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 - 송만철 시집 시작시인선 356
송만철 지음 / 천년의시작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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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사람들과 해질녘에 고흥 봉산리에 있는 전 정흥사지 탑재를 보러 갔었다.
사람 좋게 환한 웃음 짓는 동네 아저씨 한 분이 우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 우리 얘기를 가만히 듣고서는 마을이 내려다 보여 안는다는 자리도 알려 주고, 탑재 바로 아랫집으로 들어가더니 자기가 쓴 시집을 한 권 주었다. 그 책이 이 책이다.

시인 송만철은 농민이다. 21세기에 농민이라니. 일부 기업형 부농을 제외하면 당연히 쓸쓸하다. 어린 시절 활기 넘쳤던 곳에서 사는데 그곳은 ‘삭신이 어작난 마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을 울력에 모인 사람들 할머니 세 분 할아버지 두 분 나까지 여섯’인 상황이며,

“강진 아짐을 실은 장의차가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당산나무로 새카맣게 모여든 산까치 떼가 울어쌓네

산 밭 언덕 장지로 향하자

간다 간다 떠나간다

선소리꾼 같은 새가 가지가지 휘청하도록 소리를 내지르자
절골 무당개구리 떼거리 울음이 만장처럼 펄럭이며 따라가네” 62쪽 <떠나간다>
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는 당연히 있었을 선소리꾼도 만장도 없다. 까치와 무당개구리나 떼거리로 있을 뿐.

그러니, 그러므로, 그래서 인간이 만든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숲에 살던 새들이 마을 대밭으로 날아들어 울부짖는다

숲 가꾸기 한다며 오랜 숲을 파괴하고 있다고
봄여름가을겨울이 토막 쳐져 산자락에 나뒹굴고 있다고

너희 무덤 너희가 파고 있냐고!” 76쪽 <세상에나!>

“그 많은 분쟁과 소송과 전쟁이 무슨 소용인가?*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 많던 뜸북새가 들판에 사라졌다는데
생명들과 한 몸이었던 벌들이 죽어간다는데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로

알 수 없는 병들 시도 때도 없이 날뛸 것이라는데
지구 어디든 홍수와 가뭄과 폭염은 덮칠 것이라는데

사람끼리 사랑과 평화와 자비는 무슨 소용인가?” 89쪽 <이변> * 프리모 레비의 시 낙타에서. ** 정현종의 시 제목

아래 두 시같은,
성찰과 웃음이 특히 좋았다.

이판사판


목줄 매인 개는 가래나무에 얹힌 서녘 달을 보고 짖어대고
닭장에 갇힌 닭은 꽁지 털 싹 다 빠진 날개로 홰를 쳐쌓고

나는 철 지난 신문이나 뒤적거리다 찾아든 별들 힐끔거리다
쑤셔 박힌 잠에 뒤숭숭한 꿈에나 헛발질하다 날이 밝았구나

삶을 쳇바퀴 굴리고 있는 나나
매이고 갇힌 너희들이나 - P36

요양원에서


대학 나와 공무원 했다고 말끝 붙들고
말로 썰 푸는 남자 노인을 보고

원산할매가 했다는 말

"젠장 털어봤자 먼지여,
대그빡에 몇 개 더 쑤셔 넣었다고 까불고 자빠졌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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