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굳게 믿는다. 공식적으로 이 나라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고, 또한 지배해온 사람들이 동상이나 기념관을 세워 추앙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그 밑에서 핍박받은 사람들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염원을 버리지 않았고, 그래서 ‘옛날과 많이 달라진’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나라가 그 하늘에 여섯 마리의 용이 날았기 때문이 아니라, 제 나라의 글자를 만든 임금이 있었고, 어떤 도를 실천하려는 선비들이 있었고, 인간답게 살기를 애쓰는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통성을 얻었던 것과 같다. - P106
성장통이란 말을 끄집어내게 된다. 그런데 합당한 말인가. 그 말이 비록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가득 안고 있다 하더라도, 젊은 날의 고뇌와 고투를 그 미숙함의 탓으로 돌려버리게 하기에도 십상이다.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 내가 4•19와 5•18의 중간 어름에서 이 글을 쓰고 있기에도 하는 말이지만, 경무대 앞에서 그 많은 학생들이 무얼 몰라서 총 맞아 죽은 것이 아니며, 거대한 폭력에 에워싸인 광주의 젊은이들이 그 마지막 밤에 세상을 만만하게 보아서 도청을 사수하려 했던 것도 아니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는 잘 만들어진 실패담이다.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 P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