터(1차 대전)에서 죽은 동료들을 말하면서, “살육과 파괴의 목표가 그 대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음을 통찰”하게 되었노라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분노하고 도륙하고 말살하고 죽고자하는 영혼의 발산”이었다고 쓰고 있다.
글 쓰는 이로써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마치 전쟁의 참화를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들 중 어떤 이는, 바로 내 곁에서 죽었다”며, 자신이 말 할 권리를 지녔음을 시사(示唆)하지만, 피터 게이 교수의 지적처럼 헤세는 패전 직후인 1918년에 쓴 〈세계사〉라는 글에서 “황제에 대한 신념을 갑자기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교체하는 것은 그저 깃발만을 바꿔드는 데에 불과하다.”고, 새로운 민주공화정(바이마르 정부)의 시작에 회의적 시선을 보낸다. 이에 더해 “갑자기 세계사가 다시 등장했다. 논설위원들, 교수들, 교사들...이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라며, 당대 독일의 엘리트라 자처하던 종교 및 정치, 경제 분야를 지배하던 구 권력 전반의 의식과 그가 결코 다르지 않았음을 읽게 된다.
각 글들의 표층에 드러난 의미는 내적 수양, 즉 자기-되기의 강변이지만, 그 이면을 파고들어가 보면 양차대전의 참화에서 비껴난 중립국 스위스에서의 자기 삶의 고충에 대한 정당화의 변임을 읽을 수 있다. 아주 짧게 거론되는 자신에게 도착한 토마스 만에 대한 비난의 편지에 대해서 우회적인 비난을 보내기도 하는데, 두 사람 공히 스위스로 망명 또는 이주한 인물이며, 나치에 대한 적극적 저항의 태도를 드러낸 적이 없기에 의심받기에 충분했음에 대한 반감이었을 것이다. 토마스 만은 바이마르 민주정에 대한 지독한 혐오를 보였던 대표적 지식인의 일원이었다. 결국 바이마르 민주공화정이 나치들에게 무너짐으로써 인류 비극의 대참화를 겪게 했던 책임을 지녀야 마땅한 일원이었음에도 그 어떤 인식도 보이지 않는 것은 비난의 대상임을 피해 갈 수 없게 한다.
특히 2차 대전 종전 해인 1945년과 1946년에 쓰여진 세 편의 산문 〈리기산의 마지막 일기〉, 그의 두 살 손위 누이인 〈아델레에게 쓴 편지〉, 1946년 4월, 루이제린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독일에 부치는 편지〉에는 파괴된 독일 본국과 달리 “파괴되지 않은 따사로운 집 안에 앉아서 매일 굶주림 걱정 없이 무사태평하게 지내 온 사람, (...) 직접 위협받은 적도, 더군다나 폭력을 당한 일조차 없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이처럼 인식하는 독일 본토 내 동료 지식인들과 민중의 비난을 뒤틀린 긍정의 언어로 말하면서, 그래도 한 마디 충고를 건 넬 수 있지 않냐고 운을 떼고서는 자신이 “1918년 당시, 여러분은 나쁜 헌법을 가진 군주제 대신에 자유스러운 공화제를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마치 자신이 바이마르 공화정을 지지한 듯 말한다거나, “모든 국수주의적 망상을 통찰하고 거기서 벗어나야”함을 역설하는 것은 다분히 기만이고 위선으로 읽힌다. 자신이 패망(1차 대전) 후 광기에 휩싸인 독일인들이 다시금 저지를 화를 예감했음을 지적했는데도 너희들은 거듭 불속에 뛰어들어 동일한 화를 자초하기 않았느냐는 지나가는 객이면 모두 할 수 있는 객쩍은 소리 같기만 하다.
