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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혼을 찾아서
오오무라 마스오 지음, 심원섭.정선태 옮김 / 소명출판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문학 전문가인, 일본 학자 오오무라 마스오가
2000년 초에 홋카이도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펴낸 책이다.
짧은 글들이다.
의미심장하고,
새롭게 돌아보게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구절이 넘실댄다.
이 소설은 "이방인들이 흘린 오줌과 똥물만을 주식으로 하여", "‘반공‘과 ‘친미‘만을 열심히 부르짖다 보면 쉽사리 애국 자며 위정자가 될 수 있는"(「분지」에서 인용) 현실을 우화적 수법을 끌어들여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예속인가 자주인가라는 민족의 주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분지」는 지나가버린 한 시대의 유물로 처리되어서는 안 되는 현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 P12
지금이야 풍광명미한 관광지로서 인기가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6만 명의 일본 군대가 상주하고 있었다.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긴 했지만 제주도 상륙의 가능성도 컸기 때문이다. 지금도 섬의 산악지대에는 장대한 지하 사령부 흔적이, 평지에는 전투기 격납고가, 해안선에는 인간 어뢰 ‘회천‘기지 터가 남아 있다. 전후 1948년, 제주도는 5만 명 혹은 8만 명이라고도 하는 희생자를 낳은 4• 3사건을 경험했다. 조국의 자주통일과 38선 이남의 단독선거에 반대하여 봉기한 민중이, 그 후 10년간에 걸쳐 정부군과 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 겨우 명예회복이 이루어졌지만, 그 때까지 오랜 기간 사자들은 ‘빨갱이‘로서 사회적으로 기피되어 왔다. 미소 냉전구조에 기인한 불행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제주도의 역사와 사회가 낳은 제주문학은 한국문학 중에서도 특히 무거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제주문학은, 물론 한국문학 중에서는 지방문학 중의 하나다. 그러나 한국 안에서 가장 신산한 세월을 맛본 제주도의 문학은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한국적이어서, 그것을 통하여 세계문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P38
임종국(1929~1989)씨는 1966년에 「친일문학론」(일본어 역은 오오무라 마스오, 고려서림, 1976)을 썼다. 이 책은 1945년 8월까지 거의 10년간 일본 지배하에서의 조선인 문학자의 발언을, 비판의 의미를 담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국에서 말하는 친일이란 민족의 주체성을 내팽개치고 일본의 지배에 추종한다는 의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친일문제의 청산보다도 반공과 남북 대립을 가장 우선시해 온 한국 사회는 전전의 대일협력자가 그대로 사회 지도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 1965년 한일조약이 체결되자, 임종국 씨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친일문학론」을 집필했을 것이다. 임종국 씨는 춘추의 필법으로 객관적 사실만을 쌓아 올려 전전의 문화적 상황과 문학자들의 발언을 재현해 보여주었다. 저명한 사람이든, 권력자든, 대학의 은사든 그리고 자신의 부친이든 그는 집필에 임할 때는 붓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사회는 그런 그에게 철저한 무시와 사회적 압력으로 대응했다. 임종국 씨는 말하자면 ‘식량보급선을 끊는 포위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40대 후반 임종국 씨는 생활을 위해 서울 교외에 밤나무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나는 두 번 임종국 씨의 집을 찾아갔다. 길도 없는 산꼭대기에 경운기로 자재를 실어 날라 자력으로 지었다는 집의, 침침한 자가발전 불빛 아래서 사과상자를 책상 삼아 원고를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밝고 명랑한 성격의 그는 흥이 오르면 프로 수준의 기타 솜씨를 보여주었다. 저녁식사 때는 밤밥, 아니 밤 위에 밥알이 붙어있는 밥밤을 대접해 주었다. 사후 14년이나 지나고 난 뒤, 어렵사리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임종국 씨의 작업이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고, 역사를 냉정하게 직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전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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