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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교양강의 -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는다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 돌베개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한국인에게 여전히 읽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웃 중국의 고대사이자 그네들 최초의 역사서라는 의미로 시작해서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일 텐데, 사실 중국의 역사학자인 전종서가 언급했듯이 “옛 역사책의 기록은 대부분 팩션(faction)이다.”라는 말은 더구나 사실로서의 진정성을 상실시키는데, 그럼에도 2000년 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애매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또한, 사기의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에 기록된 많은 인물들의 흥하고 망하며, 성하고 쇄하는 삶의 이야기이고 여기서 유래하는 오늘날 우리들이 고사성어라고 하는 상황의 이해를 실감나게 하는 소박한 지식의 축적이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머물게 된다.

특히나 사기를 역사서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삶과 처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비록 균형적인 관점과 기술을 유지키 위한 노력으로 녹이(錄異)나 수일(搜佚)과 같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록을 모두 남겨 후세의 판단에 맡기는 노력을 하였으나, 사마천 자신의 주관적 기술을 피하지 않았음은 삶의 지침서라고 하기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아마도 바로 이러한 교훈적 가치들에서 저자의 말처럼 포전인옥(抛磚引玉)하려는 의도가 이유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저자 한자오치(韓兆埼)의 사기에 대한 개괄적 해설서라 할 수 있는 이 저술에서 이러한 삶의 원칙이나 처세술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면면히 20세기를 이어져 온 통치술이자 한국인을 얽어맨 사상적 기원을 발견하고, 당시대에서 조차 비난 받던 제도를 21세기 오늘에도 답습하는 정치꾼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들에서 나는 작은 즐거움을 얻는다.
불과 20세기 초엽까지 우리의 통치술로서의 근간인 유교사상의 본질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측면에서, 한 무제(B.C.156 ~ B.C.87)의 패도(覇道)와 왕도(王道)를 병행한 정치술이 기점이 되었다는 것은 의외의 수확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미 孔孟의 순수한 유교가 아니라 한국인을 2000년간 묵어놓은 지배이념이란 것은 유가의 이상이 변질된 것으로서“성직자와 폭력배가 동시에 통치한 것”이라는 적절한 표현이 어울리는 패도정치이념으로서의 유교라는 설명이다. 이는 결국 백성의 교화와 엄격한 법률 통제의 이론적 배경으로 변화하여 처세기술로서 보다 심화 발전하였다는 인상을 준다.

한편 웃지 못 할 발견이랄 수 있는데, 기원전 2세기 전한(前漢)의 형벌 제도 중 마음속으로 비난했다고 심증적 처벌을 하는‘복비(腹誹)’의 일화를 읽으면서, 보도에서 촛불을 켜면 반정부 시위자일거라고 추정하여 연행하는 오늘의 우리사회와 연결되어 그 폭력성과 전제적 권위, 말살된 인권을 보는 것 같아 통증이 일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본 저술,『사기 교양 강의』에서 “이상적인 정치와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무한한 열망”, 그리고 “동시에 그 당시 정치 및 사회 현상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읽게 된 것은 지금까지의 사기에 관한 저술들의 논점을 극복하는 수확이랄 수 있겠다.

조걸위학(助桀爲虐)하는 현 정권의 세력들, 사생취의(捨生取義)는 오간데 없고, 청정무위(淸靜無爲)로 눈 감고 모른 척 나서지 않는 관료와 지식인들이 사기의 처세술만 읽지 말고, 그것이 의미하는 보다 본질적 정신을 헤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진시황제도, 항우도, 유방도, 한무제도 죽었다. 권세와 이익을 좇던 조고와 이사도 죽었다. 사마천 말마따나 태산처럼 무겁게 죽느냐,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죽을 것인가는 인생관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삶에는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이 사기에는 무수하게 흐르고 있다. 이 저술은 이러한 삶의 지혜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훌륭한 안내서가 되어준다. 독서의 즐거움이 있는 저술이다.

[註]
①포전인옥(抛磚引玉) - 벽돌을 던져 옥을 끌어 들인다.하찮은 의견을 먼저 내놓아 다른 사람들의 귀한 견해를 유도한다는 의미
②조걸위학(助桀爲虐) - 악한 자를 도와 더욱 악행을 저지르는 것
③청정무위(淸靜無爲) - 가급적 조용히 지낸다. 즉,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서지 않음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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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k3049v 2009-10-07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을 위해서 사기를 여러 종류의 여러 권을 읽어보았는데, 이번의 것은 생각의 의미를 알게 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책과의 다른 점은 텅빈 하늘을 바라보면서 풍족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아닐까?

필리아 2009-10-07 08:39   좋아요 0 | URL
다른 시각으로 보려고 의도적인 노력을 하면서 읽었죠. 목적을 추구하다보니 특정한 면만을 부각시킨 결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