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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타이밍 ㅣ 애지시선 113
이송우 지음 / 애지 / 2023년 4월
평점 :
특이하다.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노동시.
투쟁을 외치지 않는. 추상적인 것으로 숭고하게 존재하는 그 노동이 아닌. 어떤 노동의 구체.
삼성전자 프린터 부분 상품기획 쪽 일을 하다가 프린터 사업부 전체가 HP로 넘어가고, 그예 ‘강제휴업명령’ 당한 이야기가 담겼다.
‘오토모티브 섹션장’, ‘컨조인트 효용 조합’, ‘상관계수 0.3’, ‘T2O 프로젝트’, ‘크론바흐 알파값’ 등등 낯선, 화자의 직장 생활에서는 익숙할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암 진단 후
곧 돌아오겠다고 웃던
개발팀 김수석은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병석에서도 걱정이 많더니
한 달 만에 눈을 감았네요
매출 확대를 위해
해외 거래선을 개척하고 오겠다던
걸걸한 목소리의 영업팀 이부장은
자신을 탓하다가
귀국편 비행기 안에서 목을 맸다지요“ 54
”역량개선 프로그램에 내 이름을 울린 친구야
노병은 죽지 않는다고
함께 산행하던 네가 부디 슬프지 않았으면“. 88
”삼십 년 개발자들
봄날 벚꽃처럼 날려가는 날“ 90
”어제는
명예퇴직한 동료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모금을 하자는 이메일을 보았다
청춘을 보낸 회사에서 자발적으로 밀려 나온 뒤
자택에서 맞은
아무도 지켜보지 못한 죽음“ 92
등 비정한 자본에 희생당하는 부속품으로서의 고난이 흩뿌려져 있다.
”딸내미가 손목을 그은 후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고“ 96
”백신을 맞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앓는 사람처럼
뿔뿔이 흩어지라는 말이다
이곳에서 사라지라는 말이다“ 93
”백 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 섰다고
떨고 있는 나에게
두 손 놓아도 괜찮다고
여기 절벽은 없다고“ 99
이후가 궁금하다. 신경 쓰인다.
진부령 종산제
봄비처럼 사랑하는 이는 쉽게 떠나고
가을 서리처럼 새로운 이는 익숙해지기 어렵다지만
길이 끝나고 길이 시작되는
당신과 나를 기억하겠습니다 - P107
모세의 기적
선배님들 제발 나가주세요 저희도 좀 삽시다
애들 학자금 걱정되신다고요 오래 다니셨네요 저희도 일 좀 해봅시다
GM대우에서 왔다는 신임 인사팀장은 모세다
한솥밥 먹던 사람들, 노소로 단번에 갈라놓았다 그 정리해고 전문가는 안다
흩어지면 죽는다 흩어지면 죽는다 - P87
궁극의 미래는 낙화, 터질 듯 부푼 목련이나 흩날리는 벚꽃이나 모든 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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