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진시황릉의 거대함을 보는 동안, 나는, 어느 한 토용의 등판에 새겨진 도공의 이름을 읽었다.- 김소연의 시 <그러나, 거대함에 대하여>에서만리장성 자신만만한 사람은 벽을 쌓지 않는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제의 피해의식의 산물이다. 그 거대한 성벽에는 일개미들처럼 동원된 백성들의 눈물이 쌓여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백성들은 죽어서 이름이 없다. 텅 빈 호랑이 가죽처럼 진시황제의 이름이 바람 부는 만리장성에 너펄거릴 뿐.
신라인들은 그리 큰 탑을 쌓아 나 아닌 다른 중생들의 행복과 나라의 안녕을 빌었고, 고통의 삶에서 해탈의 삶으로, 속스러운 것에서 진정 성스러운 것으로 나가고자 하는 소망을 높이, 높이곰길어 올렸다. 이제 그 장육존상과 황룡사는 불타고 없다. 사라져선 더욱 아름답고, 더욱 신비한 황룡사. 탑은 구황동 빈 들에서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탑은 우리 마음속에서도 사라졌다. - P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