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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ㅣ 시와시학사 시인선 12
고재종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그는
“아직도 세상의 평화를 믿는 사람.” 118
“이제는 찾는 이도 몇 안 되는 정자“를 지키며, <젖은 생>을 ’그렁그렁‘ 지난다.
그러나, 겨울 마른 삭정이처럼 잦아든 것이 아니고
얼음장 밑을 콸콸콸 흐르는, 시냇물처럼 굴하지 않는다.
때론 격랑으로 범람하며.
난 다시 꽃구름에 홀리고 새목청에 자지러져선, 우두망찰, 먼 곳을 보며 눈시울 함뿍 적신다. 그러다 또 애기쑥국에 재첩회 한 접시로 서럽도록 맑아져선, 저 산 저렇듯이 사람들의 그리움으로 푸르러지고, 저 강 또한 사람들의 슬픔으로 그렇게 불었던 것을 내 아둔패기로 새삼 눈치라도 채는가 마는가. 시방은 눈감아도 저기 있고 눈떠도 여기 있는 한세상 굽이굽이다. - P106
세한도
날로 기우듬해 가는 마을회관 옆 청솔 한 그루 꼿꼿이 서 있다.
한때는 앰프방송 하나로 집집의 새앙쥐까지 깨우던 회관 옆, 그 둥치의 터지고 갈라진 아픔으로 푸른 눈 더욱 못 감는다.
그 회관 들창 거덜내는 댓바람 때마다 청솔은 또 한바탕 노엽게 운다. 거기 술만 취하면 앰프를 커고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이장과 함께.
생산도 새마을도 다 끊진 궁벽, 그러나 저기 난장 난 비닐하우스를 일으키다 그 청솔 바라보는 몇몇들 보아라.
그때마다, 삭바람마저 빗질하여 서러움조차 잘 걸러내어 푸른 숨결을 풀어내는 청솔 보아라.
나는 희망의 노예는 아니거니ㅘ 까막까치 얼어죽는 이 아침에도 저 동녘에선 꼭두서니빛 타오른다. - P44
푸른 자전거의 때
말매미 말매미 떼 수천 마력의 전기톱질로 온 들판을 고문해대어선 콩밭에서 콩순 따는 함평택의 등지기 위로 살 타는 훈짐 피어오르는 오후 술참때
저기 신작로 하학길을 은륜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막내 녀석, 그 씽씽 그 의기양양 문득 허리를 펴다 가늠한 함평 댁의 입이 함박만하게 함박만하게 벌어질 때
때마침 목덜미를 감아오는 바람자락과 함께 푸르고 푸른 풋것들이 환호작약, 온갖 손사래를 쳐대는 것이었다. - P51
목화송이 같은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밤이다
이런 밤, 가마솥에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를 쪄내고 장광에 나가 시린 동치미를 쪼개오는 여인이 있었다
이런 밤엔 윗길 아랫길 다 끊겨도 강변 미루나무는 무장무장 하늘로 길을 세우리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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