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사상 작은숲시선 (사십편시선) 8
김영춘 지음 / 작은숲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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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짧다.
2013년에 펴낸, 90년대에 쓴 시들.
다정한 사람이라 시가 부드럽다.
전교조 해직 교사로서의 핏발 선 날카로움이 아니라
외유내강의 보드라운 올곧음이다.
그래서, 글은 동시에 가깝게 맑고 단순하다.
어떤 의미들은 재미가 덜할 수밖에 없다.
아래 두 시를 여러 번 읽었다.

산을 오르다


계곡을 오르내리는 버들치처럼
꽝꽝한 제 몸 뚫고 얼굴 내민
물푸레나무의 정다운 새잎처럼
우리들의 시절
그만 못해도
너희들만 훨씬 못해도
아직 살아 있었구나
내 거친 숨소리 내가 듣는다 - P31

숭어


열 살 무렵 십리 길 심부름에서
얻어 감춘 숭어 한 마리 있다
바닷물이 거품을 물고 수문을 빠져나가는
저수지의 한 중심
염전 일꾼들의 좁혀오는 그물망을 뚫고
허리를 휘어 허공으로 몸 날리던
숭어 한 마리
아스라한 수직의 높이에서
순간의 호흡으로 빛나다가
그물망 너머 물결 속으로 사라져 갔다
물결 속으로 사라지는 숭어를 보며
나는 다리를 후들거렸다
여시구렁 어두운 산길이 무서워
후들거리던 때와는 달랐다
무섬증과는 전혀 다른 후들거림을
온 몸에 품게 한 숭어 한 마리
내 가슴엔 아직도
뙤약볕 아래 물결 속으로 사라지던
그 후들거림이 산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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