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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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흰 개는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무모한 싸움을 멈춘 것이었다.

투견장에 자유는 오지 않았다. " - P 182 중에서

 

 

소설은 도시 욕망의 다른 표현, 타인의 실종, 죽음을 댓가로 주어지는 것, 그것 '이름'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름없이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대가로 빚을 가리고 이득을 보는" 도시, "그들의 실패와 죽음을 연료로 휘황하게 빛나는" 도시, 자신의 자유를 담보로 처절하게, 또한 폐쇄된 나선형 계단을 끝없이 오르려는 갈망으로 가혹한 경쟁에 매몰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설의 한 단어, 한 문장 모두가 이 도시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처절하고도 묵직한 본질적 의미를 담아 잠든 감각의 심연을 헤집는다. 투견장과 하나 시(), 이 유비적 공간에서 각기 사육되는 흰 개와 한 남자, 그리고 투견을 기르는 소년의 아버지와 소년을 세뇌하는 사채업자로 형상화되는 참담하고도 혹독한 삶의 이야기는 펼쳐드는 순간 그 안으로 깊이 빠져들게 한다.

 

녹슨 뜬장에 갇혀 포만과 굶주림이 반복되는 사육 속에서 투견장에 끌려 다니며 수없는 싸움에서 돌아오는 흰 개, 그리고 아버지의 빚 담보로 양도되어 사채업자에 의해 사람을 갖다버리는 청부업자로 훈련되고 손에 피를 묻히며 표적들의 숫자가 영()이 되면 자유를 얻으리라 죽을힘을 다하는 남자가 있다. 그 둘은 모두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악랄함과 적의, 무심과 냉담함으로 키워졌다. 모두 물고 뜯어 찢어발길 대상일뿐, 그래야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세계에 내몰린 존재들이다. 그리곤 소용이 다하면 개장수에게 사료 값으로 건네지듯 그렇게 사라지는 이름 없는 존재들이다.

 

이 두 존재를 오가며 서술되는 이야기는 어느 날 자신의 몸뚱이를 조심스럽게 쓸어보는 소년의 손등에 이마를 가져다 대던 흰 개와 그의 가슴팍에 맥박이 뛰는 소리를 듣던 소년의 "가슴 한 켠에 싸르르"하게 흐르던 슬픔 그것이 그대로 전염되어 시린 마음을 움켜쥐게 한다.

 

세상사람 모두가 거꾸러뜨려야 할 먹잇감이며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할 도구, 한낱 작대기, 숫자로 수렴되는 사회라고 세뇌된 사람인 우리들은 "어둠 속에 치솟아 빛나는 고층 빌딩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곤 자기보다 높이 오른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언젠가 올 그 경쟁의 속박에서 풀려날 자유, 그 무한의 해방이라는 환상을 향해 영원히 나선의 계단에 갇혀 맴도는 것을 그칠 줄 모른다.

 

또한 화학공장 폭발로 오염된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소설 속 B구역이라는, 허물어진 육신을 한 식인귀들만 득실대는 죽음의 땅으로 낙인을 찍어, 자신들의 세계로 부터 분리하고 배척해서 지워버린 지대처럼 이 도시는 자신의 비열과 누추함을 가린다.

 

사람 갖다 버리기 딱 좋은 공간이다. 치매노인을 버리러 찾아든 사내에게 그곳은 죽어야 끝나는 투견장이며, 다름 아닌 지옥으로 다가오지만 장애 여인을 버렸던 그곳, 숫자 '0'을 향한 자신의 몸부림은 헛된 망상, 철저한 소비 도구이며 풀려 날 수 없는 노예였음을 자각하는 전환적 사건의 장소이기도 하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졌기에 오히려 새로운 삶의 땅,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보살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가 된다.

 

누군가의 피를 빨아대며 세력을 키우는 도시, 다 빨린 대상은 배제된 지대에 버려 지워버리고 망각하는 도시, 제거될 대상을 회피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기 대신 새로운 먹잇감을 매달아 놓는 것이 유일한 도시, 그 도시는 늘 돈을 갚지 못해 벼랑에 선 사람들을 양산한다. 그들을 딛고 선 것아 바로 우리들의 도시가 아닌가? B구역에 버려진 여자가 말한다. 이곳에 버려줘서 고맙다고, "이런 지옥에 버리고 가는데 고맙다니요?" , "내겐 그곳이 더욱 지옥이었어요."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늙고 교활해진, 이 도시의 생태계에 능숙해진 내 마음만큼 무력감, 그리고 회의가 찾아든다.

 

"공들여 쳐놓은 거미줄, 그 가운데 앉아 기다리지만 잡게 되는 것이 정작 자기 자신이 아닌지"하는 물음처럼, 스스로 멈출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자유가 오리라는 소설 속 투견, 가만히 바람을 맞던 '흰 개' 의 모습처럼, 죽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삶을 지탱하던 남자가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것처럼 우린 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인지....

 

"한 사람이 죽음을 향해 내달려가며 느끼고 있을 두려움과 고독함"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연민과 사랑이 내 마음의 중심이 되기를 끊임없이 응시하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또한 이 도시가 버린 시체들과 종()이 함께 매달려 회피와 두려움의 경계로 가려진 지대에 있는 외면한 사람들을 찾아보라고 스스로에게 채근하라는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네 그칠 줄 모르는 싸움을 멈출 이유로 해석하고픈 내게 아래의 문장은 너무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갇혀있던 뜬장에서 나온 흰 개의 모습, 그 자유에 대한 이해, 손길과 유대의 이해가 아니었을까? 작가 박영의 문장은 내게 항시 관능적 이해를 선사해준다. 잊을 수 없는 그 깊은 감각의 정서를.

 

 

마당에 피어있는 풀꽃 냄새를 맡고, 햇볕을 쬐었다.

그러다가 가만히 앉아 바람을 맞았다.

눈을 감고 있는 흰 개의 이마털이 흩어지고 있었다." - P 6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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