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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의 빈 의자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48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1월
평점 :
번역하기는 수월할, 불분명한 시공간의 해괴한 이야기들. 종잡을 수도 없고, 그래서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있기나 한지 알아내기 어렵다.
그런 속에서도 뜬금없이 한두 줄 현실을 건드리는 구절이 있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속력은 부자와
가난뱅이를 뒤바꾸진 않네”
“해고된 후 오랫동안 잠만 잤지요“
”부자들은 구름 위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경찰 국가에선 무엇이건 보호받는다“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알 수 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구체를 없애고 괴기와 환상을 선택한 것일까?
중고등학교 어느 문학 교과서에 실린 듯 입시현장에서 간혹 보이는 <구두>의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 대한 성찰을 우의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이질적일 만큼 이 시집에는 괴이한 시들이 가득하고, 그 시들은 끌림이 없다.
<다시, 문 앞에서>와 <별은 멀리서 빛나고>는 읽을 만하였다. 그래서, 송찬호를 더 읽게 되었다.
무제 3
누가 이 촛불을 켤 수 있었을까 식물은 유리 속에 잠들어 있고 화약은 아직 격발을 몰랐을 때, 결혼식은 성대하였다 초대받은 不在者들, 헤아려진 돈, 편력 없는 구두, 10년 동안의 빈 의자, 퍼뜨려진 전염병 그리고 휴일마다 반복되는 지상과 교회와의 굳건한 결혼식, 결혼식은 끝났다 정육점도 공장들도 훌륭히 완성되었다 이제 다시 신부를 데리고 隊商은 먼 나라로 결혼식을 이끌어가리라 ...... 나의 신부여, 내게도 이 결혼식을 준비해다오 이 빛, 굽은 술잔을 네게 기울여 흘러가고 이 몸, 유리처럼 차디찬 바닥에 굴러떨어지리니 - P36
아가야, 골목을 흐르는 저 독경 소리마저 네겐 자장가로 들리니? 칭얼대다가도 때가 되면 너는 잠들 줄 알고 홀연히 깨어나면 돌아누운 고단한 내 등뒤에서 너는 남남으로 헤어질 줄 알아 길 찾아 헤매다 보면 거북등처럼 터진 골목 밖은 아득한 서역 떠나가도 가도 출가의 길은 더욱더 멀고 문득 돌아보면 인연은 길 옆에 비껴선 무심한 돌부처인데 헤어져 만리 길 우리는 어인 업으로 다시 만나 내 병든 얼굴, 너의 눈물 꿰어 내 목에 걸어주고 한 자락 바람처럼 - P66
꽃이 꽃씨를 떨구듯 아픈 상처의 딱지가 떨어지듯 어둡던 몸 속으로 떨어지는 별 하나, 잠시 아픔도 잊고 환해지는 몸 지금 그 별은 멀리서 빛나고 있지만 누구나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산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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