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저고리의 욕망 - 숨기기와 드러내기의 문화사 키워드 한국문화 12
이민주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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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세계만큼 의상(衣裳), 즉 패션이 물신(物神)화 된 시대도 없으리라. 그것도 모자라서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이젠 그 신들끼리도 차별화하느라고 난리다. 자본에 최고의 미덕자리를 부여한 사회에서 물질을 통해 나와 타인을 구분하려는 행동은 불가피할 것이다. 서로 이렇게 물화된 현대인의 심성에 편승하려는 패션의 물질지상주의적 욕망들은 또 다른 인간의 욕망인 나르시시즘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지고, 실종된 정신 대신에 자리잡은 물질의 허영, 곧 계급, 신분의 표상으로서의 욕망을 자극하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의상과 욕망 결합의 역사는 사실 유서가 깊다. 아마 인류가 자신의 몸에 무엇인가를 걸치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 할지도.

 

우리의 전통 의상인 ‘치마저고리’에 정신분석적 용어인 ‘욕망(慾望)’이 결합한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 시대에 숨겨진 인간의 은밀한 심리들을 연상케 한다. 20세기 식민지 근대화와 함께 서구의 양장에 일상복의 위치를 넘겨줄 때까지 이 땅의 여성 복식은 큰 범주에서 치마저고리뿐이었을 것이다. 그러하니 이것의 작은 변화들이 곧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고, 이러한 변화들 중에서도 16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치마저고리 길이의 급격한 변화는 결코 예사로운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길이이고, 이에 상응하여 길어지고 넓어져서 풍성해진 하의인 치마이다.

 

인상 깊은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내가 까마득히 어린 시절, 외출하기 위해 화사한 한복, 특히 짧디짧은, 그리고 어머니의 몸에 비해 왠지 지나치게 작게만 느껴지던 치마저고리를 입으시던 모습이 다른 어떤 기억보다 선명하다. 가슴도 채 다 가려지지 않을 것 같고 게다가 치마와 저고리 사이의 공극은 괜스레 불안해 보였던 것 같다. 누천 년 간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던 저고리의 길이가 이렇게 짧아지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일까? 반상의 구별이 뚜렷하고, 여인에 대한 구속이 엄격하던 시절에 어떤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일까?

 

저자는 이 의미와 원인을 억눌렸던 성적 욕망의 발현으로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금기가 여전히 작동하던 규방에서가 아니라 많은 허용이 용납된 기생이 그 시작점이었으며, 이것은 사대부의 첩실이라는 신분상승이 최고의 목표일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에게 자신들의 미색(美色)을 차별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리라는 것이다. 짧아진 저고리 아래 살짝 살짝 비치는 여인의 가슴과 속살, 그리곤 이것을 가리기 위해 꽉 조여 맨 옷고름, 드러날지도 모를 속살을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 치마를 가슴께로 치켜올려 잡아든 손은 더욱 여인의 가슴을 주시하게 한다. 드러내기 위해 짧아진 치마저고리와 이로써 드러나게 될 가슴을 감추려는 이 행위에서 절묘한 도발의 심리를 엿보게 된다.

 

기생의 관능적인 복색은 남성을 붙들어두려는 여염집 여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짧아지고 품이 작아진 저고리는 소위 유행의 물결을 타고 확산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유행전파이론 중에서 소위 하부계층에서 상부 계층으로 옮겨진 상향전파의 대표적 예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 신분은 낮았지만 기생들은 사대부 남성이라는 ‘상부계층의 문화’에 속한다. 조선시대의 엔터테이너였던 이 여성들을 오늘날의 연예인에 비유한다면 상향전파라고 규정하기에는 석연찮은 판단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어쨌든 여인의 복식에서 차별화는 짧은 치마저고리의 변화로 나타났고, 여기에 여체(女體), 즉 가슴과 허리, 그리고 엉덩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위해 치마 역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부풀어져 풍성한 치마는 여인의 허리를 더욱 잘록하게 보여주어 에로티시즘을 극대화하는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하후상박(下厚上薄)이라는 과장된 관능의 패션으로.

 

이렇듯 의상은 유혹, 즉 자기 욕망의 투사라 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다름과 닮음의 양가적 욕망의 끊임없는 충돌이 있으며, 그것은 곧 차별화, 구별짓기를 통한 과시이고, 타인의 시선에의 풀려나지 못하는 정신적 불구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의복의 형태는 당대 인간들의 욕망의 처소이고, 시대상을 표현하는 가장 전형적인 고고학적 재료라 할 것이다. 속곳, 니의(裏衣), 봉지, 단니, 단속곳이라 불리던 여성의 속옷들은 감춤의 미학이고, 유혹의 또다른 발현일 것이다. 겉치마 속에 여섯 벌이나 되는 속곳을 입어 꼭꼭 숨겨 둔 것의 내밀함, 그리고 부풀려진 하의는 엉덩이로 시선을 모으는데도 일조하였으니 단순하게만 보였던 치마저고리와 하의치마의 혁신적 변화에 담긴 의미는 의상패션의 본성을 거듭 확인케 한다. 이 작은 유혹적인 책자와 함께하는 짧은 시간은 무관심했던 우리 복식의 숨겨진 의미의 해독과 함께 예사로이 보았던 조선조 미인도나 풍속화 속 여인들의 복색으로 절로 눈이 가는 즐거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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