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로드 - 천년의 소리 정선아리랑이 흘러간 아리랑 길을 따라
이재열 외 지음 / 행복에너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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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리랑' 노래 가락이라면, 이 구절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국민의 노래 '아리랑'

그 정선 아리랑이 길이 되어, 강원도 정선에서 서울의 광화문까지 길이 되었다.

 

 

간다지 못 간다지 얼마나 울었나

송정암 나루터가 한강수가 되었네

 

오늘 갈런지 내일 갈런지 정수정망 없는데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나 놓았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 아리랑의 노랫말이다. 이 노랫말처럼 오늘 갈런지 내일 갈는지, 간다지 못 간다지. 참 오랜기간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127년 전 오횡목 군수가 걸었던 그 길을, 7일간 228.4km를 옛길을 따라, 옛지명을 찾아가며 정선에서 서울까지 127년 전 오횡목 군수가 정선에서 한양까지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그 흔적을 따라 걸었다. 다섯명이서.

 

  127년 전 정선의 오횡목 군수가 한양까지 걸으며 기록한 책이 총쇄록이다. 그 총쇄록의 옛 지명을 조사하고 그 길을 답사하여 총쇄록에 나와 있는 오횡목의 마음을 따라 같이 걷는다. 벽탄에 이르는 길을 총쇄록에서는 "한 가닥 가는 길이 위에서 매달리듯 벼랑이 내리 누르고 아래에서는 강이 사납게 격동하여 잔도(棧道-잔도잔 길도)와 돌길이 타기도 걷기도 어렵다." 비룡동 입구의 안말, 돌꼬지를 지나 벽탄에 이르렀다. 지금은 모두 용탄리라 부르는 곳이란다. 용탄리는 비룡동의 용(龍-용용) 자와 벽탄의 탄(灘-여울탄) 자를 취하여 용탄이 된것이라는데 일제시대를 거쳐서 급격하게 바뀐 지명들이 대부분 이런 식이란다. 언뜻 보기에는 대표적인 두 마을을 두고 간단하게 한 글자씩 따서 합리적으로 개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마을의 정체성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1910년대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이처럼 한국의 고유 지명의 유래를 혼동시키고 우리나라 본래의 자연스러운 지명을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섯째 날에 지나갔던 양평의 지평면은 의병의 고장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1895년에 을미의병이 봉기하였다는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표석과 도로명에 의병을 표시하였다. 그런 지평군이 1908년에 지제면으로 일제에 의해 개편되었다. 일본의 행정구역 통폐합과 지명 변경에는 분명히 우리의 정기를 말살하려는 악랄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고유의 지명을 회복해야 할 지명은 무척 많이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에도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천 길 낭떠러지가 연속이고 바위와 숲은 아찔하기 짝이 없다."고 총쇄록에 기록된 것처럼 벽파령 옛길은 가파르고 함한 곳도 있었다. 위험이 도처에 깔린 곳에서 길을 읽고, 생길을 뚫고 나무를 잡고 매달리면서 간신히 앞으로 나아가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그러다가 옛길의 흔적을 찾아 금세 혼란스러운 마음이 진정되고 그렇게 가장 험난한 고비인 벽파령은 그들에게 그 길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들은 아리랑 로드를 따라 여러가지 사연과 여러가지 옛 지명 이야기를 풀어주면서 걸었다.

 

  원주의 강원 감영에 선화당 옆에 마련된 강원 감영 사료관에 들렀고 그 곳에서 원주 감영의 옛 모습을 재현해 놓고 각 기록물과 발굴 유물도 함께 전시해 놓았으며, 정선총쇄록에 대해 정리된 기록도 전시되어 있는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강원 감영은 오횡묵 전 정선군수가 서울을 오갈 대 이 곳에 들러서 관찰사를 뵙고 지역의 일을 보고하였으며 보통 하루나 이틀을 객사에서 묵은 후에 이동하였다고 하는데 그러한 사실도 총쇄록에 기록이 되어 있었나보다.

 

  망우리 고개 (망우리 현)을 지나, 중랑천(중령개)을 건너 동대문구 휘경동에 이를 때, '휘경원점'으로 표시된 휘경여중고교 교정에 휘경원의 내력을 알려주는 표석 이야기와 함께, 휘경원의 내막도 듣는다. 조선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비 박씨의 묘소인 휘경원은 별세 후에 휘경이라는 휘호가 주어져서 마을 이름이 휘경리가되었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127년 전, 옛 정선군수인 오횡목 군수가 정선에서 한양까지의 길을, 옛 길을 따라, 옛 지명을 찾는 수고로움과 그로 인해 옛 지명이 1910년대에 일제 강점기에 많이 의도적으로 바뀌어져 있었다는 사실들을 확인시켜주면서, 옛 지명이 많이 사라졌기에 옛 길을 더더욱 찾기가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하지만 오횡목 군수가 지났던 그 길을 따라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안으로 들어가는 과정까지 그 기록의 역사에 참여한 정선군 공직자 아리랑로드 대원 5명의 7일간의 여정이 오롯이 이 책에 담겨 있다.

 

 

 

 

 

2015.1.28. 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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