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30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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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SF 영화들이 모여 있는 느낌이다. ‘몽상가의 안경처럼 반짝’이는 이야기들.
많은 이야기들이 꿈속에서 나오고, 그 속에서 화자는 자기를 자르는 벌목공을 만난다거나 운전하지 못하는데 편안히 운전을 하고, 외계로부터의 답신을 받거나 철새를 타고 먼 나라들을 여행하고, 외계인의 아기를 배고서 하늘을 난다. 몸에서 잎이 자라 덤불이 되었다가 겨울에는 검불로 굴러 다니고.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51

“일요일의 낮잠처럼
단지 조금 고요한
단지 조금 이상한” 53

환상을 그린다. 그 묘사 혹은 추구를 환상적으로 받아들이냐의 여부가 독자의 층위를 결정지을 것이다.

아래와 같은, 환상들 가운데 돌연한 당혹이 좋았다.

기차에 무언가 두고 내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뒤돌아보니 기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누군가 날 깨워주길 바랐다 - P32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왔으므로 끝나 있거나 시작하기 전이므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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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창비시선 158
이대흠 지음 / 창비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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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20대 후반에 낸, 첫 시집이다.

* 뜨겁게 젊다. 숨기지 않는다.

“사랑이란 머릿속의 포르노 테이프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
그리움이란 성욕의 다른 이름
나는 그다지 타락한 것 같지 않는데
널 만나면 관계하고 싶다”
- 꽃핀 나; 검증 없는 상상, 32쪽

* 패기가 넘친다. 삶을 사랑한다.

“누구도 나의 미래를 커닝할 수 없고
살아 있다는 것으로 나는 얼마나
위대한가”
-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13쪽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건 씹다 뱉는 희망보다
얼마나 큰 선물인가 노래를 부르며
나는 걷는다”
- 지나온 것들이 내 안에 가득하다, 17쪽

“.언제든 죽을 수 있으므로 고개 숙이지 않으리”
- 마침표를 먼저 찍다, 10쪽

* 성찰이 있고.

“지네인 듯 발이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처음보다
부피만 더 커진 몸뚱이로
나는 외길에 서 있다”
-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12쪽

“아무리 버티어도 저승의 문은 발랄하게 열리고 아무리 꿈꾸어도 결국 꿈은 삶이 아니다 시인은 아무것도 예언하지 못하고 모든 법과 점술가는 과거만을 되새김질한다”
- 내가 나에게 들켜버렸을 때, 나의 위증이 나의 양심에 취조당할 때,, 38쪽

일찍 결혼하고, 건설노동자로 일을 했나 보다. 3부가 온전히 그 얘기인데 이질적이다. 아파트에서도 사람들이 걸어다니지만 땅이 아니듯 붕 뜬 느낌이다. 시인의 경험이긴 하되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
4부는 습작 시기의 시가 많이 섞여 있는 듯 고조된 감정이 정돈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고향 이야기가 시인의 고갱이가 될 듯하다.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시인 특유의 표현이 군데군데 돋보인다.
시집 전체에 아포리즘처럼 있어 보이는 문장을 많이 담았는데, 치기에 가까운 뽐냄이 느껴져 매력이 줄어드는 감 없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살림 가운데 화자의 형이 대학에 합격하자 당혹스러워하는 아버지와 대조적인 어머니의 행동을 묘사한, 아래의 시구는 너무도 단단하고 기발하여 한참을 머물렀다.

어머니는
지문을 풀어
멍석을 짜나갔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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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반점 민음의 시 60
윤제림 지음 / 민음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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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힌다.
양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난삽이 없어서
평이한 언어라 그런 것이지만,
숨을 멈추게 만드는 문장도 표현도 의미도 없어서 그렇기도 하다.
시집 제목이 제일 인상적이라니.

내려다 보네
밥주머니에 똥자루,
길게 누운 바지 저고리를
내려다 보네

날 보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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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사랑 이야기 - 초기 지구 백과사전
이사벨 그린버그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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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들들
인간보다 심술궂은 신과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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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그물 창비시선 451
최정례 지음 / 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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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삶 자체다.
고독하고, 아프고, 슬픔이 울컥 쏟아지고, 한강 다리가 아주 약간 휘청할 만큼 네가 보고싶다.
부모를 잃고, 자식을 앞세우고, 시인도 투병하다
그예 가시고 다시 오지 못한다.

기쁨이 지나갔다
슬픔이 지나갔다
발을 굴렀다

공중제비를 돌았다

혼자였다 - P10

어둠도 늙는다 앓는다. 어둠은 비대해지다 스스로 삼켜지다가 더 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곳으로 영혼이 조용히 앞질러 간다. 천천히 내 앞에서 걷는다. 따라오나 안 오나 뒤돌아본다. 안 보인다. - P17

여행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하고 짐을 싸고 나면
병이 나거나 여권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가기 싫은 마음이
가고 싶은 마음을 끌어안고서
태풍이 온다

태풍이 오고야 만다
고요하게 제 눈 속에 난폭함을
숨겨두고

내일은 결혼식인데 하필 오늘
결혼하기 싫은 마음이 고개를 쳐드는 것처럼 - P23

여행이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맘에 드는 곳에 고여 있는 것이다
거기 머물며 내 집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 집이 어디 있는지 과연 내 집이
어디 있기는 있는 것인지
국을 그리워하며 떠내려가보는 것이다 - P59

가고 싶으면 가고
날고 싶으면 난다
새들은 그렇게 산다
가도 되냐고 좋아해도 되냐고
묻지 않아도 되는 여름이 오고 있다 뻐끔거리며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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