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평의회 / 기사와 죽음
레오나르도 샤샤 지음, 주효숙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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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사회가 사기 유형을 만들어내죠. 말하자면 사회에 맞추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자체가 사기죠, 법적 사기, 문학적 사기,

인간적...그래요, 인간적이죠. 심지어 '존재'에 대한 거라고 말씀드리겠어요."  P180 中에서

 

소설 『이집트 평의회』는 어쩌면 위의 말처럼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 해야 할 터이다. 우리는 '있다'가 사라진다. 그런데 어떻게 있다가 갈 것인가? 또한 '인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혀 완벽하지 않은 허점과 모순 투성이의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기막힌 드라마이니 말이다.  이야기의 발단으로 하나의 사기극이 연출된다. 1782년 12월, 나폴리로 향하던 모로코 대사의 선적이 시칠리아 해안에 난파되자 총독은 아랍어로 된 고서의 해독을 감정케 한다. 이때 아랍어에 대한 식견을 갖춘 인물로 이웃들의 점이나 쳐주며 빈둥거리던 베네딕트회 수사신부가 통역자로 불려간다. 고서를 들여다보던 대사는 수없이 널려있는 "예언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함을 말한다. 그러나 신부는 "시칠리아 정복 및 지배에 관한 이야기"로써 아주 값진 고서라고 거짓 통역을 한다. 이로써 고서는 감정에 공석한 시칠리아 총독, 고위성직자인 몬시뇰에게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되고, 수사신부는 대사가 떠난 뒤에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확보한다.

 

이 사기극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사기극의 주인공인 '돈 주세페 벨라'신부는 진정 어떤 인물인가?   사기극이 사회를, 사회의 중추적 성원인 귀족들에게 어떤 반향을 불러올 것인가? 이때에도 예리한 지성은 있었다. 그 지성들은 이 사기극에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가? 그리고 이 사기극은 정녕 거짓의 의미이기만 한 것인가? 고서라는 역사의 기록물이란 진실이기만 한 것인가? 거짓과 진실의 경계란 진정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이런 의문들을 절로 하게되고, 누군가와 함께 덧없는 토론을 하고 싶은 심정을 갖게된다.

 

고서가 시칠리아 정복 및 지배에 관한 이야기라는 소문과 함께 자기 가문의 명예와 재산에 관계된 내용이 발견 될 것을 예견한 귀족들은 너나 할 것없이 벨라 신부에게 아첨하느라 법석을 떨어댄다. 그리고 하찮은 수사신부의 지위는 까닭없이 '수도원장'이 되어 불린다. 그런데 벨라 수도원장의 행보가 거짓 통역 시점의 속물적 그것과는 사뭇 다른 무엇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의혹의 시선을 보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변호사 '디블라시'는 일명 <이집트 평의회>로 불리는 고서의 해석본이 거짓임을 확신하지만 그의 삼촌과 하는 논쟁에서 "벨라 수도원장은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닙니다. 그저 범죄를 모방한 셈이죠. 말을 뒤집어 놓음으로써...시칠리아에서 수 세기째 소비된 범죄에 대한..."이라며, 우리 사회 자체가 사기인데 어찌 자신이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느냐는 논리로 벨라의 행위에 진정성의 의미를 부여한다.

 

급기야 디블라시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동시에 부여하지 않은 채 인간의 합리적 노력을 농부에게서 기대할 수 없지요"라며, 기득권 세력인 왕정과 귀족들의 불의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주도한 불순자로 참형을 받기에 이르는데, 처형장에 가기전 벨라와 그의 행위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그는 자기방식대로 인생의 사기를 마무리지었다. 유쾌하게...목숨을 건 사기가 아니다. 목숨이 있을 때 친 사기다.. 살아있을 때가 아닌...아니 그래, 살아있을 때에도..." 자체가 사기인 사회에 멋진 한 방 먹인 역사라고. 이 말은 벨라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사한 역사의 정의에 대한 주장에 가 닿는다.

 

"온통 사기요.역사는 존재하지 않소.어쩌면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무에서 떨어져버리는 나뭇잎 세대나 존재하려나? 나무가 존재하고 새 잎이 존재할 뿐이오. 그 다음에 그 나뭇잎도 떨어져버리고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나무도 사라져 버릴거요. 불에타서, 재로 말이오. 나뭇잎의 역사. 나무의 역사라고요. 헛소리! 만약에 나뭇잎 한장 한장이 자신의 역사를 쓴다면, 나무가 자신의 역사를 쓴다면 그렇다면 역사라 말할테지요...당신 조부께서는 자신의 역사를 쓰셨소? 부친은? 그럼 내아버지는? "  P89 中에서

 

그렇다면 주세페 벨라 신부는 진정 역사를 쓴 것인가? 아니면 사기극에 불과한 것인가?  아마 이 질문의 답은 다음의 문장에서 찾아야 되는 것 아닐까?  "거짓은 진실보다 훨신 강하다, 삶보다도 더 강하다, 거짓은 존재의 뿌리에 박혀있다. 거짓은 생명너머에 있는 태초의 원시림에 숨어있다."  P171 中에서

고문, 상실된 인권, 부패한 권력, 삶과 존재의 의미를 '역사'의 허구성에 빗대어 오늘의 우리 인간 사회라는 극장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낸 모처럼 발견한 수작이 아닐까?

 

책은 이 작품외에 <기사와 죽음>이라는 중편이 하나 더 실려 있는데 마치 추리물 같은 면모를 보이지만 권력의 정체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유명 변호사 '산도츠'가 피살된 채 발견되고, 살해되기 전 같은 장소에 있던 권력자인 '체사레 아우리스파'란 인물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지만 서장인 '카포'는 단서가 될 메모를 조사대상에서 제외하려 한다. 이렇게 권력의 시녀가 된 서장이 있고  이에 저항하는 부서장 '비체'가 있다.

 

"나는 너를 죽일거야"라는 산도츠에 보낸 아우리스파가 쓴 발견 된 메모는 한낱 농담으로 치부되고, 아우리스파에 답신으로 보낸 산도츠의 메모는 사라지고 없다. 서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체는 산도츠와 아우리스파가 함께 머물렀던 장소의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그러나 없다.

"쓰레기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회학적 교훈이다." 결국 산도츠가 보낸 메모는 아우리스파가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는 아우리스파가 사실을 은폐하고 있음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우리스파를 살인의 무대에서 제외시키려는 카포와 용의자의 선상에 세우려는 비체는 갈등한다. 급기야 여론을 조작하기에 이르는데, 어떤 조직이 주요 인사들을 살해하고 있다는 형식을 띤다.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조직을 기성의 조직으로 만들어 여론에 의해 만들어지는 후발적인 조직을 염두에 둔 교활한 방식이다. 즉, 시민들의 불안에 근거하여 권력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권력유지 수칙 1번.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은 항상 불안의 확산을 통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믿음은 역사이래 불변의 원칙인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는 짧은 풍자극 속에 있는 셈이지."라는 문장은 <이집트 평의회><기사와 죽음> 두 편의 소설을 아우르는 작가 샤샤의 이 세계의 실체에 대한 시선인 것 만 같다. 어쩐지 이 우주에 홀로 던져져 외로이 유영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같아 쓸쓸함이 몰려온다. 그래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가 사기이며 거짓인 환상의 세계이기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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