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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선집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조영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4월
평점 :
시원시원한 분이다.
시집 뒤에 실린 어느 작가와의 대담에 나오듯.
“시의 경우는 ‘가능한 단순했으면’ 하는 의식이 어딘가에 있거든요… 단순하게 산뜻했으면 좋겠다… ‘단순한 언어로 깊은 것을 말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거든요… ‘좀 더 강하고 탄력 있는 시를 써야 한다’고 제 나름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335
종종 꺼내 읽을 것이다.
서로 익숙해지는 건 싫어 친숙함은 아무리 깊어져도 좋지만 - P284
그것을 선택했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것이, 평화 단조롭고 단조로운 나날이, 평화
사는 방법을 각자 궁리해야만 하는 것이, 평화 남자가 나긋나긋해지는 것이, 평화 여자가 발랄해지는 것이, 평화
좋아하는 색의 털실을 좋아하는 만큼 살 수 있는 눈부심! 자칫하면 정채되려 하는 것을
신선하게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전쟁을 하는 것보다, 훨씬 모르는 자에게 영혼을 건네는 것보다, 훨씬 하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선택했다 - P302
등
남에게 일어난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이웃나라에 불어닥친 폭풍은 이 나라에도 불어탁칠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상상력은 보잘 것 없이 작아서 좀처럼 멀리까지 날갯짓하여 가지 못한다
다른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단지 그것만으로 구속당하고
아무도 모르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유도 모른채 쓰러져간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만약 내가, 그런 처지를 당했을 때 무서운 암흑과 절망 속에서 어딘가 멀리 희미하게 깜빡이는 등이 보인다면 그것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인다면
얼마나 기쁘게 응시할까 가령 그것이 작고 작은 등이라 하더라도
설령 눈을 감아버린 뒤라 하더라도 - P318
6월
어딘가 아름다운 마을은 없을까 하루 일을 끝낸 뒤 한잔의 흑맥주 괭이 세워 놓고 바구니를 내려놓고 남자도 여자도 큰 맥주잔 기울이는
어딘가 아름다운 거리는 없을까 과일을 단 가로수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노을 짙은 석양 젊은이들 다감한 속삭임으로 차고 넘치는
어딘가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힘은 없을까 같은 시대를 더불어 살아가는 친근함과 재미 그리고 분노가 날카로운 힘이 되어 불현듯 나타나는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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