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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옆 얼굴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5
이하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4년 10월
평점 :
품절
1984년.
이럴 수가 있나 싶게
냉철하다.
뜨겁지 않을 수 없는 시절.
불타는 분노와 좌절과 절망을
지독하게 차갑게 읊조린다.
“찬 바람 앞에
고개 수그린다, 불꽃 이글거리는
눈만 차갑게 치껴뜬 채.” 99
우리는 돌아선다. 거리는 차들이 매캐한 연기를 내며 달리고 사람들이 술집에 쏟아져 들어간다. 우리는 묵묵하게 그 속에 섞인다. 살아온 삶의 역정도 새로운 생계의 걱정도 달작지근한 꿈도 갑자기 막연해지고 우리는 어떤 힘에 막연히 떠밀리며 새로운 건물 안의 새 주인 앞에 세워질 것이다. 세찬 바람이 우리를 후려치고 우리는 울음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막연히, 막연하게 막연히 떠돌고 태연한 척한다. 누구든 함부로 울 수는 없다. 거대한, 정체모를 그 힘이 우리의 가슴까지 빗장을 지를지도 모른다. - P74
우리는 갈라져 있지 않지. 얽혀 있지. 서로 증오하고 폭탄을 던지면서 욕설을 퍼부으면서 서로 간첩을 침투시키면서 그런 식으로 서로 그리워하면서 더럽게 사랑하면서.
아무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지. - P98
흐름만이 우리를 가득하게 해 어디로 흐르지? 아무 곳으로나 그냥 흐를 뿐이지 장난꾸러기 같으니 누가? 내가? 이 물이? 우리들 모두가 말이야 그럼? - P106
누구지?우린왜이렇듯가볍고아득하기만해?언제나공허하고외롭고달작지근하며그냥아득하기만해?끊임없이가벼운것들스스로의속에서생겨나폴폴날고그것들속에결국은우리가묻힐뿐?누구지우린?우린도대체뭐지?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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