특히 본국에서 전쟁(2차 대전)의 고통을 오롯이 겪어내야 했던 두 살 손위 누이인 아델레에게 쓴 편지에는 “나는 홀로 이곳 언덕 위의 집에서 누이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고독에 젖어, 나를 오해하거나 이용할 염려가 없는 사람에게...”와 같은 표현에서 드러나듯, 아델레가 그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랜 전쟁의 참화 속에서 끔찍한 고통을 보냈을 병든 누이에게 오히려 자신이 더 심한 고통에 놓여있음을 항변하는 것으로 읽힌다. 헤세가 1877년생이니 예순여덟 살이었을 것이고, 누이는 일흔 살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국에서 늙어가는 이로서의 외로움과 여러 고통이 있을 것이지만 과연 히틀러의 나치 독재 치하에서 겪어내야 했던 전쟁, 그 지옥 같은 죽음의 환경에 감히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1918년 또는 1945년의 글들은 이러한 자기 정당화와 이에 토대를 둔 독일인들에 대한 자기 성찰의 변들이라 말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표층적 내용인 ‘자기-되기’의 내용이 가장 깊이 있게 드러난 글은 〈고집〉과 〈전쟁과 평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세 편의 산문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글들 또한 1차 대전 직후인 1918년에 써진 글들로 패망한 독일인들의 괴로움과 분노의 실체가 대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작업이지만, 그것의 바탕인 정신의 성찰은 철저한 자기 내면의 인식이야말로 자기 삶의 근본적 변화의 동력임에 대한 역설로 채워져 있다. 〈고집〉의 글을 보면, “모든 미덕은 인간이 만든 법칙에 복종을 의미하는 반면에 오로지 고집만큼은 이러한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미덕이라고 말문을 연다. 그리고선 “고집이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법칙, 곧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극히 성스러운 법칙인 ‘자신만의 생각’을 따른다.”고 고집 예찬론을 펼친다. 여기서 말하는 고집이란, “우주에서 아무리 미미한 것일지라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완전하고 확실하고 흔들림 없이 자기 법칙을 철저하게 따르기 때문에 그러할 수 있는 것”이라는 표현처럼 그것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살아가고 행동하고 느끼는 소신 또는 개성과 같은 긍정적인 의지이다.

그런데 이 글은 현실정치에의 참여를 시민적 의무로 여기는 내게는 지극히 부당한 견해로 읽힌다. 이를테면 고집의 미덕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 대해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의 운명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며,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오로지 자신의 성장에 관심을 두”는 것이 삶의 최고의 미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삶을 지배했던 은신처로서 스위스의 이주라던가, 철저한 정치적 무관심(물론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말했다고 하겠지만)이라는 이기주의(egoism)가 어디에 터 잡은 것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는 자신을 이기주의라 부르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기주의는 “돈과 권력을 탐하는 천박한 이기주의”가 아니라고. 돈과 권력만 탐하지 않으면 이기주의가 타자와의 관계로 이루어진 인간 세계에서 무조건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가당치도 않은 궤변이다.
개성의 발현인 예술의 세계에서는 ‘너 자신이 되어라’는 어쩌면 필요한 미덕이고 요구되는 자질일 것이겠지만, 자신을 둘러싼 완벽한 담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완벽성과 가치를 드높이는 세계는 타자들이 모인 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 헤세의 이기주의가 자기 욕구의 실현을 위해 다른 이들의 수용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에고티즘(egotism;개인주의), 즉 다른 사람들의 간섭과 침해를 배제하고 무한한 다양성을 인식하며 자기 완벽을 추구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납득될 만한 주장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과연 전쟁과 정치의 세계에 얽매여 있는 독일인들에게 소용될 수 있는 미덕일지에 대해서는 의혹이 짙게 드리운다. 그는 패전의 분노에 매여 증오를 쏟아내느라 여념 없는 독일인들에게 에고티즘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되기에 철저하게 열중하면 삶을 더없이 완벽히 충만하게 꽃피우는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물론 모든 시민이 빠짐없이 자기-되기의 높은 탁월성에 이르면, 그 사회는 완전한 공화국으로서의 이상에 도달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 삶, 전쟁의 소용돌이에 직면한 현실에서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쓸데없는 소리요, 잡소리요, 자기 안락에 빠져 세상모르는 서생의 옹알이가 아닌가?
이 산문집에서 단연 오늘의 지성에게 공히 울림을 지닌 산문이라면 〈전쟁과 평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두 편이라 말하고 싶다. 〈전쟁과 평화〉는 전쟁이란 “인간의 원초적이며 자연스러운 본능”인 반면에 “평화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여전히 탐구하고 예감해야 하는 대상”이라 말하는 지점에서 그가 평화주의자임을, 희망과 이상주의에 경도되어 있었음을 보게 된다. 물론 긍정적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살며 타인을 두려워하고 증오하며 사는 것이 인간 삶이라는 측면에서 전쟁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방치하면 얼마든지 자연 발생하는 것일 게다.
