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범우사상신서 35
E.F.슈마허 지음 / 범우사 /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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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불과 40여 년 전만해도 세계 저개발국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사회가 이젠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원조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과정에 대한 시시비비는 차치하고 근대화, 산업화라는 서구열강의 흉내를 낸 것이 지금의 외형적 성장을 이룩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결국 제한된 자원 하에서 여전히 성장을 도모 할 수 있는 지역적 환경의 덕을 보아왔으나 이젠 값싼 노동을 구하기 위한 이전의 틈새도 점진적으로 고갈되어 가고 있어 양적 성장만을 추구 하던 경제기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고려하여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한없이‘성장’을 밀고 나가기만 하려는 사고방식은 심한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그 하나는 기본적인 자원의 제약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 성장에 의해 초래된 간섭이 자연이 감내 할 수 없는 한도에 이르러 있다는 점이다. 무한한 전면적 성장을 지향해도 수용되던 과거의 환경은 지나갔다. 더구나 끝없는 팽창주의로 자원과 환경의 양면에서 자연을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한편,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창조성을 억압하여 인간소외를 진행시켜온 결과는 인류 문명의 다양한 부문에서 붕괴와 몰락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저술은 바로 이와 같은 기계화, 산업화를 통한 유물주의적 철학이 판치는 경제지상주의의 세계가 야기하는 인간과 자연의 심각한 손상과 인간을 배제하고 양(量)이 지배하는 시장논리로 질(質)을 논하지 못하는 실증주의의 과학을 비롯한 19세기 대사상의 비판과 이의 대안으로서 인간중심의 기술인 중간기술과 새로운 소유의 형태 등 인류사회의 영속적 존재를 위한 제안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을 서로 다투도록 만드는 원인인 탐욕과 질투심을 의식적으로 조장시킴으로써 성립되어 있는 자본주의경제를 기초로 하여 평화를 이룩하려는 것은 二重의 환상”이라고 오늘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사상을 비판하는 저자는 수량화의 발달로 놀라운 학문적 발전을 이룩한 듯한 근대경제학이 질적인 가치를 도외시하거나 파악치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국민총생산과 같은 수치의 신장을 단순히 선(善)으로만 바라보도록 하는 왜곡된 교육이 진행되고 있어, “그 신장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하고 질문하면” 답변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 신장한 것이냐 라든지, 그 이익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냐 라는 문제 등은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5파운드의 석유, 5파운드의 밀, 5파운드의 호텔비”등과 같이 총량에 한계가 있는 재생될 수 없는 재화와 반복 재생 될 수 있는 재화의 구분과 같이 본질적인 질적 차이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지 못하는 근대경제학의 무분별한 합리성의 판단이란 것이 오직 공급하여 얻어지는 이윤율뿐이라면 이는 진정 합리적 신호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질적 가치를 희생시키고 양적 가치, 다시말해 돈의 형태로 충분한 이익을 올리지 않는다면‘비경제적’이라는 기이한 사고를 정착시킨 오늘의 시장자본주의 사회의 가치이념은 오직 부를 손에 넣는 것만이 현대의 최고목표라는 물질 하나로 수렴되어가는 전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물질적인 것이 본래의 정당한 지위인 종속적인 지위로 돌아가는 생활양식을 역어내는 것, 탐욕을 무장해제하고 기술과 조직의 틀을 바꾸고 새로운 생산과 소비 생활시스템을 만들어 노동의 인간화를 꾀하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영속성을 지니는 경제를 살려내는 것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최고의 과제여야 할 것이다.

인간이나 자연까지 단순한 생산도구 이상으로 고려하지 않는 현대의 대량생산, 규모의 경제와 같은 거대(巨大)신앙은 윤리를 삼켜버리고 경제이외의 가치인 인간적 관점을 봉쇄해 버렸다. 또한 논리적으로 아무리 따져 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확산 문제)와 해결 가능한 문제(수렴문제)에 대한 구별없이 수렴되는 문제만 상대하고, “탐욕과 고리(高利)와 경계심(경제적 안전)을 신(神)으로 삼고”있는 오늘의 경제세계는 덕(德),사랑, 절개 등의 말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역사가 보여주듯 문명의 숙명을 좌우했던 토지의 이용 역시 경제적 효용가치로서만 인식될 뿐 생명, 목숨이 있는 무한한 살아있는 물질로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농업과 공업에 대한 차이인식의 결여, 재생불능 천연자원에 대한 오만한 태도, 근본적으로 자동차와 동물조차도 효용의 가치로만 구분하는 중대한 형이상학적 오류로 인한 위험, 즉 존재의 차원을 간과하고 있기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인간으로부터 창조적 일을 빼앗고 파편화된 일을 떠넘긴 현대기술, 과학이 야기한 세 가지 동시적인 위기 - 기술, 조직, 정치 등이 인간성을 거역하여 사람의 마음을 침식하고, 생물계라는 환경 손상과 부분적 붕괴의 징후,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낭비 극도화로 인한 고갈 가능성 - 의 지적과 함께 인간중심의 기술로서 거대기술보다는 소박하고 값이 싸며, 제약이 적은 자립, 자주, 민중의 기술로서 중간(中間)기술에 대한 피력은 오늘의 남반구에 집중되어 있는 저개발국 및 농촌지역의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示唆하는 바가 높다하겠다.

그러나 이 저술의 꽃은 단연 3부 5장의‘새로운 소유 형태’라 할 수 있다. 사유와 공유,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자유와 전체주의를 매트릭스화 하여 오늘의 우리가 궁극으로 지향하여 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장으로서 사기업의 국영화에 대한 치밀한 제언들, 사적소유에 대한 마르크시즘의 경제적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그만의 새로운 견해의 피력은 매혹적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적정규모의 소비로 인간으로서의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간소와 비폭력, 모순되어 보이는 자유와 질서의 조화, 인간에게 주의를 돌리는 사고체계에 근간하는 대중생산체제에서 중간기술까지, 그리고 새로운 형이상학체제의 구축에 이르는 슈마허의 제안들은 오늘을 걱정하는 인류 모든 이들에게 중대한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다.

“생명이 없는 물질은 우아한 것으로 만들어져 공장을 나오지만,
인간은 거기서 부패하고 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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