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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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의 이후 작품들은 모두 이 소설이란 샘터에서 길어온 것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사회주의 혁명이 휩쓸어 버린 사회의 잔해로 남겨진 텅 비어버린 인간들의 상처 난 심장과 상실된 인간성에 대한 울먹임이 서려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그렇고, 전체주의 중국의 일그러진 자가당착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사서(四書)』가 또한 그렇다. 사적 욕망과 혁명언어’의 혼화를 통해 인간성의 본질이 망각되는 시대에 대한 창백한 문장들의 뿌리, 아니 근원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유연성과 부드러움, 경직과 부동의 공고함이라는 일견 모순적 연결어인 소설의 제목인‘물처럼 단단하게’에서 이미 위험한 결합을 보게 된다면 억견이 될까? 이 은유적 언어는 사랑과 혁명, 무기력과 성적 발기라는 교묘한 집합의 표현이기도 하며, 아슬아슬한 경계와 흥분, 두려움이 교차하는 극적 필연을 연상케 한다. 인간 본성과 인간성을 말살하는 문화혁명의 강압적이고 인공적인 폭력성의 대비이기도 한 이 문장은 궁극적으로 ‘단단함’이 ‘물처럼’ 이루어져야 함에 대한 희구이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할 것이다.

 

인민해방군에서 전역하고 혁명의 일꾼으로 사회주의 문화혁명의 실천가가 되고자하는‘가오 아이쥔’은 귀향한다. 고향 마을은 정주학의 창시자이자 성리학의 거두인 정이(程頤), 정호(程顥) 형제의 후손들인 정(程)씨 문중의 후손들로 이루어져 유교의 봉건정신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아이쥔은 바로 이러한 봉건잔재인 청(程)씨들의 패방과 사당을 파괴하는 길만이 진정한 혁명의 시작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마을의 촌장인 장인 청씨에게 박색인 딸과의 혼인 약조인 마을 서기(書記)직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더욱 혁명에 대한 열의를 다짐한다. 한편 도시에서 청씨 가문에 시집 온 시골마을에서 보기 드문 미색을 갖춘‘샤홍메이’라는 여성역시 마오쩌뚱(毛澤東)의 문화혁명에 열광적이며, 마을의 혁명 동참을 요구하다 청씨에게 조롱과 치욕적인 취급을 받았음을 전해 듣는다.

 

아이쥔은 곧 미색과 혁명의 열의에 찬 샤홍메이에게 매료되고, 혁명은 그녀와의 사랑이 결합된 행위가 된다. 이윽고 샤홍메이는 아이쥔의 열정에 적극 동조하고 지지하는 혁명동지가 되고, 또한 연인이 된다. 두 사람의 사랑, 이들의 육체적 탐닉은 혁명의 불씨이며, 혁명의 동력이기에 혁명과 분리할 수 없는 실체적 요건이 된다. 그러나 자칫 밀애(密愛)가 드러나면 혁명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기에 이들의 성애(性愛)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것이어야 하고, 마음껏 타오르기에는 제한적인 한계를 내재한다. 드디어 아이쥔은 샤홍메이의 지지와 마을 청년, 노동자들을 향한 치밀한 선전과 설득을 통해 촌마을의 작은 혁명에 성공한다. 이제 촌에서 현으로, 현에서 성으로 혁명 일꾼으로서의 영역과 지위를 높여가고자 하지만 전통적 기득 세력의 은밀한 방해와 음모의 장애에 부딪치곤 한다.

 

아이쥔에게 혁명의 장애는 곧 제거하고 거꾸러뜨려야 하는 적대자일 뿐이다. 자신의 행로를 막아서는 사람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혁명의 무대를 넓혀나가는 맹목이 그를 장악한다. 그러나 그의 혁명은 샤홍메이와의 사랑이 결합된 행위이며, 그래서 그녀와의 온전한 결합은 혁명의 완벽한 실현을 향한 필요조건이다. 완전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집으로부터 500여 미터에 이르는 여자의 집을 향해 2년여에 걸쳐 땅굴을 파내고, 마침내 두 사람은 연결된 지하 땅굴에서 혁명과 사랑의 온전한 결합을 만끽한다. 자유로운 교성과, 완전한 시선의 탐닉....

 

혁명과 공존의 영역을 가질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은 이처럼 지하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이 된다. 지상의 세계가 아닌 지하의 세계에서만 그 영역은 교집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혁명가(歌)의 열광적 선율이 진동할 때에만 아이쥔의 육체는 ‘물처럼 단단해’지는 것이다. 인간과 혁명의 결합이 비로소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소설은 아이쥔에게 땅굴을 파게하면서 이미 죽음을 향한 암시를, 아이쥔과 샤홍메이의 지하에서 펼쳐지는 열락(悅樂)에서 문화혁명이라는 것의 본질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 게다. 그래서 두 혁명가는 잔혹한 혁명의 행로에서 그네들 사랑의 결합은 죽음으로써만 가능하리라는 것을.

 

비단 중국의 사회주의 문화혁명만이 인간 개인의 본성을 압살하는 것은 아니다. 항시 혁명이란 기치아래 수행되는 전복에는 획일화된 이데올로기의 복종과 이에 수반되는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폭력성이 정당화되곤 한다. 여기서 그 존재를 부인당하는 인간과 인간 역사의 파괴는 당대의 인간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생존과 죽음의 양분법, 물처럼 단단하기는 지하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적(赤)색(공산주의)과 황(黃)색(성:性)의 기만적인 금기를 깨뜨리고 훼손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로운 존엄성을 끊임없이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옌롄커의 작가적 시선은 그 회복이 도달하기 불가능한 지점에 있기에 더욱 간절하게 보이기만 한다. 인간에게서 사랑이란 본질적 요소를 박탈하는 것이 그 무엇으로 가능하겠는가? 옌롄커 소설의 중심인 금기에 대한 도전의 뿌리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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