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인 시인이 동네 아저씨들을읊는다? 얘기한다? 시답게 1인칭 화자가 아저씨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니 관찰자 시점이 많다. 드물게 자기 얘기를 해 주인공 시점도 나오고 더 드물게 다른 아저씨 입장에서 얘기하기도 한다.시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다.냉소적이면서도 웃기고 화지와 아저씨들의 거리가 가까웠다 멀었다 한다.일관적이지 않아서 좋다.시가 아니라도 좋다.아저씨들은?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6부 <말복>이 좀 웃긴 소설일 뿐5부까지 나무 이름이 부제로 달린, 모든 얘기가 다 서러운 사람들 이야기다.3부는 살구나무 연작인데, 그집 아저씨가 끝내 살구나무에 목을 맨다.4부 오동나무 집 아저씨는 중국으로 시집간 딸이 사위와 같이 와 며칠 묵고 돌아가던 날, 그들을 배웅하고 문턱에 걸려 죽는다.5부 팽나무 연작에서는 팽나무가 잎끝도 보이지 않고, 장가 못 간 막내가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데, 마을 물난리 막으러 나가면서 어머니를 집에 끈으로 묶어 놨다가 어머니가 산사태에 휩쓸려 묻힌다.픽션이라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다 힘들고 서럽고 괴롭고 죽어간다.현실이니까 버드나무 뿌리째 뽑혀 휩쓸어 가는 물결에 떠내려가 못 찾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칠성 할매는 수십년이 지나도 술만 먹으면 앞뒤 안 가리고 난리를 치며˝나가 오늘 확, 깨물고 안 죽으믄 사람이 아녀! 그려! 나 개새끼여!˝고래고래 소리치며 고개 살짝 든 달을 발발 떨게 하는 것이다. 106
지방 소멸 시대에 농촌은 처참하다.최근 돌아가신 신경림 시인이 농촌의 붕괴를 얘기한 것이 1970년대다.석유 고갈을 경고한 지 수십년이 지났어도 아직 비행기만 씽씽 난다고 웃는 자들이 있겠지만,이미 지구는 인간 종말의 초읽기가 임박했다.그럼에도 시인은 촌에 산다.오랫동안 부대끼며.외부 관찰자로서 바라보지 않는다.해학이나 인심으로 눙치지 않는다.그렇다고 황금 들녘 한켠 농약 마시고 쓰러진 농부 그리는 식으로 르포를 쓰는 것은 아니다.일상. 희노애락 중 중간 둘이 훨씬 많은농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충청도 사람들의 여유와 함께.제목에는 빈영되지 않았지만, 각 꼭지는 전부 나무 이름으로 짜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