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색 - 안국선.이해조.최찬식 소설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0
안국선.이해조.최찬식 지음, 권영민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00년대의 영미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고전은 읽어도‘신소설(新小說)’이라 불리는 당대의 우리문학 작품은 왠지 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정도로 치부하고 대중의 독서물(讀書物)로서는 부적절하다는 선입견을 가져왔다.
고작 신소설 작가 몇 사람의 이름과 작품명, 그리고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는 대강의 이야기흐름만을 가진 천박하고 막연한 이해로 식자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모습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이들 신소설이 뛰어난 작품성을 지니고, 고고한 문학적 향취를 지녔다거나 세계의 고전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세풍을 견뎌낼 만한 숭고한 인류의 사상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한국의 문학사에 있어 본격적인 근대문학을 준비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신문명과 근대사상을 보급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였던 작품들임을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신소설이란 1906년부터 약 10년간、구한말 개화기의 啓蒙文学이라 할 수 있다. 조선반도를 에워워싼 세계열강들의 외압에 대결할 만한 정신적, 물질적 기반이 모두 취약했던 당시로서는 근대화된 서구와 일본 등 외세에 무력 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개화된 일부 지식인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깨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게 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이 시기는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이라는 식민지사회로의 이전이 있기에 자주독립, 신교육, 과학지식, 미신타파, 남녀평등과 여권확장, 민주주의와 같은 사상의 근대화는 절실한 것이었다. 물론 이 시기에 발표된 신소설 모두가 구한말 조선인의 순수한 정신적 각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작품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인 대동아공영의 찬양, 고무와 같은 친일(親日)적인 것들도 있지만 역시 야만에서 문명으로 개화한다는 근대성의 추구라는 의미만은 공통적인 것이었다 하겠다.

이 소설집은 1908년에 발표된 안국선의 『금수회의록』과 이해조의 『구마검』. 1910년에 발표된 이해조의『자유종』, 그리고 1912년 발표된 최찬식의『추월색』 네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따라서 1910년의 한일병합을 전후하여 계몽의 주제가 확연하게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이른 시기에 발표된『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은 그야말로 결딴난 당시 사회의 패악과 무력감을 냉혹하게 비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해 그 부도덕함을 준엄하게 논박하고 있는 것은 수록된 여타 작품들에서는 발견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 모두(冒頭)에“지금 세상은 인문이 결딴나서 도덕도 없어지고, 의리도 없어지고, 염치도 없어지고, 절개도 없어져서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몰라서 세상이 다 악한 고로...”하고 시작한다. 결국 인간들은 금수나 초목보다 못한 것들이어서 바로 금수(禽獸)와 초목(草木)이 인간의‘무도패덕(無道悖德)’함을 공격한다는 명분을 부여하고, 이어 동물, 곤충들이 연이어 연단에 서서 고사성어를 빗대어 인간의 패덕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날더러 도적놈 잡으라하면 벼슬하는 관인은 거반 다 감옥서 감이요.”하는 구절에 이르면 오늘의 한국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 100년 전의 그 때를 판박이 한 것만 같은 마치 시간이 과거로 회귀한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될 정도가 된다.

그러나 같은 해 발표된『구마검』에서는 일체의 정치적 자존을 외치는 목소리가 없다. 다만, 미신타파라는 하나의 주제로 허무맹랑한 무당의 사욕이 한 사대부가를 패망에 이르게 할 정도에 이르는 과정을 미신에 모든 행위를 기탁하는 무지한 아낙네를 중심으로 무참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실 극단적인 무당(巫堂)맹신의 서사는 지나치게 과장되어서 당시에 그 계몽적 효과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위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통사회와의 단절을 획책하기 위한 근대화 전략에 지적고뇌 없이 백성들을 계도하려했던 당대 지식인의 한계를 보는 안타까움이 드는 작품이라 하겠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자유종』은 합방을 불과 1개월 남짓 앞둔 시기에 발표된 작품인데,『구마검』과는 달리 부권(婦權)을 확보하자는 양성평등과 나아가 국력의 신장을 이루기위해서 여권(女權)은 절대적 필수라고 주장하며, 국세(國勢)가 빈약한 것은 학문이 없는 연고이며,  자국 정신은 간데없고 “중국 혼만 길러서 언필칭 『좌전』이라 『강목』이라 하여 남의 나라 기 천년 흥망성쇠만 노래하고 내나라 빈부강약은 꿈도 아니 꾸다가 오늘 이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체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역시 오늘의 한국사회가 미국중심의 일방적인 문화와 교육수용으로 사상의 불균형이 초래되고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힘이 되어“주체는 없고 객체만 숭상”하는 모양과 한 치의 차이도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는“묵은 허물을 일제히 벗어버립시다.”고 주장하며, “조금 유식하다는 사람들과 늙은이들은 벗기가 극히 어려워 ~(中略)~ 반쯤 벗다가 기진하거나, 아니 벗으려고 앙탈하다가 죽는 사람도 왕왕있습니다...”하고 보수적 집단들의 변화에 저항하는 모습을 빗대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아무튼 문학적 성취라 이를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당대의 사회상을 오늘과 견주어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은 사실이다.

끝으로 합방이 이루어진 1912년 발표된 『추월색(秋月色)』은 그야말로 이전의 작품들과 완연한 차이를 인식할 수 있다. 작품의 배경 역시 일본 동경의 우에노(上野)공원, 신바시(新橋),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경성(京城)과 만주 봉천까지를 아우른다. 정임과 창영이라는 어린 소녀와 소년의 성장과정에서 겪는 천신만고(千辛萬苦)끝의 헤피엔딩이라는 다소 의아한 사건들의 진행 속에서 신문명의 당위를 강조하는 연애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린 시절 혼인이 약조된 창영의 집안이 민란으로 종적을 알 수 없게 되자 시집을 보내려는 부모를 과감히 떠나 일본의 유학길로 도피하는 정임이라는 여성을 그려낸다.

구습(舊習)에 대항하여 신문명의 효율성과 합리성이란 장점, 그리고 물질적 풍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우연성에 의지하는 등 소설적 엉성함이 다소 읽기를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봉천으로의 신혼 여행길에선 젊은 부부는 부설된 철도를 놓고“동양행복의 기초”, “황색인종도 차차 진흥되는 조짐”이라는 등의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를 향한 야욕을 비판 없이 수용, 편승하는 것과 같은 무지함이 있다. 다만, 수록된 네 작품 중에는 그나마 가장 근대문학에 가까운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는 비교적 세련된 작품이어서 춘원 이광수의『무정(無情)』과 유사한 느낌을 갖게도 된다.

한편 이 소설집은 잊혀진 우리말 표현들이나 고사성어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한 독서가 되기도 한다. 100년 전의 그 때와 오늘을 비교해보는 간접적인 사회학적 체험과 같은 뜻하지 않은 수확도 안겨 주며, 작품의 해설은 물론, 각 작품마다의 어휘들에 대한 사전이 수록되어 있어 우리 문학학습에 유용한 도서라 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