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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이번 작품집은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몇몇 작품 덕에 7편의 작품 모두를 읽게 되었다. 물론 모든 작품이 그렇게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 임성순, 최정나, 박민정, 박상영 네 작가의 단편은 오랜 만에 즐거운 읽기를 가능하게 해 준 우리문학 작품이라 하고 싶다. 특히 최정나의 「한밤의 손님들」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1942>에서 느껴졌던 ‘불안정성과 몰입의 거부’와 같은 내가 기억하는 감성과 같은 호흡이라는 반가움이었다. 그리고 임성순의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어떠한 진부한 소재라도 그만의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문장으로 전환시켜 독자를 압도해버리는 솜씨에 다시금 매혹되었다고 해야겠다.
수상작인 박민정의 「세실, 주희」 는 읽을수록 반하는 글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다시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라 부르고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인 ‘주희’가 듣기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예쁜’문장이라는 느낌인데, 그것은 어떤 표피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극성 강한 의미들이 날카롭게 꽂혀있다는 면에서 그렇다. 뾰족함이 감추어진 듯 드러나 있는, 말 없을 것 같으면서 할 말 다하는 그런 것, 신작 알리미에 이 작가를 등록 해둬야 할 것 같다.
동성애 코드를 그려낸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그야말로 젊은 색채가 톡톡 튀어대는 감각을 갖게 한다. 무얼 하지도, 되지도 못한 퀴어영화 감독 지망생, 현대 무용가의 보란 듯한 실패 선언이 그 어떤 소설들과는 다른 맺음 방식의 신선함이었다고 해야 할까? 괴팍하게도 어떤 파괴적인 모양에 끌리는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써 내는 산다는 것의 솔직한 면모들의 장면들에 반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발견하기를 기대했던 것을 발견할 때에 공감의 정도가 높은 것처럼, 수록 작품들에 대한 관심의 고저는 순전히 알고 있는 익숙한 것에 대한 선호일지 모른다. 이를테면 영국의 문예비평가인 ‘올리비아 랭’이 쓴 『외로운 도시』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대한 “감금과 노출”이라는 쌍둥이 메커니즘에 대한 해독은 내게 깊숙이 각인되었던 이해였기에 유사한 배경을 지닌 「한밤의 손님들」의 묘사들은 친근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소설 도입부의 한 장면인 몸에 힘을 주고 버텨보지만 누군가에 의해 잡아채어지듯이 식당으로 들어가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뭔가 부적절하게 배척하고 싶은 것에 끌려가야하는 끔찍한 불쾌감이 느껴진다. 결국 지극히 속물적인 오리와 돼지로 불리는 엄마와 여동생의 천박한 요구와 위협의 이야기들에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주인공이 식당의 유리벽이라는 견딜 수 없도록 노출된 더러운 기분과 닫힌 구조의 식당이라는 고립성에서 발산되는 감정에 뒤섞여 식당 벽의 그림과 옆 테이블의 사람들, 유리창에 붙어 핸드폰의 불빛을 비추는 아이를 오가는 불안정한 시선의 의미를 절로 수긍하게 된다. 한 편의 기막히게 연출된, 고독의 기묘하고 소외적인 마법의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
끝으로 미술작품 에이전시가 주인공인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의 단상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이 단편은 자본과 현대미술의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도마뱀 같은 구조를 통해 미학적 쾌감, 돈과 시간의 높은 장벽을 세워 새로운 미학적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시시껄렁한 생태계를 들춰낸다. 아마 “우연이야말로 섬세한 계산에 의해 이뤄진 필연적 결과물”이라는 문장처럼 우리네 주변에서 시침 뚝 떼고 펼쳐지는 많은 현상들의 은폐된 본성에 대한 일종의 대중 고지(告知)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 고발적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 명쾌함과 적나라함을 무기로 한 도발성이 정말 흥미진진하게 써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록된 일곱의 작품 모두 나름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발산하고 있다. 모처럼의 재미있는 문학 읽기의 시간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작품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