따라서 평화는 얼마나 어려운가. 조금이라도 눈앞에서 소홀히 취급하면 평화는 저 멀리 도망치고 곧 속박과 폭력의 독재와 전제정치가 사람들을 찍어 누르거나, 전쟁의 참화에 휩쓸리게 된다. 결국 여기서도 헤세는 평화는 인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바로 인간인 우리 내면에 대한, 생명에 대한 인식, 그 비밀스러운 마법에 대한 인식을 사랑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자기-되기의 또 다른 표현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에 이르면, 패전에 대한 괴로움과 울분으로 이를 외부의 적을 향해 돌리는 독일 국민들에게 팽배한 의식의 실체에 대한 자기 성찰의 권고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정치 일반에 대한 보편성의 진실을 읽게 되는데, 왜 너희 독일인들은 “모든 나라가 너희의 적이 되었는지, 또 너희를 외면하고 비난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적 없느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너희는 결코 오해받지 않았다고 단정하면서, 이해받지 못하고 착각한 쪽은 바로 너희 자신이라고, 자신이 가지고 있지도 않는 덕을 내세우며 적들의 악덕을 맹렬히 비난하는 독일인의 자기 성찰 없는 맹목성, 과대망상을 지적한다.
우리들은 항시 자신의 좌절이나 패배를 타인의 악덕으로 전가하는 데 선수들이다. 선거에 지면, 이긴 자를 부정한 나쁜 놈이라 적대시하고, 패망하고는 엉뚱한 곳에 대해 온갖 악의를 퍼붓는 것이 바로 이러한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이다. “고약한 충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라면 너희는 모두 적들의 소행이라 치부해왔다.”며, 세상을 살아가려면 괴로움을 주거나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그럼으로써 우주의 차가운 냉기, 그 차가운 황홀경의 지각인 이성의 세계를 일궈낼 수 있으리라 조언한다. 자기 괴로움이 발생하면 그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귀 기울이기는커녕, 곧 그 괴로움을 외부의 대상으로 돌려 존재치도 않은 악덕의 적을 만들어 헛된 행짜로 열정을 낭비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 작은 산문집은 1919년 발표된 정치평론집 성격의 《차라투스트라의 귀환》과 1923년 출간된 일종의 비망록인 《싱클레어 노트》에서 몇 편씩이 발췌된 산문집으로, 총 14 꼭지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글 쓴 시기의 표시를 보면 1916~1919년 즈음하여 써진 글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1945~1946년에 써진 글들이 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연설문을 포함 4 꼭지가 있다. 각각 1차 대전과 2차 대전 즈음과 직후에 발표된 글들이듯 패전에 따른 독일인, 특히 젊은 세대를 향한 제언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글들의 울림을 오늘로 확장하여 읽는다면, 달리 표현하자면 패전이라는 절망과 울분의 나락에 떨어진 패망국 독일인의 좌절과 고통을 인간 일반의 절망과 고뇌로 전용하여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전용하여 읽게 되면 앞선 감상의 글과 같이 전쟁일반에 대해서, 평화의 어려움에 대해서, 괴로움과 외로움의 직면에 대해서, 자기 성찰이라는 내면 가꿈의 삶의 필요에 대해서 우리들은 어떤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1918~1946년의 독일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작가를 통해 이들의 정치문화적 이데올로기를, 그 전반적인 가치의식을 엿볼 수도 있다. ‘루이제 린저를 향한 공개서한’이라는 부제를 한 산문은 헤세가 전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불식시키려는 저의가 보인다. 나치에 저항하여 혹독한 고문과 구금의 고통을 겪었던 젊은 여성 지식인의 고초에 적극적 이해와 공감의 글을 공개적인 글로 발표함으로써 토마스 만과 같은 이들처럼 회색지대에 안주했던 인사가 아님을 불식시키려 했던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이러한 의혹이 절로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바이마르 정부시대의 한 지식인의 사고를 바라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글들이다. 그의 에고티즘의 역설(力說)은 그리 새로운 제안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이미 1890년대부터 이러한 자기-되기의 철학은 니체는 물론 예술과 철학에 넓게 편재한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융의 정신분석학과 맞닿아 있음도 한 영향이 되겠지만, 글쎄 그것에 지나친 조명을 비추는 세간의 저술들은 침소봉대가 아닐까. 1910~1945년의 독일 지성의 읽기는 너무도 인류 사회에 각양의 산물 -나치즘(전체주의), 민주주의 실험, 민중의 몽매성, 지성의 총체적 파괴적 흐름, 전쟁과 종전의 후과의 특정한 사례들 - 을 출현시켰으며, 그것이 오늘에도 하나의 전례로서 암약하고 있기에 관심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질풍노도의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지나치게 협의적인 시선으로 이 책을 읽을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는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데미안』을 한 아이의 내면의 성장으로 읽는 판에 박힌 독서는 어쩌면 헤세가 가장 싫어하는 순응성, 길들이기의 악덕이듯, 이 책 또한 무한히 다양한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