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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꽃 ㅣ 창비시선 307
최두석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한때 시인이 붙들었던 이야기가 사라졌다.
인간들의 이야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우람한 역사의 줄기를 살찌우고
우수수 낙엽이 되어 종적 없이 사라질
초록 이파리같이 빛나는 이야기들 보시게
/느티나무가 자라 옹이투성이 거목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라다 부러진
까치집 삭정이 같은 이야기들 보시게.“ 85쪽 느티나무
소리 없는, 자연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이 시집은 그렇게 이땅의 온갖 나무와 장소들을 읊는 일종의 도감 또는 기행문에 가깝다.
‘나날이 새로워지고 싶으나
나날이 낡아가는 … 덜컥 지천명을 맞게 된 자’로서 ‘가슴에 사막이 펼쳐질 때
어떻게 견디면서 살아야 하나’하는 고민에 빠져 자연에서 그 답을 묻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거위벌레도 엄연히
행복하게 살 권리를 지니고
이땅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13
“사람들이 잡초라 하는
바랭이나 강아지풀의 씨앗이
부비새에게는 귀한 양식이 되는
자연의 배려” 27
‘미추를 초월한 먹고사는 일의 엄연함’ 22
‘양성의 심장과
진정한 자유의 관계를 묻는 이여
둥지를 부수고
끊임없이 날아오르기를 꿈꾸는 영혼이여
황조롱이가 어찌하여 고층아파트에 살며
어떻게 먹이를 구하는지 보라.’ 25
‘지상에서 먹이를 구해
사랑을 나누고
새끼를 기르는
원초의 모습’ 31
“온갖 생명을 살아 숨쉬게 하는 노랫소리에 빠져든다.” 51
인간의 시선을 부정한다. 앞으로 자연의 소리를 얼마나 절절히 들려줄 수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김굉필 은행나무
서원에서 글 읽는 소리 오래 듣다보니 예를 알아 몸을 깊숙이 구부리고 있다는 은행나무
고개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문을 중심으로 엄격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도동서원 은행나무
소학 속의 동자처럼 기본적 법도에 충실하다 사화로 희생된 김굉필을 기려 심은 은행나무
하지만 어찌 나무가 예를 알랴 아니 사람의 도덕에 구속되랴 척박한 땅의 윤리주의자들이여
나무는 다만 깊이 뿌리내릴 수 없어 위로 마음껏 벋어오르지 못할 뿐 암반에 막혀 뒤틀린 뿌리의 고통을 보라.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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