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런거리는 뒤란 창비시선 196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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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꺼내 읽었다.
문태준의 첫 시집이다.

음산하다.
한 세대 전의 농촌과 다를 바 없는, 폐가 넘치는, 음울한 공간으로 그려진 농촌이 배경이다.
다만, 전혀 정치적인 접근은 없다.
개성적인 시각과 표현이 있다.

지는 꽃


언덕길에 곱사등이들이 모가지를 빼고 앉아 있네

문득 휘몰아친다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힘은
등뼈를 바깥으로 탈골시키네 그들은 대갈못처럼
더욱 주저앉네, 꽃에서 한잎의 귀가 떨어지네
이 지상에서 잊혀진 소리들이 건너 지방으로•••••••

우리는 등을 켜고 가만히 보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힘을. - P24

내 배후로 夕陽, 夕陽


저무는 나무들의 이파리에 내 맨발 흥건히 젖어들 때
툇마루에 반쯤 걸터앉은 햇빛에는 애당초 누군가 살고 있는 게다
한량처럼 열대의 늪을 건너가는 河馬와
南國으로, 남국으로 한절기를 버티려는 되새떼 그 빈사의 폭동 사이
개 같은, 당최 이 개 같은 틈에 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때
내 맨발이 저무는 나무들의 이파리에 가려질 때
눈에 호롱불을 들이고
바늘귀를 꿰주마, 중얼거리는 그런 오랜 족속이 있는 게다
한번도 보지 못한 내 할머니 넋, 혹은 내가 부려온 세상의 노복들이 있는 게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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