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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ㅣ 시작시인선 106
안명옥 지음 / 천년의시작 / 2008년 11월
평점 :
“고통은 문지를수록 상처를 만들지만
상처도 길들여지니 어엿한 한 몸이다” 88
라고 할 정도로 시인은 상처 투성이다.
“내 상처가 하늘로 수없이 밀어올린
별
/한움큼,
털어 놓고 싶었던” 69 아스피린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다” 62
애무, 번식, 구멍, 동침, 교성 등등의 생명에 관한 시어들도 등장하지만, 대개 ‘상처 깊다’ ‘이 악물고 견디고 있’을 뿐이다.
상처의 근원을
순례버스를 타고 가다 아마도 화장실을 찾을 형편이 안 돼 남녀 불문 여러 일행이 들에서 실례를 해야 하는 상황을 읊으면서
“사내들은 길을 등지고 오줌을 누는데
여자들은 길을 바라보며 오줌을 눈다
다급한 그 순간에도
수치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형벌!” 20
에서 찾는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을 당하면서 ”몸은 붉은 수수밭을 지나온 듯 젖어버렸다“ ”어이없는, 망각된 몸의 멍한 반응“에 진저리친다.
”무섭게 영토를 넓히던 구멍들이
어느 순간 폭발하듯 뻥 뚫리더니
가슴 속은 이내 무덤같이 큰
하나의 구멍이 돼 버렸다
그 속에 웅크려 나는
숙주 같은 파란 싹 하나 키웠다“ 52 폐경 무렵
그 싹이 자라 푸른 나무가 되기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냉장고
그녀는 문을 꼭꼭 닫아걸고 있다 아래위로 문이 있는 여자 문을 열면 불이 켜지는 여자 문 밖이 뜨거울수록 더욱 단단하게 문을 닫고 사는 여자 몸속에 있는 것들이 혹여 녹거나 상할까 두려워 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어둠을 키우고 사는 여자 많은 유효기간들을 담아 두고서 유효기간을 과신하는 여자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윙하는 소리를 내며 경계하는 여자 24시간 풀가동되면서 차가워져 냉장고가 된 여자 식구들의 먹을 것을 대주느라 독한 여름을 견디는 여자 그녀가 잠그고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모두 썩어 없어질 것들 코드를 뽑아버리면 없는 여자 - P54
상처의 힘
보잘것없는 들꽃일수록 빨리 꽃을 피운다
언제 짓밟힐지 몰라 잔뜩 긴장한 것들의 몸은 소름이 돋아 시퍼렇다
감나무 가지에 어머니는 억지로 돌을 끼운다 멀쩡하던 가지에 구멍이 난다
수많은 상처를 향해 있는 힘껏 열매를 밀어올린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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