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이라는 것
왜 미안하다고 말했을까. 네가 맥문동과 나란하다. 달빛 아래서 맥문동을 보면 결핵 빛깔이다. 세계를 투정하고 세상을 밀어 내던 내가 꽃보다 오래 산다는 건 미안하다. 맥문동은 흔들리면서 생을 완성한다. 너는 외대에 닿는 흰 바람조차 붙들고 싶었던가. 일획 단정한 잎들이 단명과 유사하다면 맥문동은 네 기침이 피우는 꽃. 비 오는 날은 더욱 자지러진다. 생이 기우뚱 풍경들을 놓칠 때 왜 보랏빛일까. 너무 큰 신발을 신고 숨차 오르던 여름 내내 돌아보면 굽이마다 맥문동 보였다. 보랏빛 네 단명 앞에 탕진하듯 내 살아 있음 이 미안했던 걸까. -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