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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잠깐을 사랑했다 ㅣ 시작시인선 464
여영현 지음 / 천년의시작 / 2023년 3월
평점 :
두 번째 시집에도 낚시와 바다는 여전하지만, 인상적이지 않다. 시인의 관심에서 살짝 밀려난 듯.
제1부엔 ‘당신’을 그리는 시들이 많다. 연애를 한다면 써먹고 싶은 구절이 즐비.
“짧아도 봄이 최고다
당신이 웃어 주면 그렇다.” 13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지만
당신이라는 감옥
참 좋았다.” 14
“한때 내 영혼의 공장이었던 육체가 죽었다
…그때도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너와 함께라면 하고
아쉬워했을 것이다.” 28
“내 여행의 기쁨은
언제 와? 하고 묻는
당신의 전화” 24
“사랑하다 죽고 싶었다,
공룡이 해변에
발자국을 남길 때부터.” 29
2부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의 가난.
“가족의 병력에는 가난이라고 썼다
그리움이기엔 고열이 심했다.” 61
“오월까지도 등록금을 못 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62
“대체 자랄 때 얼마나 가난했던 거야?…
아, 그건 푸세식 변기에 똥이 꽝꽝 언 것 같아,
자꾸 밑을 찔러 막대기로 밀어야
일을 볼 수 있었어
/더럽다고?
더럽지, 비참하고….
기준이 있으면 그 아래가 있겠지
그걸 참는 게 가난이고” 56
“가난은 죄가 없다
그래서 밥과 눈물이 교환된다” 48
3-4부는 일상을 다룬 시들과 모호로 치장한 시들이 있다.
정현종이 보이고 기형도가 몇 번 보였는데, 그게 시인의 오마주인지 의식하지 못했으나 그저 통한 것인지 궁금하다.(19쪽 바닥의 힘, 42쪽 용평을 떠남, 72쪽 컴퓨터의 적멸)
그의 고뇌가 시리고
”나를 벗어나면 어디든 봄일 것 같았다.“ 71
”배 속에 오줌이나 똥이 가득 찬 채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살았다“ 44
‘한심’한 그와 ‘낮술’ 한잔하고 싶다.
낮술
떠나면서 아름다운 게 있다 사월에 지는 꽃, 전화기에 남겨진 당신의 음성
낮술을 마시는 사람은 대개 한심하다 환한 창을 등지고 혼자 붉어지는 얼굴이라니
낙화는 눈처럼 내린다 꽃은 바닥에 닿기까지 그 짧은 파문으로 이름을 남긴다
마음이 차가워지는 게 한심寒心이다 내게 지나간 심연의 발자국을 본다
바람이 불면 꽃 비늘이 반짝이며 떨어진다
마음이 한심하다 그대가 부재중이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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