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추억하는 것 - 어느 소설가가 쓴 삶을 되돌아보는 마지막 기록
코리 테일러 지음, 김희주 옮김 / 스토리유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만물은 살다가 결국 죽는다. 의식의 시작이 있으면 의식의 끝도 있는 법이다...

의식이 어떻게 끝나는지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 본문 P 146에서

     

 

여전히 죽음의 실재를 삶과 분리된 어떤 것으로 느끼는 내게 죽음을 정상화한다는 것은 낯섦이고 어려운 무엇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내 삶에 착 달라 붙어있음을 알며, 그 순간이 언제일지 알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결코 다가오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이런 내가 왜 이 책을 펼쳐들었는지, 무엇을 알고 싶었는지, 아니 막연한 소멸의 두려움에 정작 마주했을 때의 황망(慌忙)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에 대한 동류(同類)로서의 위로에 대한 기대였을지 모르겠다.

 

4기 흑색종이라는 암으로 이젠 그녀가 남긴 글로만 대화하여야 하는, “견딜만한 죽음을만들기 위해 준비된 이 책은 죽음의 문 앞에선 자로서의 그 절박성과 간곡(懇曲)함으로 더욱 더 인생에 대한 강력한 성찰로 이끈다. 생의 끝에 선 한 소설가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마지막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다가온 어찌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삶의 기분이란 어떤 것인지, 무엇을 후회하고 추억하게 되는지, 삶의 의미가 어떻게 새롭게 생각되는지를 자신과 가족들의 갈등과 실패의 고백과 같은 진솔한 이야기에 실어 들려준다.

 

 

그래,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책이 아니다. 언젠가 그런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 한없이 외로워질 누군가를 위해 썼다.”는 그녀의 말처럼 생의 끝에선 혹은 화나고,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며, 실의와 허망함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이내 그것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아니 대처하는 생생한 지혜이자, 살아있음으로서의 그 무수한 감정들의 소중함에 대한 솔직하고 강렬한 울림이다.

 

작가는 죽음이란 아주 외롭고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되뇐다. 그리고 그 앞에서조차 매일 새로운 아침과 희망을 갖기도 한다고 삶에 대한 진실한 애착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문장을 앞에 두었을 때 숙연함에 그저 책에서 잠시 눈을 돌리게 되고 그것이 애틋한 호소가 되어 괜스레 마음이 진정되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죽음 앞에 설 미래의 누군가들을 위해 삶의 달콤함이 사라져 공허감만이 남아있을 때 삶의 추억들을 통해 새롭게 부여되는 삶의 이야기들이 들려지고, 그 의미들을 쫓는 여정에서 이내 위로를 되찾게 된다.

 

정작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의 나를 문득 생각게 된다. 정말 인생에서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를 생각지 않을까? 그때 나는 나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녀는 마치 내 물음에 답이라 해주듯이 나를 위로한 것은 내가 한 일에 대한 기억이라고 말한다. 못 한 일을 아쉬워하는 갈망이 아니라고. 살아있는 매일의 일상에서 맞이하는 그저 그런 경험들조차 삶의 의미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와 같이 산 신(남편) 그리고 아이들 얼굴...길게 대답하자면 세상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바람, 태양, , 눈 그리고 그 외에 다른 모든 것들도.(P 76)”라며 제일 그리울 것 같은 것에 대한 물음의 이 답변 또한 생()에 대한 무지의 내 편협한 인식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죽어서 좋을 일은 없다. 죽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픈 일이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피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지구에 한 아이를 배달했다. ... 그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키고 보살피는 ....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수년 동안 내가 살아갈 힘을 얻었고 변함없는 지원군이다.” 라는 영원한 생명성의 지혜에 경건하고 아름다운 지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 우아하며 더없이 지적인 마지막 삶의 회고를 덮으면서도 소멸의 두려움 앞에서 나는 죽어가는 여자이다. 내 몸이 살아온 인생 자체이며, 내가 보고 행동한 모든 것들의 진실한 기록이며, 내 모든 기쁨과 상심의 현장이며, 내 모든 오해와 눈부신 통찰의 현장이다. (P167)”라며, 영원한 현재성에 대한 자기 존재의 믿음에 대한 이 선언적 문장의 울림이 너무 커서 책을 손에서 한동안 내려놓지 못하기도 한다. ‘줄리언 반스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사려 깊게 바라본 삶과 죽음의 무작위성에 대한 지적 회고록이다. 또한 죽음에 대한 내 기억이 흐려지지 않는 한 절대 공감의 삶의 찬미로서 남아 있을 것 같다. Fa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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